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News 주요뉴스

EV1이 10년만 더 버텼어도 테슬라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기사입력 :[ 2017-09-27 14:51 ]
세계의 자동차들 (46) 왜 그 때 전기차를 죽여가지고…GM EV1

[안민희의 드라이브 스토리]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보니 이제 전기차가 우리 삶에 더욱 가까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은 전기차의 점유율이 아주 낮다고 하지만, 주요 제조사들이 전기차를 앞다퉈 쏟아낼 때면 커다란 흐름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은 20여년 전에 GM이 양산했던 전기차 ‘EV1’을 소개합니다. 제원표만 보면 요즘 전기차만큼 괜찮은 성능을 냈건만 역사의 뒷길로 사라진 모델이지요. 오늘의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1990년 1월, GM은 LA 모터쇼에서 전기차(EV) 콘셉트 ‘임팩트(Impact)’를 내놓으며 “앞으로 전기차를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사실은 정치적 이슈가 배경에 있었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환경문제 문제 해결을 위해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무공해차’ 판매를 요구하는 동시에 배출가스 저감을 요구했다. 따라서GM이 무언가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는 판단이다.



1994년, GM은 시험용 전기차 50대를 만들어 소비자 여럿을 상대로 빌려주며 데이터를 수집했다. 반응은 뜨거웠지만 GM은 ‘EV는 아직 시기상조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캘리포니아 주를 상대로 “신차의 2%를 무공해차로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상당한 비용이 예상되며 장기간에 걸쳐 충전소를 확보하는 일도 매우 어렵다. 이제는 국회의원들과 규제 당국자들이 동의하고 기한을 연기하거나 철회하기를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1996년, GM은 자사 최초의 전기차 ‘EV1’을 내놓았다. 미래적인 디자인과 매력적인 실내의 2인승 쿠페인 EV1은 시대의 총아였다. 프레임 소재로 알루미늄을 사용했으며, 차체 패널은 플라스틱을 사용해 무게를 줄였다. GM은 EV1을 약정을 맺고 매월 임대료를 내는 조건으로 소비자에게 빌려주는 ‘임대(리스)’ 방식으로만 팔았다. 월 399~549달러(현재가치 약 61~97만 원)을 내면 전기차 운전자가 될 수 있었다.



전기모터는 최고출력 137마력(102kW), 최대토크 15.2㎏·m을 냈다. 0→시속 80㎞ 가속에 6.3초. 0→시속 97㎞ 가속에 8초가 걸렸다. 최고속도는 시속 129㎞에서 전자식 리미터를 사용해 제한을 걸었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130~160㎞. 가정용 충전기로 집에서 충전하면 됐다. 충전에는 8시간이 걸렸다. 1999년 등장한 2세대 모델은 니켈수소배터리(NiMH)를 적용해 주행거리를 160~230㎞ 까지 끌어올렸다.

요즘 나온 전기차와 일부 비슷한 성능을 내는 것을 감안하면 훌륭한 수준이다. 그런데 정작 EV1은 많이 팔리지 않았다. 애초에 많이 팔 계획 자체가 없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GM이 1999년에 EV1의 생산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전기차에 커다란 이익 기대하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정책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주가 ‘무공해차’ 계획 대신 좀 더 온건한 ‘저공해차’ 계획을 택했기 때문에 굳이 전기차를 만들 필요가 사라졌다는 판단이다.



2003년, GM은 공식적으로 EV1 프로그램을 취소했다. “수익을 낼 수 없을뿐더러, 서비스 인프라를 유지하는 비용 때문에 기존 임대를 갱신할 수 없다. 모든 자동차는 GM의 소유로, 다시 반환 받겠다”고 밝혔다. EV1을 빌려타던 사람들은 GM에 차를 인수하고 싶다며 수차례 항의 서한을 보내고 심지어 돈까지 보냈건만 GM은 거절했다. 그리고 EV1을 회수한 뒤에 폐기처분했다.

왜 GM은 갑자기 EV1 프로그램을 접어야 했을까? 게다가 남은 차는 왜 모조리 폐기처분했을까? 갑작스레 EV1은 미스터리의 대상이 됐다. 사람들은 “GM은 EV로 자동차 산업의 구조가 바뀌는 것을 두려워했다”, “EV1 때문에 다른 주에서 또 다른 규제가 생길까봐 없앴다”, “사고 시 GM이 보상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없앴다” 등 다양한 추측을 쏟아냈다. 멀쩡한 차를 싸그리 잡아다 부쉈는데 논란이 안 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2006년 등장한 다큐멘터리 영화 <누가 전기차를 죽였나?>는 “EV1 프로그램이 석유산업을 위협했기 때문에 제거됐다”고 주장했다. GM은 이에 대해 “상업적으로 이용가능하지 않았으며, 자동차용 부품 수급에 문제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허나 사람 앞길은 알고도 모를 일이다. 이후 석유 위기, 금융 위기를 겪은 GM은 “EV1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하이브리드를 개발하지 않은 것은 최악의 결정이었다”고 자책했다. 만일 EV1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갔다면 어땠을까? 이미 GM에게는 쉐보레 볼트가 있으니 무리한 상상일수도 있겠지만, EV1을 계속 만들었더라면 아마 테슬라 대신 GM이 독보적 인기를 끌었을 수도 있겠다. ‘딱 10년만 더 버텼어도…’.

자동차 칼럼니스트 안민희

Copyright ⓒ 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뒤로가기 인쇄하기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