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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가 손해 보며 5000대나 판 Z8, 한풀이 그 이상의 효과
기사입력 :[ 2019-10-17 09:41 ]


BMW 507 그리고 Z8 (2)

(1부에서 이어집니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507의 처절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BMW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또한 제품 덕분이었다. BMW가 사력을 다해 만든 신작 “Neue Klasse” (뉴 클래스)는 고급차가 아닌, 채 2리터가 되지 않는 소형엔진을 장착한 실용적인 세단으로 그 속에는 507의 8기통엔진을 절반으로 쪼개 만든 4기통 엔진이 달려 있었다. 오직 실용성에만 매달린 튼실한 차로 BMW는 기사회생에 성공한다. 이때의 BMW 작명법은 엄청나게 단순했다. 그냥 배기량에 따라 1500/1600/1800/2000이라 이름 매긴 것이다. 이건 차가 한가지 밖에 없을 때나 가능한 짓이다.



1970년, 콴트가문이 임명한 새 회장(사장이 아니라 ‘회장’이다. BMW의 경영은 항상 이사회가 선임한 전문가가 맡는다) 에버하르트 본 쿠엔하임은 ‘숫자+배기량’로 구별되는 명료한 새 작명법을 만든다. 뉴클래스의 후속 E12에 세그먼트를 표시하기 위한 숫자 ‘5’가 처음으로 사용되고, 이것은 더 작은 차, 그리고 더 큰 차에 똑같이 적용되었다. ‘3’과 ‘7’이 연이어 데뷔한 것이다. 특히 3시리즈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세계시장 진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도약을 이끈 사장은 장장 24년 동안 BMW를 이끈 뒤 은퇴했다.



◆ Z8의 아버지, 베른트 피세츠리더

쿠엔하임이 물러난 뒤 이사회의 심의를 걸쳐 회장직에 추대된 베른트 피세츠리더 (Bernd Pischetsrieder)는 밖에서 보기에는 희한한 인물이었다. 그는 겨우 45세였고, 독일자동차 임원이 되기 위한 필수사항인 박사학위도 없었다. 저런 ‘얼라’를 뽑아서 어쩌자는 거냐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사회가 그를 밀어붙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피세츠리더는 BMW가 직접 키운 사내 엘리트였다. 대학 졸업 후 BMW에 입사할 때만 해도 그는 1년만 다니다 때려치울 생각이었고, 실제로 몇 번이나 관두려 했지만 회사에서 이를 막았다. 일을 너무 잘했기 때문이었다. ‘탈출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며 20년이 지나자, 그는 회사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꿴 젊은 중역이 되어 있었다. 개발, 시장플랜은 물론 노사협의에 해외공장 설립까지 회사 내의 전략적 결정에 대해 그는 매번 발군의 실적으로 응답했다. 그쯤 되면 꽤나 잘난 척 할 법도 하건만 그는 인망까지 높은 ‘엄친아’였다. 사내 모든 사람과 같이 노는 무시무시한 친화력 덕분에 직원들까지 그의 회장등극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



1993년의 어느 주말, 그날도 직원 은퇴식을 BMW 박물관에서 거하게 차려준 신임 회장님은 개발총괄인 볼프강 라이츨레(Wolfgang Reitzle)와 한가롭게 박물관 안을 어슬렁거리다가 멈췄다. 거기엔 거의 40년째 잠들어 있는 507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잡담이었다. 태생이 BMW맨인 사람에게 507은 그저 실패한 역사로 치부하기에는 아까운 차였다. 반석에 올라간 거대회사가 품은 헤리티지의 시발점으로서, 이 비운의 차를 모티브로 한 신차를 만든다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는 곧 실질적인 개발 논의로 이어진다. 라이츨레는 당시 막 BMW의 수석디자이너가 된 크리스 뱅글(!)을 불러다가 디자인 시안을 잡아보라고 족친다.

문제는 라이츨레가 뱅글의 디자인을 매우 싫어했다는 것이다. 그는 회사에 있는 내내 뱅글의 창조적 디자인을 깎아내렸고, 퇴사한 뒤에도 뱅글의 결과물에 저주의 독설을 날려댔다. 그의 의도가 담긴 ‘뱅글표’ BMW는 라이츨레가 관두는 1999년 이후에나 가능하게 된다. 결국 507의 디자인은 당시 BMW 소속 디자이너였던 헨릭 피스커 (Henrik Fisker, 나중에 독립해서 Karma를 만들게 되는)가 온전히 담당하여 진행하게 된다. 안팎으로 507의 고전미를 그대로 담되 현재의 BMW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련된 디자인이 그의 손에서 완성된다.



