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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전기차 브랜드는 싱클레어 경에게 경의를 표하라
기사입력 :[ 2018-03-26 14:07 ]
실패했지만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조상이 된 싱클레어 C5 (2)



(1부에서 계속됩니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1985년 1월 초소형 전기차 싱클레어 C5가 화려하게 발표된다. 약관 24세의 RCA 출신 디자이너가 빚어낸 낸 미래적인 모습 속에는 250W의 출력을 내는 전기모터와 함께, 필요할 때면 운전자가 힘을 보탤 수 있는 페달도 달려 있었다. 최고 속도는 24km/h. 주행가능거리는 32km로 발표됐다. 한 사람이 탑승하는 공간 뒤에는 28L의 적지 않은 트렁크도 마련되어 있었다. 조향 레버는 특이하게도 허벅지 아래에 놓이는 방식이었지만, 조종은 의외로 쉽고 편했다. 가속과 브레이크는 일반 모터사이클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했으므로 한번만 타보면 바로 익숙해 질 수 있었다. 복잡한 게이지 대신 전면에는 배터리 레벨을 나타내는 단출한 점등식 계기판이 달렸다.



◆ 서두른 발매의 결과

발표와 함께 C5는 즉시 논쟁의 중심이 된다. C5의 개발과 생산에 있어서 싱클레어경은 일체의 외부투자에 기대지 않은 채 자신의 재력만으로 충당했다. 가지고 있던 현금 800만 파운드가 동나자 그는 자신의 컴퓨터 회사 싱클레어 리서치의 지분을 팔아 만든 1,250만 파운드를 더 부어 넣는다. 총합 2천만 파운드 (오늘날의 기준으로 약 7,500억원)가 넘는 돈이 들어갔지만, 1984년 말이 되자 바닥을 드러낸다. 전기차는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겨울에 서둘러 발표시기가 잡혔던 것도 이 때문.

하지만 발표장소로 산꼭대기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궁이 선택된 것은 두고두고 후회할 이유가 된다. 하필이면 추위와 눈, 언덕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 C5의 공개 시승이 이루어진 것이다. 기자와 유명인들이 남김없이 초대된 자리에서 C5는 장점 대신 단점이란 단점은 모조리 드러내는 추태를 보인다. 7분 만에 배터리가 뻗어 버리거나, 언덕길을 ‘기어’ 올라가던 중 모터가 타버리는 차가 나왔다.

하지만 이 중 백미는 전설적인 F1 드라이버 스털링 모스경의 시승. 그는 앞선 트럭이 면전에 배기가스를 직사하는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신사였지만, 배터리가 다 된 언덕배기 중간부터는 페달질 하느라 점점 표정이 굳어갔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언덕 꼭대기에 당도한 영국의 레이싱 레전드는 기자 한 명의 농담에 결국 표정이 무너져 버린다. ‘F1 욕탕 의자로 쓰면 딱 되것구먼요!”



◆ 전문가의 부정, 소비자의 긍정

본격적인 매체 시승이 시작되자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자동차를 대체할 새로운 이동 수단으로 선보인 C5는 기존 자동차의 많은 편의기능이 제거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걸 그냥 ‘자동차’의 연장선상에서 보았으며, 자동차보다 불편한 점은 모조리 공격 대상이 된다. 상체는 고스란히 밖으로 노출된 채 달려야 했으며 후진을 하려면 내려서 밀어야 했다. 전면 캐노피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주행풍과 앞 차의 매연을 그대로 맞으며 달려야 했다. 도로 한복판에서 비라도 와버리면 꼼짝 없이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버린다. 우천 시 사용하라고 준 커버가 있지만 이걸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각지대에 들어간 C5는 대형차량의 운전자에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차선 변경을 하려던 트럭에 그대로 깔릴 뻔한 이야기가 퍼지며 시승을 거절하는 경우가 속출한다. 느린 가속을 도우려면 페달을 밟는 쪽이 나았지만, 앞에 달린 페달을 움직이는 일은 보통의 자전거보다 훨씬 큰 노동을 요구했다. 여전히 추운 날씨 속에서 주행거리는 스펙상의 절반인 16km에 그쳤다. 막히는 도로에서는 배기가스에 질식할 지경이었고, 원활한 도로에서는 역으로 도로 정체를 일으켰다.



