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News 주요뉴스

아메리칸 머슬카의 전설로 남은 닷지 바이퍼 스토리
기사입력 :[ 2019-12-09 10:34 ]


쉐보레 콜벳의 대항마를 꿈꾼 닷지 바이퍼 (1)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전성기 시절 미국의 자동차회사의 특징 중 하나는 여러 브랜드를 주렁주렁 거느리고 있던 것이다. 인수합병, 영역 확장, 딜러망 유지 등 나름의 이유야 잔뜩 있었지만, 밖에서 보기엔 저게 가능한 미국시장은 정말 희한하게 보이기는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회사에 십 수 개의 브랜드가 난립하는 경우마저 있었지만, 그래도 이중에서 엑기스만 선별하는 건 늘 가능했다.



GM을 대표하는 브랜드는 예나 지금이나 ‘쉐보레’다.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가장 미국적인 차를 만드는 브랜드의 속을 들여다보면, 소형 해치백에서부터 트럭과 스포츠카까지 미국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차가 빼곡하다. 빅3의 나머지 둘도 쉐보레와 각을 세우는 브랜드를 거느렸다. 크라이슬러(현 FCA)의 경우는 닷지(Dodge)다. 회사의 양적 규모를 담당하는 볼륨 브랜드이면서, 소형차부터 트럭과 머슬카까지, 경쟁모델로 채워 올린 라인업은 누가 보아도 쉐보레를 의식한 것임이 분명했다. 톱니의 이빨처럼 물고 물리는 라인업의 끝에 도달하면, 뜻밖에 마지막 자리 하나가 빈 것을 보게 된다. 쉐보레 콜벳(Corvette). 아메리칸 스포츠를 대변하는 이 독보적인 아이콘을 상대할 차만큼은 다른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1989년까지는 말이다.



◆ 아이콘을 만들자

1988년 1월, 밥 루츠(Bob Lutz)는 2년째 생각만 하던 일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려던 참이었다. 빅3의 요직을 거쳐 나중에는 GM의 부회장까지 오르게 될 이 사람의 당시 일터는 크라이슬러 그룹, 제품개발 담당 부사장이 직함이었다. 부임 후 역점을 두고 진행하던 일 중 하나는 대형 램(RAM) 트럭용 10기통 엔진이었다. 8기통 일색의 차들이 힘겨루기를 하던 상황에서 두 개의 실린더를 추가하는 것은 앞서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어느 날 루츠는 르노 F1프로그램에서 끌고온 개발 책임자 프랑수와 캐스터잉(Farancois Castaing)과 잡담을 나누다 엉뚱한 데로 이야기가 번진다.

“비자리니나 데토마소 같은 회사가 아직 있으면 이 엔진을 가져다 스포츠카를 만든다고 또 설레발을 쳤을지도 모르지”

“그런 회사는 요샌 없겠지만, 우리가 만들면 되지 않아요?



이날의 대화를 계기로 그의 머릿속에는 가능성의 ‘불’이 켜진다. 매출에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브랜드의 이미지를 바꾸고, 사람들을 판매점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관능적인 존재. 트럭과 앞바퀴 굴림 세단만이 빼곡한 지루한 라인업에 흥미와 긴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닷지에 콜벳 같은 차는 꼭 필요했다. 닷지에 그럴만한 차가 없었지만, 미국의 자동차 역사 속에는 딱 적당한 존재가 있었다.



◆ AC코브라

코브라는 콜벳과는 또 다른 미국식 스포츠카의 전형이었다. 원래는 영국의 AC Cars에서 만들어졌지만, 출력부족으로 별 빛을 보지 못하던 차는 미국인 캐롤 쉘비(Carroll Shelby)를 만나 미국제 V8엔진을 넣고 난 뒤에야 미국을 대표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이 차가 유명해진 이유는 그 야생마 같은 주행 특성 때문이었다. 마치 운전자를 깔보듯 날뛰는 차를 다독이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성공했을 때 돌아오는 희열은 그만큼 각별했다. 루츠 자신이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코브라427은 그의 ‘애차’ 이기도 했으니까.

