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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같은 슈퍼 경차, 마니아들은 ‘칭송’·실수요자는 ‘외면’
기사입력 :[ 2018-02-12 08:22 ]
경차로 슈퍼카라니, 오토잠 ‘AZ-1’ (2)



(1부에서 계속됩니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컨셉트에 불과했던 차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의 시작은 차를 원점부터 재검토하는 것이었다. 스즈키의 컨셉트 시절부터 알루미늄 튜블라 구조를 상정하고 만든 차였지만, 마쓰다 같은 대량 양산 회사의 입장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방법이었다. 비싸고 생산성 떨어지며 충돌 안정성을 확보하기가 난감하니까. 결국 알루미늄 튜블라 대신 강철 모노코크 구조로 설계를 깡그리 뒤집어 버린다.

양산 투자가 늘어나는 문제는 있었지만, 당시는 버블의 시대, 생산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명분이 잘 먹혀들었다. 이처럼 ‘작은’ 프로젝트에 자원을 직접 쏟아붓고 싶지 않았던 마쓰다는 개발을 일괄 처리할 방법을 스즈키와 ‘의논’한 끝에, 영국의 엔지니어링 컨설턴트에 통으로 맡겨 버리기로 정한다. 해외 판매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완전한 내수 일본차였지만, 개발 일체가 영국에서 진행된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개발을 후다닥 해치우기에 마쓰다는 비대한 조직이 되어 있었다.



개발이 본격화 되자, 타입 A의 많은 부분이 바뀌기 시작한다. 쓸 수만 있다면 마쓰다와 스즈키의 양산 부품을 적극 활용했다. AZ550의 상징적인 아이콘이었던 팝업 라이트가 무게와 강성을 이유로 삭제하고, 대신 스즈키 알토의 동그란 고정식 램프를 적용한다. 미래적이었던 인테리어도 현실적인 형태로 바꾸고, 대시보드 속은 모조리 스즈키의 부품을 채워 넣었다. 하지만 끝까지 바뀌지 않은 것도 있었다. 바디패널 교체 기능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나머지, 모노코크 구조의 차체에 바디패널은 여전히 FRP를 볼트로 고정하게 만들어 놨다. 이른바 ‘스켈레톤 모노코크’라고 불리는 특이한 차체구조의 정체다. 걸윙도어 또한 변함없이 남았다. 지금에 와선 걸윙도어가 존재 이유였던 것처럼 묘사되는 차이지만, 사실 도어는 설계방식에 따른 부차적인 결과물로 보는 쪽이 맞다. 두터운 측면 구조물로 강성을 확보하는 하이사이드빔 구조의 차는 보통의 여닫이 문을 달수가 없다. 위로 열고 닫는 문은 그래서 달린 것이다.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동력계통에서도 변화가 온다. 550이라는 이름이 뜻하듯 550cc의 배기량을 가질 예정이던 차는 1990년 경차 규정 변경으로 ‘조금’ 커진 660cc엔진을 쓰게 된다. 최대 출력이 64마력으로 제한된 것은 법은 아니고 제조사간 협약인 자주규제 때문. 출력경쟁 끝에 스즈키가 64마력 차리 경차를 출시하자 메이커들이 모여 ‘이제 그만’ 을 외친 탓이었다. 단순히 담합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경차가 낼 사고의 규모도 덩달아 커질 판이였다. (당시의 충돌안전기준은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이 낮았다). 인젝션 방식의 3기통 12밸브 DOHC 인터쿨러 터보엔진과 5단 수동 변속기는 있는 걸 가져다 썼다. 원래의 컨셉 또한 양산엔진과 변속기를 그대로 쓰는 스포츠카였으니까. 이 파워트레인의 정체는 바로 1991년식 스즈키 알토 웍스. 64마력 자주규제를 일으킨 장본인의 최신판이었다. 양산 선언 후 꼬박 3년의 시간이 흐른 1992년 10월, 도쿄모터쇼에서 차는 데뷔한다.



◆ 푸닥거리만 3년 만에.

이름은 오토잠의 플래그십이라는 의미를 담은 AZ-1. 외장 패널의 제조공정을 단축시키기 위해 색상은 파랑과 빨강 단 두 가지에 모두 투톤 도장으로만 준비되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매력적인 차였다. 걸윙도어에 미드십이라는, 수퍼카의 상징을 그대로 담은 경차가 정말로 시판에 나선 것이다.



