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News 주요뉴스

‘배기량이 깡패’라는 사실을, 바이퍼는 그 존재로 입증했다
기사입력 :[ 2019-12-31 15:13 ]


쉐보레 콜벳의 대항마를 꿈꾼 닷지 바이퍼 (2)

(1부에서 이어집니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바이퍼에게는 두 가지 정도 알려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 있다.

첫째, 1989년의 모터쇼 시점에서 바이퍼는 발매가 확정되지 않은 컨셉트 모델에 불과했다. 4.4m의 유선형 차체에 대배기량 엔진을 넣은 2인승 로드스터는 그 자체로 쉘비 코브라의 재림이라고 할 만큼 매력적이었지만, 크라이슬러 이사회는 이걸 양산하기까지 부어야 할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이 차에 홀려버린 상태, 아니 정확히는 이 차의 심장에 몽땅 마음을 빼앗겨 버린 상태였다. 6리터급 V8엔진을 가져다 실린더 2개를 추가한 10기통 엔진. 터보나 수퍼차저와 같은 부가장치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8리터나 되는 실린더의 펌핑에만 의존하는 엔진이라니. 이 물건이 뿜어낼 가공할 토크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등장시점에서 이 차가 아메리칸 스포츠의 정점에 서는 것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를 먼저 손에 넣겠다며 수백통의 편지가 수표를 통봉한 채 회사로 날아들었다. 경쟁사의 중역들이 ‘몰래’ 전화를 걸어와 차 한 대만 구해달라는 청탁을 할 지경에 이르자 루츠는 성공을 확신한다. 그는 이사회를 설득해 마침내 양산승인을 받아냈다. 주어진 시간은 2년. 이 기간 내 개발과 양산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둘째, 일설과 달리 바이퍼의 엔진은 트럭엔진이 아니다. 10기통 엔진의 탑재는 확정된 상태였지만, 무엇을 쓸지는 뚜렷하게 정해진 것이 없었다. 애당초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된 10기통 매그넘 엔진은 대형 트럭을 위해 설계한 것으로, 스포츠카에 쓰기에는 무게, 토크밴드, 한계 회전 수 모두 적당한 물건이 아니었다. 당시 크라이슬러와 한식구였던 람보르기니의 V10 엔진을 기반으로 초도 설계가 시작되지만, 이번에는 정체성 문제가 불거진다. 이딴 게 무슨 아메리칸 스포츠냐는 내부의 ‘항의’에 직면한 회사는 결국 기존 엔진을 몽땅 뜯어고치기로 한다.



기존의 푸시로드식 10기통 엔진의 설계를 유지하되, 주철제 블록과 헤드를 알루미늄재질로 바꾸는 작업이 람보르기니사에 다시 떨어졌다. 다기통 알루미늄 엔진의 개발 노하우라면 이쪽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록의 재질을 바꾸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소재가 바뀐다는 것은 지지하는 구조와 냉각방식까지 바뀐다는 것을 의미했다. 강화 리브를 넣고 워터재킷을 깡그리 새로 설계한 엔진은 더 이상 트럭 엔진이라 보기 어려운 물건이 되어 있었다.



2년 뒤인 1992년 1월, 약속대로 바이퍼가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시작한다. 최초의 바이퍼, RT/10은 메이저 제작사가 만든 양산차라고 보기에는 모자란 구석이 꽤나 많은 차였다. 바이퍼에는 측면창이란 것이 없었다. 도어핸들도 없었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비닐창의 지퍼 사이로 손을 비집어 넣은 채 도어 레버를 제껴야 했다. 캔버스 천 재질의 지붕은 수동으로 떼고 붙여야 했으며, 고속으로 달리다 보면 뜯겨 날아가 버리기 일쑤였다. 에어컨도 없었다(!) 실내로 유입되는 10기통 엔진의 열기는 마치 운전자의 다리를 익혀버릴 듯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무도 이걸 가지고 불평하지 않았다. 정교한 스포츠카라기보다는 오히려 바퀴 달린 엔진에 가까웠던 차는 코브라 이후 오랫동안 아메리칸 스포츠를 기다려온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육중한 크랭킹 뒤, 온몸을 떨며 깨어나는 엔진 소리는 카매니아라면 누구라도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게 만들었다. 페달을 툭 치면 패악질하듯 토해내는 폭음은 아예 껄껄대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체적이 799cc에 달하는 실린더 열개를 이어 붙인 엔진은 3600rpm에서 64kg.m에 달하는 토크를 뱉아냈고, 채 5000rpm을 찍기도 전에 400마력을 넘겼다. 0-100km/h는 4.3초에 끊었고, 0-400m는 12.5초만에 주파했다. 트랙션 컨트롤도, ABS도 없었지만, 그것조차 매력 포인트가 되어 버렸다. 통제를 벗어나려는 듯 몸부림을 치는 차는 그래서 더욱 소유욕을 자극했다.

