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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전락한 G2X와 금융위기로 작살난 GM 플랫폼
기사입력 :[ 2018-03-02 13:52 ]


어쩌다 GM 대우는 컴팩트 로드스터 G2X를 시판한 걸까 (2)

(1부에서 계속됩니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신형 로드스터가 만들어지고 판로를 확보하는 과정은 GM의 통상 절차와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이것을 잘못된 방식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GM이 이처럼 다른 방식으로 차를 만든 것은 새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사실은 한사람의 의지라고 봐야 옳겠지만.

밥 루츠. 스위스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자라 해병대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그가 자동차 업계에 첫 발을 담근 곳은 미국이 아닌 독일 회사 오펠이였다. 성장 환경 덕분에 독일어와 프랑스어까지 능통했던 그는 독일 회사 속 미국인으로 자동차 산업의 최전선에서 입지를 쌓아 나간다. BMW를 거쳐 포드, 크라이슬러의 요직을 모두 거친 뒤 GM의 부회장으로 올라설 즈음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차쟁이’(Car Guy)가 되어 있었다. 자동차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아래의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다.



“조직의 꼭대기에서 제품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비용 절감은 가능할 지 몰라도 매출 증대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내 50년의 경험으로 확인한 것이다.”

로드스터는 GM의 경직된 개발 문화와 멋대가리 없는 차 만들기 방식을 깡그리 뒤집어엎는 작업의 일환이기도 했으며 단일 플랫폼에 기반한 단일 모델의 세계 판매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자동차라는 상품에 대한 이해, 고객과 개발현장의 교감을 무엇보다도 중시했던 그에게 있어 로드스터는 GM이라는 자동차 제작사의 역량을 말해주는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가능한 많은 고객이 이 차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는 해외 판매를 밀어붙인다. 잊혀진 이름 오펠 GT를 부활시킨 독일 시판 사양 앞에서는 잠시 감개무량했을지도 모르겠다. 30년 전, 양산차 카데트의 부품을 활용해 만든 원조 GT의 프로젝트 매니저는 다름 아닌 밥 루츠 본인이었으니.



◆ 성공을 예감, 폰티액 솔스티스

2005년, 폰티액의 솔스티스가 먼저 발매된다. 공들인 차답게 신형 로드스터의 성능은 꽤 본격적이였다. 엔진을 최대한 뒤로 밀어 붙인 프론트 미드십 레이아웃에 앞 뒤 모두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 속에는 빌슈타인의 전용 댐퍼가 자리했다. 5단 수동변속기 외에도 캐딜락에서 가져온 5단 자동 변속기 사양이 따로 마련되었다. 기본형 2.4리터 자연흡기 엔진이 넓은 토크밴드로 편한 오픈 크루징을 지향했다면, 2.0리터 터보 엔진은 보다 본격적인 달리기를 위한 출력에 중점을 두었다. 오펠이 개발한 최신형 직분사 터보 엔진은 264마력에 36kg.m나 되는 출력으로 1.3톤 중반의 가벼운 차를 밀어 붙였다.

0-100km/h 5.5초의 빠른 가속 성능도 대단했지만, 이 차의 백미는 역시 코너링, 풀 브레이킹 후 뛰어든 코너에서, 하중이 잔뜩 실린 앞바퀴의 궤적을 끈덕지게 따라가는 차의 운전에는 희열이 넘쳤다. 오랜만에 나온 근사한 미국제 스포츠카에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발매 열흘 만에 솔스티스는 7,000대가 넘는 주문을 받았으며 3년 뒤 누적 판매량은 6만대를 넘긴다. 이대로만 간다면 솔스티스는 GM 변혁의 상징이 될 수도 있었다.



