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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견지명 빼어난 발명가의 위대한 삽질, 싱클레어 C5
기사입력 :[ 2018-03-16 08:05 ]


실패했지만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조상이 된 싱클레어 C5 (1)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모든 것은 영국의 새 법에서 시작된다. 대도시의 교통 체증과 공해 문제는 심각하지만, 그나마 예전에 비하면 나아진 것이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고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잠깐. 간선도로나 DPF같은 건 있지도 않았던 1980년대의 도심은 정말로 지금보다 좀 많이 안 좋았다. 되는대로 이어 붙인 2차로에서 온갖 차가 매연을 풀풀 대며 다니던 시절이었다. 정체 속 버스에 서 있기를 한 시간, 스며드는 매연 냄새에 메슥거리는 속을 다독이던 기억은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의 일상이기도 했다.

차량 급증으로 인한 1980년대의 문제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우던 나라도 예외가 없었다. 대도시의 교통체증으로 골머리를 앓던 영국 정부가 그나마 달랐던 점은 나름 해결 방법을 물색했다는 것이다. 1983년, 영국 도로교통법에 새로운 법안이 추가된다. 이름하여 The Electrically Assisted Pedal Cycle Regulations of 1983. 이 법의 골자는 이름처럼 ‘전기식 보조 사이클’에 대한 것으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인력으로 가는 페달 외에 별도의 동력으로 60kg 250W(약 0.34마력) 미만의 전기 모터와 제동장치를 장착할 수 있음.
- 최고속도는 15mph(24km/h)를 넘지 않음. 만 14세만 넘으면 누구나 일반도로를 주행 가능
- 보험과 면허 필요 없음
- 헬멧 착용 필요 없음

현재의 안전 기준으로 보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항목도 보이지만, 35년 전에는 무려 이게 법이었다. 모터를 단 자전거가 도로를 달릴 때 마주할 법적 상황을 정비하려는 취지였지만, 이건 사실 차 좀 그만 끌고 나오라는 정부의 부탁 더하기 이 기회에 자전거 좀 더 팔아보자는 업계의 로비가 만든 결과물이라 보는 게 맞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법에서 기회를 발견한다.



◆ 양산 전기차의 태동

싱클레어 C5라는 ‘차’를 말하기 전에 이 차를 만든 사람. 클라이브 싱클레어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영국에서 ‘발명가’로 꽤 친숙한 인물이다. 그의 발명 중에는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된 것도 꽤 된다. 휴대용 전자계산기, 평판 TV나 가정용 PC가 모두 그의 발명을 통해 구체화 되었으니까. 싱클레어경은 유능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자신의 회사 ‘싱클레어 리서치’를 통해 쏟아져 나온 제품은 그 획기적인 기능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호평 받았다.

미국에 애플이 있었다면, 영국에는 싱클레어가 있었던 셈이다. 컴퓨터 사업이 일으킨 성공은 그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온다. 그는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랐으며, 영국의 컴퓨터 산업을 이끈 공로로 기사 작위까지 받는다. 기술을 통해 인생의 성취를 얻은 사람인 만큼 그는 기술을 통해 미래가 앞당겨질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그 선두에 자신이 서 있음을 확신했다. 운송수단은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새로운 세계였다.

그가 보기에 새 법은 ‘1인용 초소형 전기차’를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파격적으로 낮은 문턱과 함께. 법안을 극한으로 해석하면 1인승의 3륜 전기차를 만들 수 있었다. 비록 속도와 출력에 제한이 걸린 것은 아쉬웠지만,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의 시작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다가올 전기차의 시대를 위해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재력을 쏟아 붓기로 결심한다.

다만 타고난 엔지니어긴 했지만, ‘전자’ 분야에 특화되어 있던 싱클레어경은 전문 엔지니어링 업체에 의뢰해 기초작업을 시작한다. 자전거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Ogle 디자인이 초도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1년 뒤에 나온 프로토타입은 무게가 150kg이나 나가는 과중량 때문에 도저히 혼자 굴러다닐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벽에 부딪힌 프로젝트는 곧 다시 길을 찾지만 여기에는 엉뚱한 이름이 등장한다. 드로리언(Delorean), 그리고 로터스.



