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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전기차를 때려치웠고, 테슬라는 만세를 불렀다
기사입력 :[ 2018-05-02 14:40 ]


볼트(BOLT)는 GM의 첫 전기차가 아니다
조금 더 빠를 수도 있었던 전기차 시대, GM EV1 (2)

(2부에서 계속됩니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발매가 이루어지고, 차량 전달이 시작됐다. 엔진차와 다를 바 없는 성능과 형태를 갖춘 최초의 대량 양산 전기차에 관심이 모아진다. 하지만 EV1을 일시불로 손에 넣을 방법은 없었다. EV1은 오직 리스로만 손에 넣을 수 있는 차였다. 첫 전기차 발매 후 전개될 상황을 예상할 수 없었던 GM은 차량의 소유권만큼은 회사에 남겨 놓는 것으로 위험을 최소화 하려 했다.

발표된 가격은 34,000달러. 3시리즈 세단을 살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이었지만, 엔진차와의 비교는 무의미했다. 이건 단지 금융비용을 책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잔존 가치를 잡기 위한 계산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GM은 EV1의 실제 비용에 대해서는 함구했지만 시장에서는 이 차의 가격이 10만달러는 넘어가리라 예상했다. 월 리스비는 거주 지역의 보조금에 따라 299달러에서 549달러 사이를 오갔다. GM의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GM브랜드로 판매 네트워크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자사의 중저가 브랜드 새턴의 딜러망을 이용해 전달됐다.



◆ 나오자마자 음모론의 한복판으로

새 법령의 압박, 극성스러운 팬들의 채근에 등 떠밀리듯 나온 차는 바로 논란의 중심에 선다. 처음에는 정부 보조금이었다. 전기차 리스비용에 도입한 세액 공제가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불만이 제기된 것이다. 여기에 주 정부 주도로 공공 충전소 확대 정책이 발표되자 아예 소비자 단체가 나서서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일부만 타는 전기차 인프라에 세금을 쓰지 마라는 그들의 주장은 일견 합당하게 들렸지만, 이들이 정유사를 찾아다니며 활동 자금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엉뚱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한다.

전기차 보급을 염려한 정유사가 조직적으로 전기차 판매를 방해한다는 음모론이 나온 것이다. 사실 정유사들은 EV1의 상황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판매량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1년이 지난 1997년 말까지 출고된 EV1은 고작 290여대에 불과했다. 관심 있게 살펴보는 고객은 많았지만, 대부분 발길을 돌렸다. 충전과 주행거리 때문이었다.

EV1은 오늘날의 충전환경과 동일한 규격을 사용하고 있었다. 가정용 110V를 쓸 경우 15시간이나 걸리는 충전시간은 일반 사용자의 입장에서 너무 길었다. 3시간이면 충전되는 완속 충전기가 있었지만, 이걸 쓰려면 집에 220V 32A 라인을 따로 깔아야 했으며, 수천달러의 자비도 들여야 했다. DC 50kWh짜리 급속 충전기는 10분이면 80%를 채울 수 있었지만,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문제였으며 대부분의 공용 충전기는 가정용 완속과 알맹이가 동일했다. 충전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시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를 가능한 늘려야 했다.



◆ 너무 빨리 나온 전기차

1999년이 되자 2세대 모델인 Gen2가 발매된다. 2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파나소닉에서 만든 신형 납축전지였다. 구형은 1회 충전 시 주행거리 60마일(97km)이 한계였지만 새 배터리 덕분에 미국 소비자의 심리적 장벽인 100마일(161km)을 넘어갔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할 리는 없었다. 원래의 배터리 제공사였던 델코가 만든 신형 니켈 수소 배터리는 납축전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까지 주행거리를 늘려 주었다. 26.4kWh로 커진 용량 덕분에 EV1은 이제 한번에 160마일 (247km)을 달릴 수 있었다. 오늘날의 최신 전기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판매 대상지도 캘리포니아 위주에서 샌프란시스코와 애틀란타같은 대도시로 확대했다. 2년 리스 계약이 종료되자 거의 대부분이 재계약에 동의했고, 기꺼이 추가금을 내고 새 배터리로 교체했다. 적어도 이 차를 타는 사람들의 만족도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비록 소수였지만 EV1은 GM 역사상 가장 열성적인 팬 층을 보유한 차이기도 했다. 긴 충전과 짧은 주행거리는 단점이었지만, EV1은 그러한 단점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장점이 충분했다. 현재의 전기차와 다를 바 없는 완성도를 갖춘 차는 적어도 시티 커뮤터(city commuter: 도심용 차량)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전기차의 특징을 공유해 보지 못한 소비자들의 눈에 이런 장점이 단번에 부각 될 리 없었다. 저유가가 계속 이어지던 당시의 환경은 전기차 전환 속도를 더욱 느려지게 만들었다.