솔스티스보다 1년 뒤인 2006년 4월 형제차 새턴 스카이도 발매된다. 저렴한 소형차 이미지가 강한 새턴 브랜드에, 카파 플랫폼의 또 다른 버전으로 나온 차는 솔스티스만큼의 반응은 끌어내지 못하지만 첫 해 1만5,000대 가량을 팔며 그럭저럭 숫자를 채웠다. 1년 뒤 새턴 스카이의 내수 물량이 해소될 즈음 오펠 GT와 대우 G2X의 공급도 시작된다. GM의 영국 브랜드였던 복스홀은 이 차에 가장 적극적이었지만, 공간이 협소한 카파 플랫폼의 오른쪽 운전석 사양 개발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시판은 기약없이 미루어진다. 이 차가 단종되던 순간까지 로드스터가 영국 땅을 밟는 일은 없었다.

한편, 등 떠밀리듯 로드스터를 받아 든 GM 대우도 판매 준비를 시작한다. Go 2 Extreme이라는 뜻의 이름을 단 차는 2.0터보와 자동변속기가 조합된 단일 트림만 수입되었다. 목표 판매량은 연간 400대. 당시 GM 대우의 판매량을 생각하면 많지 않은 수량이었지만 그나마 이 숫자가 팔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보다 높은 가격, 불편한 수동소프트 탑이 원인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이건 그나마 이 차를 들여다 본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GM 대우가 처음부터 염려한 것은 이보다도 훨씬 본질적인 문제였다. 이런 차를 팔아본 적이 없는 회사가 이런 차를 타본 적이 없는 시장을 설득해야 했으니까. 자동차로 하는 유희가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 지지 않았던 한국에서 중간 절차 건너뛰고 뚝 떨어진 소형 후륜구동 로드스터가 단번에 대중적인 지지를 얻을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이 차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꺼이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된 고객은 극소수. 남은 G2X는 모조리 애물단지 신세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또다른 문제가 생긴다. 경쟁사의 국산 첫 후륜구동 쿠페의 발매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다른 카테고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일 선상에 놓이게 된 차가 비교할 수 없이 싼 가격에 나오자 GM 대우는 조용히 차를 정리하는 길을 택한다. G2X를 라인업에서 치운 뒤, 남은 재고는 대규모 할인을 통해 털어내 버린 것이다. 발매 1년 만에 일어난 일이였다. 단종을 놓고 본사와 씨름을 벌일 필요가 없었던 것은 다행이면서 불행이기도 했다. 때는 2008년, 본사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GM 자체가 단종될 판이었던 것.



◆ 미국 금융위기가 작살 낸 카파 플랫폼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위기는 미국의 경제를 만신창이로 몰아간다. 금융사업부가 나서서 주택 담보대출과 차량 융자를 연결하고, 각종 파생상품으로 깊숙이 개입했던 GM은 존립을 위협받는 상황까지 몰린다. GM은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지만 상원에서 부결되며 파산을 신청하고, 정부의 개입으로 겨우 몰락만 면한 채 미 정부 소유의 공기업이 된다. 정부 주도의 강력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적자만 쌓인 네 개의 브랜드가 정리된다.

그 중에는 폰티액과 새턴도 끼어 있었다. 모기업이 사라지는 마당에 그들이 팔던 로드스터의 운명은 말할 것도 없었다. 솔스티스와 스카이, 그리고 그 형제 모델은 모조리 단종 수순을 밟는다. GM은 카파 플랫폼을 포기하고 델라웨어의 전용 라인 문을 닫는다. 생산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카파 플랫폼 차량의 총 판매 댓수는 약 11만대, 그중 GM 대우가 가져간 수량은 고작 111대였다.



◆ 부활의 희망고문

GM은 카파 플랫폼을 포기하지만 정작 차는 한동안 생명연장의 몸부림을 치며 버틴다. 카파의 라이선스를 사들인 곳은 스페인의 신생 스포츠카 브랜드 Tauro. 직렬 4기통밖에 올라가지 않던 협소한 섀시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친 뒤 GM의 8기통 엔진을 밀어 넣고 외부 패널을 바꾼 차는 큰 폭의 성능 향상을 이루어 내는 데는 성공하지만, 세상은 이 차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차는 전혀 팔리지 않았고, 2017년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카파 플랫폼은 완전히 사라진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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