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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초로 ‘GM’의 이름을 달고 나온 차, EV1
기사입력 :[ 2018-04-24 13:41 ]


조금 더 빠를 수도 있었던 전기차 시대, GM EV1 (1)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최근에야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를 체감하고 있지만, 양산 전기차가 역사의 전면에 나선 것은 사실 세 번째 일이다. 전기차는 생각보다 꽤 일찍 세상에 나타났다. 토마스 파커가 만든 첫 양산전기차 가 나온 것이 1884년의 일이니까. 아직 기술 숙성도가 충분치 않던 내연기관이 오만가지 트러블을 일으키던 초기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는 증기기관과 함께 자동차의 구동계가 되기 위한 패권을 놓고 다퉜다. 간단한 구조 덕분에 신뢰성이 높았으며, 진동과 소음, 매연이 없는 특징 덕분에 20세기 초입에는 3만대의 전기차가 돌아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내연기관 엔진의 완성도는 계속 올라갔다. 곳곳에 생긴 주유소가 내연기관차의 주행거리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동안 전기차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결정타는 1912년, 전기식 엔진 시동장치였다. 시동까지 간편하게 걸 수 있게 된 내연기관의 승리가 확정됐고 전기차는 사라졌다. 전기차가 다시 세상에 고개를 내밀게 되는 것은 이로부터 100년이 지난 뒤였다.



◆ 전기차 시대는 이미 두 번 왔었다.

1990년 LA 모터쇼에서 GM은 홀연히 차 한대를 내 놓는다. 임팩트(impact:충격)라는 이름의 차는 양산모델이 아닌 컨셉트카였지만, 이름만큼이나 큰 충격을 몰고 온다. 컨셉트카 한대가 법을 바꿔 버릴 정도였으니까.

임팩트는 대부분의 컨셉트카가 취한 방식,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추상만 담은 차가 아니었으며 당장이라도 생산이 가능한 현실의 산업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차였다. 미래를 현실로 당겨오기 위해 GM이 선택한 방법은 ‘협업’이였다. 임팩트는 당대 최고의 기술기업과 협력을 통해 탄생한 차였다.

차체를 담당한 회사는 항공기 제작사인 에어로바이런먼트사. 항공기술을 응용해 낮은 공기저항과 경량화를 구현했다. 모터와 인버터는 전기차용 파워트레인 전문회사 AC프로펄션사가 제작했다. 인버터를 기반으로 교류3상 모터를 제어하는 산업 현장의 기술을 자동차에 도입한 것이다.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던 전기차가 당대의 기술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흥분한 것은 일반 대중만이 아니었다. 정부기관도 같이 흥분했다. 이 정도의 기술이 있음에도 자동차 회사가 미적거리고 있다면 법으로라도 전기차 제작을 강제해야겠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같은 해,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 (CARB)는 ZEV 자동차법을 통과시킨다. 캘리포니아에서 자동차 판매를 계속하려면 1998년까지 판매량의 2%를, 2001년까지는 5%, 2003 년에는 10%까지 전기차로 채우라고 명령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형편없는 대기환경을 개선하려면 뭐든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이 만든 결과였지만, 여기에 꼼짝 없이 걸려든 상위 7개 자동차 회사에게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식이었다. GM만 빼고.

스스로의 선견지명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GM은 임팩트의 양산을 선언한다. 곧 도래할 양산 전기차 시대는 GM의 세상이 될 것임은 확실해 보였다.



◆ 1990년대에도 충분했던 전기차 기술

지금도 시판되는 전기 자동차의 대부분은 양산차의 엔진을 떼어내고 배터리와 모터를 단 개조 버전이 주류다. 하지만 GM 최초의 전기차는 경량 고효율을 목표로 처음부터 전용 설계가 이루어진 차였다. 임팩트는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쓴 최초의 양산차 중 하나였으며, 플라스틱제의 바디패널과 마그네슘 휠로 무게를 더 줄일 수 있었다. 길이 169.7in (4,310mm), 너비 69.5in (1,770mm), 높이 50.5in (1,280mm)의 소형 2 인승 쿠페 보디는 0.19라는 기록적인 공기저항계수를 기록했다. 나름 공기저항에 신경 쓴 오늘날의 하이브리드차가 0.26 정도임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수준. 뛰어난 공력특성에 더불어 미쉐린의 협조로 개발한 저마찰 타이어는 구동계 효율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전기차의 조용한 주행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도 했다.

