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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SUV와 ‘더 이기적인’ 아우토반
기사입력 :[ 2019-10-24 09:56 ]
독일을 뜨겁게 달구는 두 가지 이슈 SUV와 과속, 그리고 빈곤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독일이 자동차와 관련된 두 가지 문제로 시끄럽다. 하나는 SUV에 대한 비판이고, 또 하나는 아우토반 속도제한 갈등이다. SUV 비판 분위기는 이미 이 지면을 통해서도 몇 차례 전한 바 있다. 아우토반의 속도 제한 또한 새삼스럽지 않은, 오래된 풀리지 않는 난제다. 그런데 최근 이 두 가지 이슈가 CO2라는 공통된 문제로 더 주목받고 있다.



◆ SUV, 안전 논란에서 배출가스 문제로 증폭

독일에서 일고 있는 SUV 비판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이기적인 자동차’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기적인’은 상대적으로 높은 사고 위험이나 작은 차들이 덩치 큰 SUV로 인해 겪게 되는 불편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연료를 소비함으로써 생기는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과다 배출 문제까지 포함한다. 이런 점 때문에 기후에 악영향을 끼치는 자동차라는 부정적 인식이 계속 커지고 있다.

‘기후 변화’는 현재 유럽의 가장 큰 이슈다. EU의 모든 의제 위에 있는 핵심 아젠다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동차가 자주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됐고, 그중에서도 SUV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억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유독 SUV에 목소리를 높이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국제 에너지 기구(IEA)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산업별로 어느 정도 늘었는지 조사해 그 결과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가장 많이 CO2 배출량을 늘린 것은 ‘에너지 산업’으로 1.4기가 톤(1기가 톤=10억 톤)이 넘었다. 두 번째로 배출량이 많이 늘어난 것이 SUV였다.

<주요 산업별 2010년 이후 CO2 배출량 증감 (자료 IEA)>

에너지 산업 : 1.4기가 톤 증가
SUV : 5억 4천 4백만 톤 증가
중화학공업 : 3억 6천 5백만 톤 증가
화물차 : 3억 1천 1백만 톤 증가
항공 : 2억 3천 3백만 톤 증가
해운 : 8천만 톤 증가
승용차 : 7천 5백만 톤 감소

승용차의 경우 엔진 효율성 증대,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점유율 확대 등의 이유로 유일하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었다. 그에 반해 SUV의 CO2 증가세는 가파른 편이다. 판매량이 늘면서 그에 비례해 CO2 배출량도 많아진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SUV가 2010년 3천 5백만 대 수준이었으나 2018년에는 약 2억 대까지 늘었다고 밝혔다.



◆ 아우토반 속도 무제한의 신화 사라지나

SUV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 지구적 문제라고 한다면 아우토반의 속도 제한은 독일에 한정된 갈등이라 할 수 있다. 독일 녹색당은 2020년 1월부터 아우토반 전 구간의 최고 제한속도를 130km/h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리고 최근 연방 하원에서 이 문제를 두고 투표가 이뤄졌다. 법안 통과라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지 많은 독일인이 관심을 가졌다. (현재 독일 고속도로의 70%가 속도 무제한 구간이다.)

하지만 제안은 부결됐다.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126명,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498명(기권 7명)이었다. 녹색당, 좌파당, 그리고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 등은 아우토반의 속도 제한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원칙적으로 동의했었다. 하지만 집권당인 기독교 민주연합(CDU)과 연정을 구성 중인 사회민주당은 결국 CDU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기독 민주연합의 의견을 받아들여 반대에 표를 던졌다.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녹색당과 좌파당, 그리고 반대표를 던졌던 사회민주당은 여전히 자동차 사고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속도제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론 또한 환경 문제에 적극적인 정치인들에게 힘을 싣고 있다. 슈피겔 등 진보 매체는 물론, 빌트와 같은 보수 매체까지 가리지 않고 속도 제한에 찬성하는 여러 조사 결과를 기사화하고 있다. 물론 반대 목소리 또한 여전히 강하다.

그럼에도 여론이 아우토반의 속도제한 찬성 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환경 부분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슈피겔은 ‘기후 보호 주제는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졌다. 참가자 27,622명 중 53%가 ‘우리 시대의 아주 중요한 문제다’라고 답했다. 37%만이 ‘나에게는 다른 문제가 더 중요하다’라고 했다.

속도제한을 지지하는 쪽의 여론이 계속 커가고, 정치권 내에서 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유지된다면 아우토반의 속도제한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이뤄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 이산화탄소 증가와 가난의 문제

최근 국내 한 언론은 빈곤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에스테르 뒤플로, 그리고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빈곤 문제가 ‘기후 변화’와 같은 자연 현상에 의해 더 심화하고 있다고 했다.

유엔 보고서 등을 토대로 기후변화가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고, 빈곤층 대다수가 기후변화에 민감한 농업이나 천연자원에 의존하지만 잦아진 태풍, 가뭄, 홍수, 대형 화재, 기아, 해수면 상승 등으로 더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산업화에 일찍 뛰어든 나라들이 그렇지 못한 가난한 나라보다 그간 훨씬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선진국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이다. 잘 살게는 됐지만 환경은 더 빠르게 망가졌고,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더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다. 그리고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의 80%를 차지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보건뿐만 아니라 이상 기후에 따른 재해 발생에 더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늦기는 했지만 유럽은 자신들이 만든 이산화탄소 과다 배출 구조에 대해 반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유럽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쉽게 줄지 않는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든 이 차이를 좁혀야 한다. 지금 독일에서 SUV가 비판을 받고, 아우토반에서 과속하는 것을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운전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독일의 뉴스와 신문을 보면 거의 매일 어느 한 곳에서는 이동성(모빌리티) 사회의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를 다룬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분위기에 피로를 호소하고 반발의 움직임도 보이지만 환경이 우리의 미래이고 생존 문제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거대 담론은 일상의 소소한 행동 변화를 통해 제법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아우토반을 달리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시속 170~180km/h로 달릴 때 얻게 되는 속도감과 운전의 즐거움, 시간 절약 등은 독일에서 운전하는 자들만이 누리는 특권 같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나 역시 젖어 달리는 것에 매료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140km/h 이상 속도를 올리지 않게 됐다.

200마력 중반 수준의 SUV 구매 계약서에 사인 직전까지 갔다가 더 작은 엔진의 왜건으로 마음을 돌린 일도 있다. 무거운 SUV를 운용하며 굳이 기름값을 더 낼 필요가 있느냐는 아내의 제안도 있었던 터라 어렵지 않게 마음을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차는 전기 SUV가 되면 좋겠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과속이나 급제동 급출발을 안 하는 것, 트렁크 공간을 최대한 비워두며 차의 중량에 신경을 쓰는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특별히 환경을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이게 더 안전하고 기름값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이 하나둘 모인다면 기후변화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좋은 일을 하게 된다.

당장 SUV를 팔고 전기차를 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육식 소비를 끊고 완전한 채식주의로 돌아서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현 상황에서 환경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내 행동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을 해보자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이산화탄소 과다 배출국이다.

OECD를 기준으로 본다면 감축 노력을 기울이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리는 CO2 배출이 늘었다.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어느 면에서 보나 좋을 거 하나 없는 일이다. 자동차만 탓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현실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운전자 관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운전 습관 하나 바꾸는 것, 그 작은 날갯짓이 커다란 긍정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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