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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2인자의 설움을 참아낸 럭셔리 메이커 벤틀리
기사입력 :[ 2017-12-12 14:42 ]


소품종, 소량 생산,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영국 자동차 (6)
수제작 중심의 세계 3대 명차로 불리는 벤틀리 (1)

[황욱익의 플랫아웃] 현재 폭스바겐 그룹 산하에서 부가티와 함께 럭셔리 라인업을 담당하는 벤틀리는 오랜 시간 2인자의 설움을 간직한 자동차 메이커이다. 수제작, 운전자 중심의 벤틀리는 한때 롤스로이스 산하에서 롤스로이스의 스포츠 버전 정도로 인식되었으나 사실은 두 차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쇼퍼 드리븐 중심의 롤스로이스, 운전자 중심의 벤틀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해 왔지만 1990년대 이후는 완전 별개 브랜드가 되었다. 세계 최고의 럭셔리를 추구하던 두 브랜드의 아이러니한 점은 두 회사 모두 독일의 대중차 브랜드의 산하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벤틀리의 창업자인 월터 오웬 벤틀리는 1888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았던 오웬은 철도 엔지니어링을 배우면서 꿈을 키운다. 그러나 당시 영국에 유향처럼 번지던 모터사이클에 심취하게 되면서 장거리 트라이얼과 레이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철도 회사의 견습 엔지니어 생활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 오웬은 런던 유니크 택시 회사를 거쳐 형인 호레이스 밀러 벤틀리과 함께 프랑스 DFP 자동차 매장을 인수해 벤트리&벤틀리 리미티드를 설립한다. 이 회사가 현재 벤틀리의 모태가 된다.



DFP의 광고 수단으로 레이스를 선택한 오웬은 1912년 2리터 레이스에서 우승했으며, 이후 영국 내 최고속 기록을 수립하며 이름을 알린다. 특히 엔진 설계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오웬은 1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해군항공대에 알루미늄 피스톤을 납품하면서 기술자로 인정받았으며 이후 벤틀리 로터리라 불리는 BR1과 BR2 엔진을 선보인다. 세계대전 후 다시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된 오웬은 1919년 초 험버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FT 버제스, 해리 발리와 함께 새로운 자동차를 설계했으며 형인 호레이스 밀러 벤틀리는 본격적인 자동차 생산을 위한 벤틀리 모터스 설립을 위한 자금을 모았다.



◆ 첫 모델 3리터의 등장과 스포츠 감성

1921년 등장한 벤틀리의 첫 모델 3리터는 직렬 4기통 엔진에 고든 크로스비가 디자인한 보디를 얻은 모델이다. 당시만 해도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은 섀시와 엔진, 변속기를 제작하는 곳과 보디를 제작하는 코치빌더의 협업으로 완성된 모델을 출시했는데, 벤틀리 3리터는 블루 라벨, 그린 라벨, 레드 라벨로 구분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같은 모델명을 사용한다고 해도 다양한 보디타입이 존재했으며 주문자의 요구조건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었다.

오웬은 벤틀리의 홍보를 위해 3리터를 레이스에 출전시키는 것을 결정한다. 당시 유럽 레이스를 휩쓸던 부가티에 비해 크기가 컸던 벤트리 3리터는 출시 첫 해인 1921년 시즌부터 여러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일반 판매는 이듬해인 1922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스포츠카 드라이버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벤틀리 3리터는 이후 제작되는 벤틀리 전 모델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1924년 오웬과 버제스는 6기통 엔진과 섀시를 설계했다. 3리터에 비해 출력을 올린 6 1/2 엔진을 올린 빅식스 벤틀리는 1926년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유럽의 유명 부호이자 아마추어 레이서인 울프 바나토가 벤틀리 모터스의 회장 겸 대주주가 된 것도 이 시기였다. 울프 바나토는 벤틀리로 르망에 참가했던 아마추어 드라이버 그룹인 벤틀리 보이즈의 멤버로 벤틀리의 열성적인 팬이기도 했다. 성능과 재정적인 안정을 확보한 벤틀리는 1927년 4 1/2, 1928년에는 스피드 식스 등을 선보이며 유럽 스포츠카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1929년에는 슈퍼차저 엔진을 올린 4 1/2이 등장했고 초기 벤틀리의 대표모델인 8리터는 1930년에 등장했다. 벤틀리의 모든 모델은 3리터의 기본 설계로 만들어 졌으며 스포츠카의 기본 요건에 충실했다.



이 시기 벤틀리는 모터스포츠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거둔다. 벤틀리의 첫 모델인 3리터는 1924년과 1927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했으며, 1929년, 1930년에는 6 1/2리터, 1928년에는 4 1/2리터가 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나 과도한 모터스포츠 투자는 곧이어 찾아온 경제공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재정은 날로 악화되었고 만성적인 적자는 벤틀리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결국 1930년을 6월을 마지막으로 모든 모터스포츠에서 철수했으며 벤틀리의 전폭적인 지지자 바나토 역시 더 이상 모터스포츠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으면서 벤틀리는 세단형 자동차에 눈을 돌린다. 그래서 등장한 모델이 더비에서 섀시를 제작한 3 1/2, 4 1/4 등 4리터 시리즈인데 결국 이 라인업은 부족한 출력과 낮은 경제성으로 인해 실패로 끝나게 된다.

(2부로 이어집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욱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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