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News 주요뉴스

자동차 제조사가 폭발적인 가속력에 유독 신경 쓰는 이유
기사입력 :[ 2019-12-13 11:05 ]


가속력이란 요소의 패러다임이 변한다

[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테슬라 모델3, 그중에서도 가장 성능이 뛰어난 퍼포먼스의 트림은 스펙상 절대 만만하게 볼 수 없다. 차의 가장 하부에 배터리를 달고 앞 208마력, 뒤 275마력 모터를 얹었다. 20인치 휠을 달았고, 한번 충전으로 415km를 달리며, 공차 중량은 1860kg 수준이다. 더 놀라운 것은 가속력과 최고속이다. 테슬라가 밝힌 공식 기록은 0→시속 100km 가속이 3.4초. 최고속도 시속 261km이다. 실제 이 차를 타보면 기대 이상의 폭발적인 가속력에 정신이 번쩍 든다.

0→시속 100km 가속 3.4초. 불과 몇 년 전까진 슈퍼카들이나 실현 가능한 가속력이다. 그런데 이젠 대량으로 생산하는 EV 세단이 자연스럽게 발휘하는 주행 성능이다. 한편으로 궁금하다. 이런 차가 우리에게 왜 필요할까? 확실한 것은 재미란 이유만은 아니다. 가속력의 발전, 혹은 가속력의 기준은 자동차 제조사에게 여러모로 중요하다. 직업상 자동차를 만들기 전에 실행되는 품평회에 자주 가본다. 이 자리에선 앞으로 등장할 신차의 많은 부분이 데이터로 나열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미 시장에 출시된 제품과 비교하며 목표를 정하기 위해서다. 여기에선 차의 성능뿐 아니라 디자인이나 편의장비, 가격까지도 타깃을 정해 놓고 비교한다.



가속력에 목표 수치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기술자들이 차를 만든 후에, 가속력을 측정해서 결과를 발표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단계에서 이미 가속력의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 그리고 그 목표를 기준으로 경쟁사 모델과 비교하며 가속력이 소비자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질문은 광범위하다. 하지만 그 핵심은 간단하다. 가속력이 자동차 성능에 중요한 지표라는 점이다. 좀 더 넓게 보면 가속력이 운전자를 기분 좋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럼 가속력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 것이고, 자동차 회사들은 이것을 어떻게 이용할까?



속도. 단위 시간 동안에 이동한 위치 벡터의 변위로서 물체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벡터량을 말한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속도를 잘 느끼지 못한다. ‘속도가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 차가 급가속을 할 때 속도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시속 300km로 일정하게 달리는 고속열차 안에서나 시속 900km로 날고 있는 항공기 안에서는 속도감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속도는 변화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결국 0→시속 100km 가속이란 측정 방식도 정해진 구간에서 속도가 변하는 과정, 그 질을 간단하게 표현하고 있다.



속도의 변화는 자동차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다. 가장 대표적인 속도의 변화가 바로 가속력. 가속력은 중력 가속도와 연관이 깊다. 우리가 자동차를 평가할 때 흔히 말하는 ‘G’가 바로 중력 가속도(Acceleration of Gravity)다. 지구와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인력에 의해 물체가 자유낙하 하면서 붙는 거리에 대한 속도의 비율, 대략 ‘9.81m/초²’를 기준으로 한다.

고성능 스포츠카가 급가속할 때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처럼 몸 전체가 짜릿한 느낌을 받아본 적 있을 것이다. 인간이 어느 정도 가속력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지만(사람마다 다르다), 경험상 중력 가속도 1G(9.81m/초²) 수준이면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계산해보면 0→시속 100km 가속을 3초대에 마무리하는 고성능 자동차의 가속력이 1G에 가깝다. 물론 이것은 전체를 계산한 평균 가속력이므로 실제 체감상 최대 가속력은 이보다 더 빠르게 느껴진다.



그럼 차를 만들 때 가속력을 무작정 올리면 좋은가? 왜 자동차 제조사는 이런 걸 알면서도 모든 차에 적절한 가속력 타깃을 정하는 것일까. 가속력은 엔진 출력, 자동차 무게, 타이어(수직항력) 같은 요소들은 기본이고 변속기의 반응 속도, 기어비와 최종감속비, 공기저항 등 수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결과다. 따라서 실제로 자동차를 개발할 때 0→시속 100km 가속을 1~2초 줄이는 것은 무척이나 복잡한 일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트릭이다. 제한된 상황에서 원하는 가속감을 얻고자 할 때 제조사는 차의 기계적 성능만을 높이는 게 아니라 인간의 체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조율해 가속력을 높일 수도 있다. 쉽게 말해 자동차의 가속력은 데이터 가속력과 체감 가속력이 다르다. 인간이 속도감을 느끼는 요소를 튜닝하면서 실제보다 더 높은 즐거움을 만들 수 있다. 여러 자동차를 타보면 실제론 느리지만, 가속이 빠르게 느껴지는 자동차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인간이 가속을 느끼는 요소는 여러 가지다. 시각적인 속도감, 청각으로 감지하는 배기 사운드와 윈드 노이즈, 차체로 전해지는 진동 등이다.



또 엔진의 출력 범위도 영향을 미친다. 0→시속 100km 가속이 4초로 똑같은 결과를 내는 두 대의 차가 있다고 가정하자. 한쪽은 고압 터보차저로 초반부터 급격하게 토크를 뿜는 타입, 또 한쪽은 자연흡기 엔진으로 출력이 평탄하게 오르는 타입이라고 보자. 그럼 운전자 입장에서 더 빠르다고 느껴지는 차는 출력이 급하게 분출되는 쪽이다. 이것을 일반적인 시승기에서는 ‘펀치력’이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가속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동차 제조사의 세팅에 녹아 있는 노하우였다. 스포츠카같이 가속력이 돋보여야 하는 경우 배기음 같은 요소들을 강조해 가속할 때 재미가 배가되도록 한다. 고급 세단처럼, 이와 반대의 경우가 필요할 땐 속도감을 느끼는 요소를 최대한 억제해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조율한다.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자동차 가속력이란 요소도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아주 고성능 스포츠카만 실현하던 가속력의 영역에 전기차들이 자연스럽게 발을 들여놓는다. 그러면서 ‘고성능’이란 경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대중화시킨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내연기관 자동차들이 0→시속 100km 가속 수치를 더 이상 공개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전기차의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고 시장점유율이 높아질수록,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가속력을 특·장점으로 내세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김태영 칼럼니스트 : 중앙일보 온라인 자동차 섹션을 거쳐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자동차생활>, <모터 트렌드>에서 일했다. 현재는 남성지 <에스콰이어>에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주로 다룬다.

Copyright ⓒ 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뒤로가기 인쇄하기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