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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름 자동차 모델은 어쩌다 자취를 감췄나
기사입력 :[ 2019-12-29 10:19 ]
국산차에도 순우리말 이름, 한글 이름표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자동차 대국이지만 정작 우리말 이름이나 한글 표기 이름은 없는 형편이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ELANTRA’와 ‘엘란트라’ 중 어느 쪽이 보기 좋은가? 1990년대 중반 아는 분이 엘란트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글로 만든 ‘엘란트라’ 이름표를 붙이고 다녔다. 자동차에 한글 표기가 없다는 점이 안타까워서 자동차 이름 표기를 한글로 하고 다녔다. 어떤 식으로 만들었거나 구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굉장히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워낙 신기하고 희소한 물품이라 세 번이나 누군가 떼어가는 바람에 붙이기를 포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최근 과거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소식을 들었다. 용품 업체가 한글 이름표나 엠블럼을 만들어서 판다고 한다. 브랜드나 차종, 트림 명을 한글로 표시한 제품으로 차에 붙이기만 하면 된다. 보편화한 제품은 아니고 소량 주문 제작해서 파는 수준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자신의 차를 좀 더 개성 있게 보이도록 하려는 사람들이 사서 붙이고 다닌다. 사람들은 대체로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늘 보는 익숙한 한글이지만, 자동차에서 그동안 볼 수 없는 부분이라서 신기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서 유일하게 발달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우리말 이름이나 한글 표기가 없다. 대부분 영어이고, 그 밖에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자동차 브랜드나 차종을 보면 자국 사람 이름이나 지명을 종종 쓰는데, 국산차 업체 중에는 그렇게 하는 곳이 거의 없다.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큰데 정작 고유한 우리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말 이름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새나라’라는 자동차 회사가 있었고, 누비라와 맵시, 무쏘, 야무진 등 일부 자동차에 우리말 이름을 썼다. 누비라는 ‘세계를 누빈다’에서 나왔고 맵시는 ‘보기에 좋게 곱게 다듬은 모양새’를 뜻한다. 야무진은 똑똑하고 기운차다라는 야무지다에서 나온 말이다. 무쏘는 코뿔소과에 속하는 무소를 세게 발음한 이름이다. 순수한 우리말 이름이지만 이들 이름도 표기는 영어로 했다. 최초 국산 자동차로 꼽는 ‘시발’은 순수한 우리말은 아니지만 표기를 한글로 했다. 순우리말을 한글로 표기한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순우리말 이름이나 한글 표기는 왜 하지 않을까? 자동차는 세계 시장을 상대로 팔기 때문에 이름은 보편성이 높고 쉽게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순우리말 이름이나 한글 표기는 우리나라 안에서만 통할 테니 자동차 회사도 붙이기 힘들 터다. 한글 표기는 못 알아보니 그렇다 쳐도 이름은 순우리말로 지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순우리말 중에도 발음이 외국어와 비슷한 것이 있으니 말이다. 뜻은 모를 수 있겠지만, 자동차 이름 중에는 뜻을 모른 채 쓰는 이름이 많다. 좋은 뜻이라면 알려주면 된다. 입에 잘 감기는 이름이라면 사용을 고려해 볼 만하다.

우리말이 외국어보다 못하다거나 어색하다는 생각도 우리말 이름을 꺼리게 하는 요소다. 자동차 이름은 지명을 많이 사용한다. 외국 지명은 멋있고 세련돼 보이지만 국내 지명은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고 여긴다. 자동차 이름으로 쓰기에는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해외 지명이 속한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 지명이 어색할 수 있다. 오히려 그쪽에서 보는 우리 지명이 더 새롭고 참신해 보인다. 외국어 이름 중에는 지명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물을 나타내는 이름도 발음은 멋있어도 뜻을 보면 굉장히 소박하고 촌스러운 것도 있다. 사람 이름도 마찬가지다. 우리말이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한글화가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세계화 시대에 굳이 우리말이나 표기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전 세계에 통용되고 익숙한 방식을 따르는 것이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하는 자동차 산업 특성에 더 맞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말 이름이 거의 없다는 것은 다양한 개성 추구 측면에서 안타까운 부분이다.

우리말 이름이나 한글 표기는 장단점이 있어서 전면적으로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선택의 기회를 준다거나 지역을 분리하면 어떨까? 차 이름을 현지명과 수출명을 다르게 하는 방식은 이미 널리 퍼졌다. 지역에 익숙한 이름을 써서 인지도를 높이려는 전략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세계 시장에 통용되는 순우리말 이름이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국내에는 순우리말 이름으로 판매하고 해외 시장에서는 세계 시장에 맞는 이름을 붙인다. 한글 표기는 옵션으로 마련해서 원하는 사람에게 출고할 때 한글 이름표를 붙여서 내보낸다. 디자이너들이 멋지게 디자인하면 보기에도 멋있다. 스페셜 에디션으로 이름을 한글로 적은 모델을 선보여도 된다.



우리말 이름 사용이 전혀 없지는 않다. 쌍용자동차는 해외 일부 시장에 무쏘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사용한다. 렉스턴 스포츠에 무쏘 이름을 붙여 판매한다. 누비라는 국내에서 라세티로 바뀌었지만 일부 해외 시장에서는 누비라 이름을 유지했다. 순우리말이나 한글 표기는 아니지만 국내 지명을 담은 사례가 있다. 현대자동차 고성능 브랜드 ‘N’은 R&D 센터가 있는 ‘남양(Namyang)’을 상징한다. 현대기아차는 자사 콘셉트카를 H〇D-숫자, K〇D-숫자로 구분한다. 동그라미 부분에 들어가는 알파벳은 지역을 가리키는데 N이 들어가면 남양이다. 상징하는 알파벳 표기이지만 뜻에 국내 지명을 담았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대국이다. 그만큼 세계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고 인지도도 높다. 위상이 높아진 만큼 세계 시장에 통용되는 모습 외에 한국차만의 특색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순우리말 이름은 한국차의 개성을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다. 요즘에는 자동차 이름도 기호화되어간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하고 체계화된 라인업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크다. 자동차에 쓸 만한 이름은 다 썼다는 말도 나온다. 자동차 이름은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하므로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한정적인데 전 세계에 워낙 많은 차가 나오다 보니 쓸만한 이름은 바닥났다.

의미 있는 이름이 사라져 가고 쓸만한 이름이 부족한 이때, 좋은 뜻이 담긴 순우리말 자동차 이름이 이름 부족 현상을 해소하고 차를 더 돋보이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한글 표기 또한 한국 시장에 맞는 새로운 시도로 인정받을 수 있다. 2020년대가 시작된다. 국산차에도 순우리말 이름, 한글 이름표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

임유신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모터 트렌드>, 등을 거쳤다. 얼마 전까지 글로벌 NO.1 자동차 전문지 영국 BBC <탑기어>의 한국판 편집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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