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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미친 짓’, 소비자들은 먼저 알아봤다
기사입력 :[ 2018-05-31 14:40 ]


회사는 팔 생각 없었지만 소비자 요청으로 부활한 프라울러
처음이자 마지막 양산 핫 로드(Hot Rod), 플리머스 프라울러 (2)

(1부에서 계속됩니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양산 모델로 발매된 프라울러는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차였다. 그런 과격한 컨셉트를 그대로 유지할 리가 없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발매된 차는 컨셉트카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광량을 키우기 위해 헤드라이트가 커지고, 사이드미러 위치가 수정된 것이 전부였다.

단일 트림에 시판 가격은 38,300달러(약 4,100만원). 이런 파격적인 디자인과 알루미늄 차체를 생각하면 가격은 별로 비싸지 않았다. 당대 승용차의 편의장비를 빠짐없이 갖춘 이 차는 그 튀는 스타일만 빼면 일상 주행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실용성을 포기한 채 오직 스타일링에만 치중한 2도어 쿠페는 당연히 모자란 구석도 있었다. 캔버스탑을 수납해버리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던 트렁크가 지적되지만, 개발진은 엉뚱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차량의 후부를 그대로 사용한 별매 트레일러를 내 놓은 것이다. 5,000달러나 하는 옵션이었지만, 상당수의 오너들이 구입했다. 그 멋스러움을 견딜 수가 없었던 탓이다.



프라울러는 고전적인 핫 로드 스타일링의 차였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물은 미래기술에 가까웠다. 알루미늄 전문기업 알코아(ALCOA)와 협업을 통해 개발된 차는 차대부터 패널까지 완전히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다양한 방식으로 성형된 차체 구조물은 용접이나 리벳으로 결합되는 대신 구조용 접착제를 써서 ‘붙였다’. 접착제라니, 일견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방식은 항공산업에서 이미 입증된 기술을 가져온 것이었다. 동시대의 로터스 엘리스가 이 방식으로 유명하지만, 시기적으로는 프라울러가 더 빨랐다.



전술했듯이 이 차의 목적은 알루미늄 양산 기술의 확보였다. 차를 만드는데 필요한 나머지는 가지고 있던 부품을 철저히 활용했다. 보통의 후륜 구동차라면 엔진동력이 변속기를 통과한 뒤 드라이브 샤프트를 통해 리어 디퍼런셜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당시 후륜구동 변속기가 따로 없던 크라이슬러는 가지고 있던 부품을 참신한 방법으로 활용한다. 프라울러의 변속기는 아예 뒤에 있었다. 자사의 앞바퀴 굴림용 변속기를 리어 디퍼런셜과 결합한 뒤 그대로 뒤 차축 위에 올려 버린 것이다. 엔진의 동력은 토크튜브를 통해 차체를 가로질러 그대로 변속기로 전달됐다. 변속기가 통째로 뒤에 가 있으니 50:50의 이상적인 무게배분을 맞출 수 있었던 것도 성과였다.

하지만 프라울러의 엔진은 끝까지 좋은 평가를 듣지 못했다. 핫 로드라면 당연히 기대했을 V8 엔진 대신 이 차를 채운 것은 V6. 중대형 세단에 올라가던 3.5 리터 엔진은 승용차용으로는 꽤 괜찮은 편에 속했지만, 214마력의 출력은 불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고를 수 있었던 4단 자동 변속기는 변속이 느리고 슬립을 허용하는 승용차량용의 단점까지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핫로드=V8이라는 공식을 개발진이 몰랐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8기통은 진즉에 포기한 참이었다. 양산차 제조사가 만들어 시판하는 차로서 프라울러는 충돌규제와 안전법규를 지켜야만 했다. 바퀴와 서스펜션이 그대로 드러난 오픈 휠 디자인에, 공격적이고 날렵한 앞모습을 유지하면서 충돌 규정까지 만족시키려면 가능한 엔진의 부피를 줄여야만 했다. V6는 유일한 선택지나 다름없었다.



◆ 발매는 했지만 팔 생각은 없다?