원작자 캐롤 쉘비가 9년째 신형 코브라를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루츠는 그를 찾아간다. 하지만 함께 새로운 코브라를 만들자는 제의는 뜻밖에도 정중히 거절당했다. 심장이식수술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쉘비로서는 도저히 새 차에 정력을 쏟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 대신에 코브라의 아버지는 새 차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 아낌없는 조언을 전하며, 코브라의 ‘정신적 후속작’이 될 기틀을 만들어 준다. 지적 재산권이 여러 회사로 분산된 ‘코브라’ 라는 이름은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독사’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다른 이름들이 후보로 등장한다. 사이드와인더 (Sidewinder), 파이슨(Phyton), 맘바(Mamba)가 이런 저런 이유로 제외된 끝에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은 바로 ‘바이퍼’ (Viper) 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바이퍼는 만반의 준비가 된 프로젝트였다.



크라이슬러의 디자인 치프 톰 게일(Tom Gale)은 부사장실 앞을 지나가다가 얼떨결에 루츠에게 불려 들어간다. 딱 ‘5분만’ 시간 낼 수 있냐는 물음과 함께 시작된 대화는 정말로 5분 만에 끝났다. 훗날 두 사람 모두 바이퍼의 시작으로 기억하는 대화의 내용은 예상과는 달리 별 내용은 없는 간단한 이야기였다.

“코브라 부활 프로젝트를 해야겠어”

“전에 했던 거 있어요”

그걸로 충분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의중을 이미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밥 루츠만큼이나 톰 게일도 덕업일치로 명성을 떨친 양반이었다. 하루 종일 차를 디자인하다가 퇴근한 뒤에는 취미인 핫로드(Hot Rod)를 만드는 사람이었으니. 세계 유일의 양산 핫로드 폴리머스 프라울러는 당연하게도 그의 작품이었다. 구구절절 긴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게일 또한 코브라의 부활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었다. 대형 엔진을 탑재한 로드스터 디자인을 그는 1985년에 이미 완성시켜 놓은 상태였다. 루츠의 승인 후 불과 3주 만에 도면이 완성된 것은 미리 해놓은 것 덕분이었다.



◆ 궁극의 코브라를 행해

쉘비가 코브라의 후속작에 주문한 것은 ‘힘’과 ‘단순함’을 강조한 ‘재래식’ 스포츠카였다. 다만 여기에 도달하는 과정은 최신기술로 이루어진다. 전자식 엔진 제어 시스템(EMS)을 기반으로 한 파워트레인에, 섀시는 캐드로 설계와 해석을 진행하고, 초고성능 타이어로 마무리한다. 단 첨단 기술의 집합체 같은 모습과는 엄연한 거리를 두었다. 터보, ABS, 4WS, 전자제어 댐퍼나 4륜구동 같이 성능 판단의 지표가 될 만한 기술은 모두 배제되었다. 기계적으로 가장 단순하기에 순수한 차-엄청난 출력을 오직 뒷바퀴에 퍼붓는 차를 목표로 한 것이다. 여과없이 전해질 경험을 소화하는 것은 오직 운전자의 능력에 달렸을 뿐이다. 마치 코브라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새차가 코브라와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은 ‘엔진’이었다. 크라이슬러의 8기통 LA엔진을 기반으로 실린더 2개를 추가해 만든 10기통 엔진은 배기량만 8리터에 달했으며 어마어마한 부피를 자랑했다. 그래서 새 차의 레이아웃은 이 대형 엔진을 먼저 놓은 다음 그 주변을 만들어 나가는 주객이 전도된 방식으로 진행된다. 넓은 몸체와 긴 코, 짧은 데크 비율은 코브라의 모습을 재현하려 한 결과가 아닌, 이 덩치 큰 엔진을 수납하기 위한 ‘그릇’의 역할에 충실하려다 보니 도달한 결과에 가까웠다.

1988년 5월 클레이모델 승인을 통과한 차는 이듬해 1월의 모터쇼 출품을 위한 컨셉트카 개발을 즉시 착수할 것을 요구 받는다. 불과 7개월 만에 구동 가능한 쇼카가 완성되어 북미모터쇼에 전시된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부에 계속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Copyright ⓒ 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뒤로가기 인쇄하기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