구동계는 오늘날의 전기차와 전혀 차이가 없었다. 3상 유도 방식의 교류 모터는 그 자체가 발전기가 되어 제동 시 동력을 회수하고 재충전하는 회생제동기능을 갖췄다. 7000 rpm 에서 137 마력의 출력을 냈으며 모터의 특성 상 15.2kgm의 토크가 회전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나오며 앞바퀴를 굴렸다. 변속기는 아예 없었으며, 오직 감속기만 달려 있는 구조였다. 후진 기어도 없었다. 전기차인 만큼, 그냥 모터를 반대로 돌리면 되는 일이였으니.

배터리는 델코에서 제작한 납축전지를 썼다. 때는 1990년대 초, 리튬이온전지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으며 니켈수소 전지도 겨우 상용화가 진행 중이던 상황. 가격과 유지보수를 생각하면 유일한 선택지였으며 나중에 두 배 용량의 니켈 수소 전지가 나오면 대체할 예정이었다. 배터리 무게만 500kg이 넘었지만 경량화 덕분에 차량 전체 무게는 1.4톤을 넘지 않았다. 16.5kWh의 용량으로 확보한 주행거리는 97km. 전비로 따지면 5.8km/kWh로 오늘날의 전기차와 비교해도 준수할 정도다. 0-100km/h 가속시간은 9초 아래, 단 배터리 효율을 위해 최고속도는 80마일(129km/h)로 제한됐다. ABS나 트랙션 컨트롤, 파워스티어링과 파워스티어링 같은 편의장비도 충실했다.



◆ 프리뷰 테스트, 망설이는 GM

1994년이 되자 언제 차를 시판할 거냐는 압박이 거세진다. 차를 만들겠다고는 했지만 막상 이게 팔만한 물건인지 확신이 안 서던 GM은 궁리 끝에 전기차의 본격 시판 전 프리뷰 프로그램을 돌리기로 한다. 소수의 사람에게만 1~2주간 전기차를 임대한 뒤 의견을 청취하기로 한 것이다. 50대의 임팩트가 준비되어 일부지역에 한정한 추첨이 시작된다. 그나마 집에 220V 전원(미국은 아직도 가정용 전원이 110V로, 220V는 고전압 취급을 받는다)을 갖춘 사람에게만 자격을 주었지만, 접수가 시작되자 지원자는 말그대로 ‘폭주’했다. 80명을 뽑는 LA에서는 만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렸으며, 뉴욕은 만사천명이 넘는 사람이 일시에 몰려 전화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전기차를 처음으로 타본 언론의 호의적인 평가도 이어졌으며, 성능에 의문을 품는 사람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도 준비된다. 최고속도 기록을 위해 최소한으로 개조된 EV1이 테스트 트랙에서 295km/h를 찍자, 더 이상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어졌다. 어서 차를 내 놓으라는 아우성이 이어졌다.



이쯤 되면 빨리 발매를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지만, GM은 미적거렸다. 아니, 프리뷰가 끝나자마자 아예 CARB에 법을 연기하거나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이상한 짓을 벌인다. 전기차 분야에서 가장 앞선 결과물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GM이 실 소비자들을 통해 확인한 것은, 기존 자동차를 대체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반응이었다. 불과 3년 뒤 전체 판매량의 2%를 사줄 수요층이 GM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까지 해오던 관성을 못 이긴 채 개발은 계속된다. 1996년에는 양산성을 고려한 디자인 수정이 끝나고 최초의 전기차라는 뜻의 EV-1이라는 새이름도 받는다. GM 역사상 최초의 시도를 기념하기 위해 EV1은 쉐보레도 새턴도 아닌 GM의 이름을 받기로 한다. 같은 해 12월 9일, ‘GM’ 역사상 최초로 ‘GM’의 이름을 단 차가 발매된다.

(2부로 이어집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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