크라이슬러는 절대 이 차가 많이 팔릴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프라울러는 알루미늄 대량 양산 시대를 준비하는 기술 검증모델이었다. 수많은 기술적 난제를 뚫고 생산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그걸로 목표는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준비된 수량은 딱 500대에 색상은 보라색 한 가지, 엔진과 변속기 역시 딱 한 가지만 준비됐다. 하지만 막상 차를 발매하자 사정은 달라진다. 이 차를 너무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추가 생산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

회사 내부에서는 격론이 오갔다. 거의 수제작이나 다름없는 프라울러의 생산라인을 유지하려면 그 만큼의 수요가 나와줘야 하지만, 저 열광적인 반응이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건 누가 봐도 뻔했다. 그러나 근 수십년만에 플리머스에 쏟아지는 관심을 바로 끊어버리는 것도 아까운 일. 어떻게든 생산을 해보자는 쪽으로 답이 모아지지만, 막상 양산을 하려니 만들 공장이 없었다. 궁리 끝에 오하이오의 공장에서 차체를 만든 뒤 디트로이트의 조립라인에서 차를 완성하는 험난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 수립된다. 1999년, 준비만 1년을 넘게 까먹은 프라울러가 생산 재개된다.

재발매된 차는 엔진은 여전히 V6였지만 신형 알루미늄엔진으로 교체되면서 어지간한 V8보다 높은 257마력을 냈고, 0-100km/h 가속도 7.2초에서 5.9초로 대폭 상향 됐다. 12가지의 다채로운 색상까지 준비되어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재발매 첫 해 4,000대의 프라울러가 팔려 나갔다. 플리머스의 이름을 재각인 시키는데 이 독특한 핫 로드 쿠페는 기대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그래서 플리머스가 부활했다면 제일 좋았겠지만, 그럴 리가 있나. 이미 기울어진 브랜드의 운명은 차 한 대로 어찌해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 플리머스 최후의 차

프라울러의 재발매 수개월 전, 크라이슬러와 메르세데스-벤츠가 합병한다. 다임러 크라이슬러 체제가 본격 가동되면서 산하 브랜드의 기술과 전략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된다.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 하에 이글과 플리머스 두 브랜드가 정리대상이 된다. 브랜드가 정리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상품이 추가되는 일은 없었다. 프라울러는 플리머스의 마지막 차로 기록된다.

사실상 점령군의 입장에서 속을 들여다보던 메르세데스-벤츠 입장에서, 프라울러의 개발비는 경이롭게 보이긴 했다. 알루미늄 양산 개발비 일체를 포함한 프라울러의 프로그램 코스트는 7,500만달러 (약 800억원). 애당초 큰 돈 들이지 않고 짬나는 대로 진행하는 사내 프로젝트 형식이긴 했지만, 독일기업의 입장에서 차와 플랫폼 일체를 개발하는데 들인 비용으로는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금액이었다. 알루미늄 양산차에 대한 검토가 잠시 진행되지만 이 또한 결국엔 폐기된다. 새 체제 하에서 경량화는 고장력 강판 기반의 모노코크 플랫폼으로 확정된 상태였다.

플리머스는 사라졌지만 프라울러는 크라이슬러의 이름으로 계속 판매됐다. 만든 회사는 팔 생각이 없었지만, 소비자의 요청으로 부활한 이 특이한 이력의 차가 완전히 단종된 것은 2001년이 되어서다. 모두 14,000여대의 프라울러가 발매되었으며, 이 차들은 발매 2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중고가 3만 달러가 넘는 고가에 거래 중이다.

프라울러의 단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을 때, 톰 게일 또한 회사를 떠난다. 수년 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요즘 판매되는 차들은 너무 보수적입니다.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밤마다 같은 술집에 모여 놀고 있기라도 하는 걸까요. (웃음) 요즘 차의 기준에서 보면 우리가 한 일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만든다는 건 그런 겁니다. 이런 게 나와야, 그 다음도 나오는 거죠.”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객원기자로 일했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글로벌 자동차 전문지 의 객원기자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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