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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가 중국 공략하려다 헛물켠 못생긴 소형차 C88
기사입력 :[ 2017-10-07 08:14 ]
세계의 자동차 (47) - 포르쉐가 만든 중국용 소형차, C88

[안민희의 드라이브 스토리]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자리한 포르쉐 박물관은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과 함께 슈투트가르트를 찾은 자동차 마니아들의 필수 여행 코스로 꼽힙니다. 포르쉐 마니아라면 한 시대를 장식한 모델들을 보며 특별한 감정을 느끼실테지요. 그런데 다른 차들과 달리 못생긴 소형차 한 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포르쉐가 중국 공략을 위해 만든 소형차 C88을 소개합니다.



1990년대 초반, 중국 정부는 ‘국민차 공개입찰’ 사업을 벌였다. 점차 늘어나는 자동차 수요층에 맞춰 작고 합리적인 새로운 국민차 만들어 인민을 상대로 보급하려 했다. 허나 중국 자동차 회사의 역량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해외의 자동차 회사들을 상대로 중국용 자동차에 대한 입찰을 받았다. 4개 회사를 선정해 중국에서 생산해 판매할 기회를 주겠다는 ‘당근’도 내걸었다.

여러 회사들이 주저없이 뛰어들었다. 미래에 중국이 자동차 산업에서 차지할 비중을 고려하면, 적을 키우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이익이 보이는 일이었다. 심지어 포르쉐도 뛰어들었다. 고고한 스포츠카 제조사가 중국 국민차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좀 의아하다. 하지만 당시의 포르쉐는 판매 위기를 겪고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던 차였다.



따라서 포르쉐에게는 손실 메울 절호의 기회였다. 스포츠카 회사라지만 소형차에 대한 노하우가 없지도 않았다. 다른 회사의 소형차 개발에 참여해 기술 공유도 했기 때문이다. 한편 입찰 조건으로 최소 40% 이상의 국산화율을 내걸은 중국 정부의 구미도 맞출 겸 포르쉐는 중국 엔지니어 바이어와 협력해 단 4개월 만에 개발을 끝냈다.

포르쉐가 준비한 자동차의 이름은 ‘C88’. 중국을 뜻하는 알파벳 'C'(China)에, 중국에서 행운의 숫자인 ‘8’을 2개 더한 이름이다. 숫자 8이 하나만 붙었더라면 한국에서 엄한 인기를 얻었을테다. 포르쉐는 C88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중국에서 단일 모델로 연간 30~50만 대 생산할 수 있다면 꾸준한 수익을 올려 경영 악화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그래서 포르쉐는 C88의 다양한 버전을 계획했다. 문 2개 달린 기본형과 4개 달린 고급 버전, 픽업 트럭 버전도 계획에 올랐다. 박물관에서 만난 모델은 4도어 세단. 구성은 최대한 단순하게 다듬되 중국인들의 구미에 맞춘 디자인을 더했다. 헤드램프와 분리된 눈물점 모양의 방향지시등 등 단가 낮추려는 요소도 분명했지만.

실내의 구성이 인상적이다. 유선형으로 다듬은 대시보드는 ‘사이버틱’한 느낌이 들 정도다. 운전자 쪽으로 살짝 기운 기어레버, 원형 디자인을 강조한 계기판, 센터페시아를 운전석쪽으로 살짝 비틀어 조수석과 시각적으로 분리하는 구성을 가족용 소형차에 적용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다양한 구동계를 얹어 수요에 대응할 계획도 세웠다. 엔진은 직렬 4기통 1.1L 휘발유(최고출력 47마력)부터, 직렬 4기통 1.6L 터보 디젤(최고출력 67마력)의 2가지로, 수동 4단, 수동 5단, 자동 4단의 3가지 변속기 중 골라 짝지어 앞바퀴를 굴린다. 최대한 많은 공간 확보해야 하는 소형차급에서는 앞바퀴굴림이 유리하기 때문.

C88은 성능보다는 연비에 초점을 맞춘 차였다. 공차중량 780~980kg의 가벼운 몸무게 덕분에 최고속도는 시속 140~165km에 달했다. 하지만 가속이 느렸다. 자료에 따르면 0→시속 100km 가속에 16~22초가 걸렸다. 그러나 연비는 무척 뛰어났다. 1994년 기준, 휘발유 모델은 16.1~18.2km/L, 디젤 모델은 22.2km/L. 성능에 대한 아쉬움을 덮기 충분하다.



당시 포르쉐는 C88의 가격을 기본형부터 최고급형까지 8,000~1만4,000 도이치마르크 정도로 잡았다. 체감을 위해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554만~970만 원. 당시 기준에도 싼 차가 맞았으리라 예상한다. 포르쉐는 1994년 베이징 모터쇼에서 C88을 공개하며 중국을 향한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허나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1995년, 중국은 국민차 프로젝트를 모조리 취소했다. 그리고 자동차 제조사들을 상대로 중국 기업과 합작해 자동차를 만들도록 유도했다. 게다가 아이디어도 도용했다. 이에 대해 독일의 <포커스>는 “C88의 대다수 세부사항이 중국차에서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결국, 포르쉐는 C88을 양산하지 못했다. 그런데 세상사는 정말 알 수 없다. 20년이 지난 지금, 미래의 일로 여기던 중국차의 위협은 현실이 됐다. 중국은 연간 2,800만 대의 신차를 파는 세계 최대 시장에 올랐다. 어려움에 시달렸던 포르쉐는 고공행진 중이다. 만일 당시 C88을 만들었다면 오늘 같은 길을 걸었을까? 결과만 보면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안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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