EV1은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400여대의 재고가 쌓인 상황에서 GM은 생산라인을 멈춘다. 판매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GM은 이미 마음이 뜬 상태였다. 그들은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 법정까지 끌고 간 규정 싸움

4년 전의 프리뷰를 통해 GM은 이미 전기차의 수요층이 존재하지 않는 점을 이미 꿰뜷어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의 시판을 밀어붙였던 가장 큰 이유는 배터리 성능이 빠르게 높아지리라 낙관했기 때문이었다. 성능이 높아지며 가격이 내려가는 수순은 다른 전자기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차세대 제품으로 나온 당시의 니켈 수소 배터리는 GM의 기대와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급속 충전 속도를 끌어 올리는데 한계가 있었으며, 발열이 심해 이것을 식히려 에어컨을 돌려야 했다. 에어컨 또한 배터리에 의존했으니 주행거리가 더 짧아지는 악순환이 일어났음은 물론이다. 주판매처였던 캘리포니아의 더위 속에서 새 배터리는 스펙만큼의 주행거리를 보여주지 못했다. 수요가 많지 않으니 가격이 내려갈 일도 없었다.

한편, 1998년에 발효되었어야 했을 무공해차 2% 강제판매 규정은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전기차 판매는 시기상조라 생각한 자동차 회사들의 로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시원치 않은 판매량은 전기차가 시기상조라는 논리를 들이대기에 더할 나위 없는 변명이 되었다. GM은 다른 회사들과 손잡고 마침내 주무부서였던 CARB에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연비규제를 금지하고 있는 연방법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청문회까지 열리는 공방 끝에 CARB의 규정이 위법이라는 법원 결정이 내려진다. 무공해 대신 저공해 하이브리드로 타협한 규정은 또다시 2008년까지 미루어진다. 법이 사라진 이상, 발을 뺄 이유는 충분했다. GM은 EV1 프로그램 종료에 착수했다.



◆ 모조리 폐차된 EV1

프로그램 종료발표와 더불어 이미 달리고 있던 1100여대의 EV1에 대한 회수작업이 시작된다. 리스가 끝난 차량을 매각하는 대신 굳이 전량 회수하려 한 GM의 행태를 놓고 또다시 음모론이 제기되지만, 그 원인 또한 사실은 ‘돈’이였다. 캘리포니아 주는 차량 단종 후에도 최소 15년 동안 부품공급과 서비스 유지를 법으로 강제한다. GM은 한줌밖에 안 되는 차 때문에 그런 출혈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애차를 보내고 싶지 않던 고객들이 GM의 앞을 막아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리스를 연장하고 싶다는 요청도, 심지어 타던 차를 구입하고 싶다는 요구조차 모두 거부당한다. 법에도 호소해 보지만, 처음부터 GM의 소유였던 차를 가져올 방법은 달리 없었다. 꼼짝 없이 자신의 차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특이한 짓을 벌인다. 각자의 EV1에 장례식을 치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울면서 차를 보낸 주인을 떠나 버뱅크의 GM 트레이닝 센터에 모아진 EV1은 극소수의 전시용 차를 빼고 전량 폐기 처분된다. 인류 역사상 두 번째 등장한 전기차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그 뒤의 이야기

GM은 이 차의 ‘삭제’ 작업에 철저하게 매진했다. 반납된 EV1은 모두 시동이 불가능하도록 무력화된 후 눌러버리는 것도 모자라 파쇄기에 넣고 갈아 버렸다. GM조차 운행 가능한 차를 가지고 있지 않을 정도다. 전세계에 남은 단 한대의 주행가능한 EV1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반드시 동작가능한 상태의 사료만 보관하는 이 박물관의 원칙은 GM 조차 꺾지 못했다.

EV1이 이례적인 방식으로 처리된 후, 여러 가지 음모론이 나와서 돌아다녔다. 이런 음모론을 집대성한 다큐멘터리가 바로 2006년 발매된 Who killed the Electric car? (누가 전기차를 죽였나?)다. 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은 물론 시청자의 몫이다.

EV1은 모터와 배터리 이외에도 여러 가지 구동계가 시험된 친환경차의 공통 플랫폼이기도 했다. 병렬/직렬 하이브리드는 물론 개스터빈 발전과 연료전지, 1리터짜리 CNG 엔진사양 모델까지 만들었다. EV1 프로그램 폐기에 아무 미련이 없는 GM이였지만, 하이브리드 프로그램까지 덮어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까워했다. 나중에 토요타 프리우스가 둘러치게 될 하이브리드 특허 방벽 중 상당수는 이미 GM의 연구프로그램에서 검토되고 있었다.

당시 GM의 부회장이였던 밥 루츠의 술회에 따르면 대당 프로그램 코스트는 25만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GM이 EV프로그램을 덮은 것은 역시 돈 때문이었다.

EV1이 데뷔한 지 20년이 흘러서야 GM은 다시 전기차로 돌아온다. 볼트(Bolt)라는 이름의 전기차는 한국에서 개발하고 디자인한 차로, 시판 전기차 중 수준급의 성능과 주행거리를 자랑한다. 하지만 GM은 볼트를 런칭하는 동안 EV1 스토리를 숨기는 쪽을 택한다. 정작 EV1과 접점을 가지는 차는 따로 있다.

GM이 EV프로그램을 때려치우기로 발표한 때, GM의 결정에 의구심을 가진 한 사람이 있었다. 인터넷 상거래 시스템으로 이미 상당한 부를 축적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기차를 살려볼 것을 결심한다. EV1의 파워 트레인을 만든 AC프로펄션사를 불러들여 동력계를 만들고 이것을 영국 로터스사에서 개발한 섀시에 얹은 양산 전기차가 2006년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의 첫 차였던 2인승 컨버터블의 이름은 테슬라 로드스터였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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