디자인이 잡혀가는 동안 차는 정식으로 E52라는 코드를 받아 개발이 진행된다. BMW의 기술 쇼케이스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Z8은 기존 플랫폼을 쓰지 않았다. 당시 자동차 제조기술의 화두였던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ASF)에 외판까지 모두 알루미늄을 쓴 전용 플랫폼이 새로 만들어진다. 길이 4400mm, 폭 1830mm에 높이는 불고 1318mm 밖에 안되는 낮고 넓은 형태가 잡힌다. 오른쪽 스티어링 사양(RHD)은 아예 개발도 안했다. 원래 미국만 보고 만들었던 선대모델처럼, Z8의 주력시장 또한 미국이었다.



1990년대였던 만큼 변속기는 6단 수동 한 가지만 준비되었다. 507의 오마주를 위해 엔진 또한 V8을 선택하되, 가장 고성능의 엔진을 꽂았다. M5(E39)에 탑재된 S62를 그대로 쓴 것. 4941cc의 M 사양 V8 엔진은 6600rpm에서 406ps, 3800rpm에서 50.9kg-m의 토크를 냈다. 알루미늄 구조 덕분에 M5보다 180kg 가벼운 1585kg의 차는 0-100km/h 가속을 4.8 초에 해냈고, 최고속도는 290km/h (실제는 250km/h에서 제한)에 달했다. 성능으로도 당대의 고성능차 반열에 오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차가 완성되어 갈 즈음인 1997년, 시장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BMW는 컨셉트 모델 한 대를 도쿄모터쇼에 내보낸다. 시판 자체는 거의 확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스타일링을 위한 최소한의 변형만 가한 컨셉트카 Z07이 선보인 것이다.

‘너도 복고냐’ 라는 일부의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실고객층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BMW는 이 차를 거의 그대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공간을 위해 윈드실드의 각도를 세우고, 소프트탑을 위해 운전석 측의 페어링이 제거된 정도였다.



◆ 40년만의 설욕

2000년 3월 Z8이 시판된다. 미국 시판가 12만 8,000달러(2019년 물가 환산 시 약 2억4천만원)의 적지 않은 가격은 사실 적자를 각오하고 책정한 것이었다. 딩골핑겐의 공장에서 만든 알루미늄 플랫폼을 뮌헨의 수작업라인으로 옮긴 뒤 일일이 조립한 차는 잘해봐야 하루 10대를 만드는 게 고작이었으며 대부분은 이조차 맞추기가 힘들었다. 주문의 태반이 인디오더(도색과 내장을 고객이 지정하는 주문방식)였기 때문이다. 이 차의 원래 목적인 ‘507의 부활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의 재고’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판매가 이루어져야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 차 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었다.

2002년, 목표량인 5,000대의 차량이 판매되자 BMW는 곧바로 Z8을 단종하고 뮌헨의 수작업라인을 폐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딩골핑겐에서는 계속 차체가 만들어졌다. 알피나(Alpina)가 Z8을 기반으로 한 차, 알피나 V8로드스터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튜너가 아닌 BMW 기반의 독자적인 제조사로 생각하는 이 회사는 Z8을 가져다 자신의 부품을 채운 새로운 차를 만들려 했다. 가장 큰 차이라면 원래의 Z8에는 없는 자동변속기의 탑재였다. 살사람은 다 샀다 싶었던 시장은 Z8 ‘오토’ Z8의 등장에 다시 동요했다. V12 엔진까지 밀어 넣으려 했지만, 엔진이 스티어링 랙과 간섭을 일으키자 포기했다. 대신 탑재한 B10 V8S의 4.8ℓ 엔진은 최고출력이 380ps로 줄었지만 최고속도가 약간 늘어나는 것으로 보상했다.

느긋한 주행을 위해 서스펜션의 세팅을 부드럽게 하고 딱딱한 런 플랫 타입 대신 일반적인 고성능 타이어를 달아 승차감도 좋아졌다. 555대의 알피나 로드스터까지 합쳐 총 5703 대의 Z8가 생산되었다. 고작 252대가 팔린 507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판매량이었다. Z8의 성공은 BMW에게 한풀이 이상의 효과를 가져왔다. 507이 재조명되자, 오랫동안 고성능 럭셔리차를 만든 전통의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 레트로 모델의 교과서

기나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BMW는 고전미 넘치는 로드스터를 현대의 기술로 부활시켰으며, 마침내 507이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달성했다. 이 특별한 차를 오래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BMW는 Z8의 단종 후 무려 50년간 부품공급을 선언했다. 태어날 때는 레트로였지만, 이제 Z8은 원판을 뛰어넘는 전설이 되어버렸다. 실패조차도 헤리티지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차, Z8은 자동차 회사가 자신의 역사를 다루는 가장 근사한 방법을 보여준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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