◆ 드로리언, 그리고 로터스

배리 윌스(Barrie Wills)는 이미 망한 드로리언을 수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드로리언이 왜 망했는지의 이야기는 여기로: http://v.auto.daum.net/v/nyAOOgVW79 ) 재규어에서 견습생으로 시작해 영국의 자동차 개발 현장에서 사반세기를 보낸 그는, 사장이 도망치고 이사회가 공중 분해된 뒤에도 회사에 남아 뒷수습을 책임지고 있던 유일한 개념인이기도 했다. 혹시 새로운 프로젝트가 드로리언의 공장과 생산시설을 인수해 줄까 싶어 기대를 품고 찾아가 보지만, 눈 앞에 나타난 것은 혼자 굴러가기엔 글러 먹은 탈 것. 전기차의 시판은 살아생전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론인 사람이었지만, 나름 건넨 개발 방향성에 대한 조언은 싱클레어 경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는 배리 윌스에게 프로젝트를 맡아 달라 부탁한다. 명운이 다한 회사를 언제까지나 붙잡고 앉아 있을 수 없던 그 또한 C5 프로젝트의 수장이 된다. 개발 실무를 위해 드로리언 DMC-12를 개발했던 로터스의 엔지니어링 팀도 합류한다.

가능한 최상의 경량화를 위해 로터스 엔지니어가 제시한 것은 일견 로터스의 차 만들기인 백본 프레임과도 상통하는 구조였다. 두개의 프레스된 구조물을 샌드위치식으로 용접한 샤시는 높은 비틀림 강도를 갖추면서도 그 자체가 서스펜션이 되기에 충분한 유연성을 갖췄다. 바디패널이 없는 상태에서도 차는 24km/h에서의 충돌 테스트에서 탑승객을 상처 없이 보호할 수 있었다.



외장 바디는 C5의 제조과정에서 가장 많은 투자가 들어갔다. 외장 전체를 감싸는 소재로 플라스틱 (폴리프로필렌)을 쓴 이유는 무게도 있었지만, 연산 20만대를 위해서는 빠르고 저렴한 생산 방식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외피를 구성하는 대형 패널이 사출되면, 이것을 특수 테이프로 이은 뒤 전류를 흘려 융착 시키는 신공법이 사용된다. 바디 생산에 걸리는 시간은 불과 70초였다.

배터리도 준비된다. 당시는 휴대전화가 폭발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1980년대. 오늘날 대중화 된 고용량 리튬 폴리머 전지는 연구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일반적인 납축전지 방식을 쓰되, 300회 충 방전, 4시간에 80%, 8시간 100% 충전 스펙을 만족시키는 12V 36Ah짜리 배터리가 만들어 진다. 싱클레어경의 입장에서 이 정도면 초기 사양으로는 충분했다. 일단 전기차가 인기를 얻게 된다면 배터리 제조사들이 알아서 개발에 뛰어들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차체의 무게는 30kg. 여기에 배터리 무게가 별도로 15kg 추가 되어 총 중량은 45kg가량 되었다. 이것으로 한번 충전에 32km를 달리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모터는 원래 보쉬의 트럭 냉각팬용 모터를 쓸 예정이었지만, 말이 많아지자 나중에 필립스제로 바뀐다. 이것도 나중에는 세탁기용 모터로 정체가 드러나며, 두고두고 C5를 깎아내릴 때 언급되는 단골 메뉴가 된다.



한편으로는 양산을 위한 시설 준비가 마무리 되어갔다. C5를 대량 양산할 곳은 진공청소기로 유명한 후버(HOOVER)사. 주당 8,000대까지 생산할 수 있는 라인 2개가 공장 한편에 세워진다. 후버사는 유지보수도 담당했기 때문에 전국 19개의 서비스 센터와 400명의 테크니션을 배치하는 작업도 진행된다. 이 곳에서 6개월마다 돌아올 C5의 정비를 맡을 계획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발매일인 1985년 1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2부로 이어집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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