닷지 브랜드의 이미지 리더 역할을 위해 크라이슬러는 바이퍼의 물량을 세심하게 조절했다. 배정된 연간 물량은 3,000대. 세금을 포함한 시판가 55,600달러 (2019년 물가 환산 시 약 9800만원)는 시장 수요 때문에 단박에 10만달러를 넘어섰으며, 심지어 20만달러를 주고 사는 사람까지 생겼다. 콜벳에게는 일어난 적 없는 일이었다. 전시된 차를 보러 닷지 딜러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크라이슬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바이퍼의 목표는 달성되었다.



◆ 3세대를 거친 차

1996년이 되자, 마이너체인지 버전이 등장한다. 이제 바이퍼는 제대로 된 도어핸들과 유리창을 달았으며, 에어백과 에어컨도 생겼다. 측면 배기관을 금지하는 지역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배기구도 뒤로 보내졌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쿠페형 모델 GTS의 등장이었다. 쿠페 형상을 통해 공력특성이 크게 개선된 차는 450마력으로 출력이 늘어난 엔진과 함께 바이퍼의 주력 모델로 떠오른다. 이 차의 등장과 함께 모터스포츠로의 진출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2002년에는 풀모델 체인지된 2세대 바이퍼가 등장한다. 다임러 크라이슬러 체제에서 닷지는 그룹의 볼륨을 책임질 브랜드였다. 닷지의 이미지 리더에게도 걸맞는 지원이 이어졌다. 크라이슬러의 고성능 부서 Street and Racing Technology(SRT)가 전담한 차는 그동안의 레이스 활동을 응축시킨 결과물 같은 차였다. 컴퓨터 유체해석을 통해 안팎으로 다듬어진 차는 더 가벼워졌고 8.3리터로 확대된 엔진은 이제 500마력을 넘는 출력을 냈다. 지속적인 레이스활동, 그리고 이를 통한 성능향상의 선순환은 바이퍼를 점점 정교한 스포츠카로 단련시켜 갔다. 2008년, 바이퍼의 고성능 서킷사양차인 ACR이 뉘르부르크링 랩에서 7분 22초를 기록한다. 당대 스포츠카의 최고자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지만, 더 이상 바이퍼가 양키 머슬카로 매도 당하는 일은 없었다.



2010년 크라이슬러의 매각과 합병으로 잠시 명맥이 끊겼던 차는 2013년 3세대로 부활한 뒤, 2017년까지 생산되었다. 바뀐 세상의 법을 따라 트랙션 컨트롤이 들어갔지만, 자연흡기 V10엔진의 FR이라는 방식만큼은 끝까지 지켰던 차는 사이드커튼 에어백이 강제조항이 되면서 마침내 단종의 수순을 밟는다. 2017년 최종판인 8.4리터 사양은 649마력의 출력에, 토크는 83kg.m에 달했다. 까다로운 환경규제를 모두 맞추면서 이루어낸 결과였다. ‘배기량이 깡패’ (no replacement for displacement)라는 사실을, 바이퍼는 그 존재로 입증했다.



◆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차

초대 바이퍼가 발매된 지도 이제 30년이 흘렀다. 발매 30주년이 되는 2020년 새해 벽두, 닷지가 새 바이퍼를 내놓을 것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새 차의 엔진은 이미 정해진 상태다. 헬켓(Hellcat)의 V8수퍼차저를 이식받은 차는 아마도 이름에 걸맞는 출력과 자태를 가지고 나타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가 아는 바이퍼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이제 그 누구도, 자연흡기 8리터 V10엔진의 차 같은 것은 만들지 않을 것임을. 그래서 그 차와 함께, 우리가 알던 자동차 세계의 한 페이지도 영원히 넘어가 버렸음을.



지금까지 [변성용의 사라진 차]를 애독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Copyright ⓒ 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뒤로가기 인쇄하기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