서있기만 해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차였지만, 문이라도 여는 순간에는 자석처럼 사방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타고 내리기가 힘들었지만 그건 부담스러운 시선 때문이 아니었다. AZ-1은 진짜로 타고 내리기가 어려운 차였다. 1.5인승이라 불려야 맞을 정도로 비좁아 터진 실내는 문턱이 높아 몸을 밀어 넣는 것도 쉽지 않았다. 걸윙도어를 닫는 건 팔을 뻗는 정도로는 모자라 온 몸을 꼬면서 스트레칭을 해야 했다. 시트와 핸들은 전혀 조절할 수 없었고, 창문은 손바닥만했다. 그러나, 마치 요가 수행 같은 탑승이 끝나고 난 뒤의 실내는 마니아들의 탄성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유리로 뒤덮인 캐노피 속, 다리를 뻗고 누운 자세는 영락없는 레이스카의 그것이었으니까.

64마력에 채 9kg.m이 안되는 엔진에 물린 5단 변속기로는 끝까지 몰아붙여 봐야 140km/h를 내기 힘들었지만, 그걸로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든 경차였으니까. 하지만 길이 3.2m, 무게 720 kg의 미드십 차를 9000rpm까지 돌리며 몰아붙이는 운전이 재미없을 리가 없다. 레이스카의 경험을 그대로 축소해서 일상에 내려놓은 모습에 마니아들은 환호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런 ‘변태’ 스러운 차를 양산까지 이끌고 온 마쓰다의 용단은 칭송해 줄만한 가치가 차고 넘쳤다.

하지만, 마니아와 실소비자가 다른 집단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차를 사줄 고객들 또한 마니아들의 감탄 지점을 똑같이 느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한 차

정작 마쓰다는 AZ-1의 판매량에 별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 마쓰다의 한 달 판매 예상치는 800대. 지금까지 들인 돈을 생각하면 소박하기마저 한 숫자다. 마쓰다가 노린 것은 경차 전문 브랜드로 분리시킨 오토잠이 누릴 브랜드 마케팅 효과였다. 다른 곳에선 본 적도 없는 슈퍼 경차를 통해 오토잠의 이미지가 각인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오토잠의 매출만 늘면 개발비는 그냥 퉁치고 말 생각이었다. 과연 버블 시대의 논리답지만, 이건 차가 어느 정도는 돌아다녀 줘야 성립할 이야기다. AZ-1이 뚝 떨어진 시대는 붕괴 중이던 버블의 한복판이었다. 스즈키 카푸치노와 혼다 비트가 이미 경스포츠카 수요를 잔뜩 가져가 버린 상황에서 작고 불편한 스포츠카를 재미로 질러줄 소비층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여기에 AZ-1은 가장 비싼 경차이기도 했다. 개발비용은 고려하지 않고 책정한 가격이었지만, 일반적인 방법과는 담을 쌓은 생산방식 때문에 값은 여전히 비쌌다. 149.8만엔(현재 물가환산시 약 2,100만원)의 시판가는 혼다 비트의 138.8만엔이나 같은 엔진과 부품으로 채운 카푸치노의 145.8만엔보다도 높았다.

마쓰다도 이 상황을 방치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옵션과 색상을 추가한 ‘타입 L’이나 에어로 파츠를 잔뜩 붙인 ‘마쯔다 스피드 버전’을 추가로 시판되지만 판매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다. 보다 못한 스즈키까지 나서 자사 딜러를 통해 차를 밀어내 보지만 500대 가량의 재고를 줄였을 뿐이었다.




◆ MX-5는 괜찮지만 AZ-1에 미래는 없다.

발매 후 채 1년이 되지 않아 AZ-1은 생산 중지에 몰렸으며, 2년 뒤 단종될 때까지 재고를 다 털어내지 못했다. 총 생산 대수는 4,362대. 1990년대 후반까지 차를 팔았던 라이벌들에 비교하면 가장 적은 차를 만들고 가장 빨리 퇴출당한 셈이다.

AZ-1이 단종된 바로 다음 해, 이미 벼랑 끝에 몰려 있던 마쓰다가 포드에 합병 당한다. 5채널 전략, 방만한 라인업, 판매가 아닌 마케팅을 목적으로 만든 차,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전부 내수만 보고 벌린 회사가 내수가 작살나며 맞이할 운명은 뻔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마쓰다는 독자적인 길을 걷는 건실한 자동차 제조사로 되살아났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을 뿐, 선택과 집중을 통해 쌓아 올린 기술과 디자인이 좋은 차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다. 경차는 여전히 취급하고 있기는 하나, 모조리 스즈키의 완성차를 떼어다 팔기만 한다. 동시대에 태어났던 MX-5는 여전히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카로 명맥을 잇고 있지만, AZ-1의 재탄생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망하는 건 한번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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