혹평이 쏟아지자 싱클레어경이 대응에 나선다. 가장 대중적이었던 차 오스틴 미니의 착석 위치가 C5보다 낮다는 실측 자료를 제시하는 한편 날씨만 풀리면 차의 제 성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언론을 설득했다. 사지 말 것을 권장한 일부 단체에는 소송을 불사하겠다며 거세게 항의한다. 그러면서도 인식률 개선을 위해 마스트를 추가하는 등 합당한 요구는 받아들였다. 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 우편판매가 시작되자 4,000대의 주문이 들어온다. 주문의 절대다수는 싱클레어 컴퓨터의 기존 고객. 여기에는 399파운드(2018 물가 기준 약 145만원)라는 운송수단 치고는 비싸지 않은 가격도 한몫 했다. 화제가 된 차였던 만큼 유명인의 사랑도 받았다. 면허를 따기 전이였던 어린 윌리엄과 해리 왕자는 켄싱턴 궁 내를 돌아다니는데 C5를 애용했다. 가수 엘튼 존과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작가 아서 클라크는 아예 두 대씩 구매했다.



하지만 반짝한 초기판매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기어박스 문제로 기존 판매분에 대한 전량 리콜이 들어온 것은 치명타였다. 한 달간 판매가 중단된 뒤, 문제를 고친 차가 다시 시판되지만, 이미 기사와 리콜을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14세 이상이면 면허 없이도 달릴 수 있었던 법 때문에 미성년자가 일으키는 사고가 속출하면서 C5의 이미지는 더욱 추락한다. 4,500대를 끝으로 판매가 거의 멈추자, 이번에는 생산을 맡은 후버사가 다급해진다. 생산 미지급금 150만 파운드의 지급 소송이 시작되면서 공장이 멈춘다. 재고는 9,000대나 쌓여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넣었지만, 마이크로 모빌리티가 시기상조였음을 깨달은 싱클레어경은 C5를 끝내기로 마음먹는다. 작위를 받은 자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은 것일까? 회사를 청산해도 남은 500만 파운드의 미지급금에 대해 그는 개인 명의의 채무증서를 쓰고 모든 것을 짊어진다. 그는 현재도 생존해 있으며 발명가로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다시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는 일은 없었다.



◆ 그 뒤의 일

싱클레어 비히클이 문을 닫은 뒤 남은 C5 7,000여대는 대당 75파운드의 헐값에 경매업자에 넘어간다. 모두의 운송수단이라는 이미지 대신 고가의 어린이용 장난감으로 홍보된 C5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인기리에 팔려 나갔다. 웃돈이 붙은 C5의 가격은 원래의 가격을 뛰어넘는 700파운드에 달했다.

싱클레어 C5는 2011년 닛산 리프가 기록을 깨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전기 자동차’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30년이 지난 지금도 컬트적인 인기를 끌며 거래되고 있다. 최신형 모터와 배터리를 장착한 튜닝차는 물론 버기휠에 엔진을 달거나 심지어 제트엔진을 달기도 한다. 이론상 240km/h까지 가속 가능하지만 175km/h가 넘으니 죽을 것 같아서 관뒀다고.

싱클레어 C5는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닌, 보다 본격적인 전기차로 가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맡은 제품이었다. C5가 정상궤도에 오른 뒤에는 2인승 C10, 4인승 C15가 차례로 발매될 계획이 세워졌지만, 모두 페이퍼플랜으로만 남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컨셉 드로잉만 남은 C10과 현재의 르노 트위지의 유사성을 보면 싱클레어의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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