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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모델S보다 제로백 느린 타이칸에 포르쉐가 담은 진심
기사입력 :[ 2019-09-06 12:04 ]


타이칸은 전기차가 아니다, 전기를 사용하는 포르쉐 스포츠카다

[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오랜만에 독차법이라는 제 코너에 걸맞은 모델을 만났습니다. 포르쉐 타이칸은 수치적 성능은 물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볼 가치가 있는 모델이었습니다.

새로운 모델은 한 해에도 국내에만도 수십 대, 세계적으로는 아마도 수백 모델이 출시될 겁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여는 모델을 만나는 것은 매우 드뭅니다. 이런 면에서 지난 4일 공개된 포르쉐 타이칸은 매우 의미가 깊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전기차가 단순히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자동차의 수준을 완전히 넘어선 새로운 단계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전기차라는 말만으로는 명함을 내밀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한 번 충전으로 몇 백 킬로미터를 갈 수 있다는 항속거리만으로도 자랑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1세대 전기차들은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이산화탄소와 배출가스 등 친환경성에서 장점이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2세대 전기차들은 한 번 충전으로 400km를 달릴 수 있다는 실용성과 안심감으로 어필했습니다. 3세대라고 하긴 뭣하지만 럭셔리 브랜드들은 전기차라고 해서 느리지 않다는 것, 그리고 전기차는 조용하기 때문에 더 안락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전기차의 새로운 면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포르쉐는 타이칸으로 전기차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켰습니다. 원래 ‘외계인을 납치했다’는 우스개 이야기를 항상 달고 다니는 포르쉐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면은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저에게 가장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던 것은 오히려 의아했던 성능 수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타이칸 중에서도 가장 빠른 터보 S의 제로백 2.8초 – 최고 속도 시속 260km 말입니다.

이들 수치적 성능은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로백 2.8초는 테슬라 모델 S P100D의 2.6초보다 느립니다. 그리고 최고 속도 시속 260km는 전기차로서는 빠르지만 포르쉐 중에서는 꽤 느린 편입니다. 마칸 터보보다도 느리니까요.

그 이유를 찾아보니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란 단어와 만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그 지속가능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뜻이었습니다. 보통 자동차, 특히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차에서 이야기하는 지속가능성은 환경과 자원에 대한 부담을 줄여 앞으로도 계속 생산하고 사용할 수 있는가를 주로 뜻합니다. 물론 타이칸도 이런 면을 고려합니다. 그래서 독일 – 캐나다 – 중국에서 3원 생방송으로 이루어진 이번 월드 프리미어 행사가 친환경 공장 (독일) – 수력 에너지 (캐나다) – 풍력 (중국)을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타이칸이 말하는 지속가능성의 다른 측면은 ‘고성능의 지속가능성’ 이었습니다. 한 번의 제로백은 모델 S가 빠를지 모르지만 포르쉐는 타이칸은 발진 가속 시험을 최소한 20번 이상 반복해도 제로 백, 심지어는 제로 이백의 기록에는 거의 변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속 260km의 최고 속도로 배터리가 떨어질 때까지 계속 달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배터리나 모터의 냉각 성능 때문에 최고 출력을 짧은 시간만 사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이른바 ‘고성능 전기차’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가진 성능을 언제나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포르쉐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에 포함되어 있었던 겁니다.

여기에서 떠오르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포르쉐의 듀얼클러치 변속기인 PDK의 내구성입니다.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사용하는 어떤 브랜드는 발진 가속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는 론치 컨트롤 기능을 사용하기만 해도 변속기의 보증 수리를 거부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론치 컨트롤을 연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회수를 제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포르쉐는 그런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포르쉐 PDK는 최소한 3000번 정도 론치 컨트롤을 이겨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를 돌면서 평생 가혹하게 달리기만 하는 포르쉐 월드 로드쇼(PWRS)에 사용되는 차량들은 지난 번 우리나라에 왔을 때 대략 지금까지 7000번 정도 론치 컨트롤을 했는데 여전히 문제가 없다고 무덤덤하게 말했습니다. 즉 이것이 포르쉐가 이해하는 지속가능성이었던 겁니다.

또한 조종 성능에 대해서도 지속가능성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기차는 배터리의 위치 덕분에 무게 중심이 낮아진다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말합니다. 그런데 포르쉐는 타이칸의 조종 성능을 이야기하면서 전동 파워트레인이 내연 기관보다 약 5배 빠른 응답성을 보여준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즉 훨씬 민첩하고 정교하게 파워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섀시가 가진 조종 성능을 최대한 꺼내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즉 포르쉐는 타이칸을 통하여 전기차는 조종 성능에서도 엄청난 포텐셜이 있다는 것, 즉 스포츠카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한 겁니다.



마지막 지속가능성은 조금 기분이 상할 지경이었습니다. 고속 충전은 거의 쉬지 않고 계속 빨리 달릴 수 있다는 뜻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최고 270kW로 충전할 수 있다는 것은 80% 충전하는 데에 22분 걸린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5분 충전하면 100km를 더 달릴 수 있다는 뜻이었고, 회생 제동으로 무려 265kW의 에너지를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은 스포츠 드라이빙을 더 오래 즐길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즉 드라이빙의 지속가능성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포르쉐는 타이칸을 브랜드 최초의 전기차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전기를 동력을 사용하는 포르쉐 스포츠카로 만들었을 뿐이었습니다. 즉 포르쉐가 타이칸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지속가능성은 ‘포르쉐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지속가능성’이었습니다.

미래차가 다가옵니다. 자동차 산업의 판도가 뒤집힌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 브랜드, 자동차의 본질을 지켜나가는 포르쉐같은 브랜드가 있다면 지금 자동차에서 느끼는 본질적 즐거움이 그리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바퀴 달린 스마트폰? 이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자동차의 본질과 그 미래를 조금 더 밝게 볼 수 있었던 포르쉐 타이칸 월드 프리미어였습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나윤석 칼럼니스트 : 수입차 브랜드에서 제품 기획과 트레이닝, 사업 기획 등 분야에 종사했으며 슈퍼카 브랜드 총괄 임원을 맡기도 했다. 소비자에게는 차를 보는 안목을, 자동차 업계에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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