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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모터쇼, 규모 줄었대도 눈만 즐겁더라
기사입력 :[ 2018-10-12 10:39 ]


파리 모터쇼에서 눈길이 꽂힌 3개의 콘셉트카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120주년. 지금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베르사유 박람회장에선 파리 모터쇼가 한창이다. 1898년 행사를 시작으로 올해 120주년을 맞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역사의 국제모터쇼다. 올해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과 신종 이동성(mobility) 전시가 함께 이뤄지는 첫 번째 파리 모터쇼이기도 하다. 의욕적으로 풍성한 볼거리를 챙긴 이번 행사는 하지만 개막 전부터 일찌감치 기운이 빠진 분위기였다. 행사 불참을 선언한 자동차 제조사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포드, 오펠-복스홀, 피아트-크라이슬러 등 미국계 제조사는 물론 폭스바겐, 볼보, 롤스로이스, 벤틀리, 맥라렌 등 내로라하는 다수의 유럽 브랜드도 파리 행사를 외면했다.

하지만 모터쇼는 모터쇼다. 흥미를 자아내는 모터쇼다운 볼거리는 충분했다는 얘기다. 그중 내 눈길이 꽂힌 건 3개의 콘셉트카였다. 파리 모터쇼다운 볼거리였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모두 자동차 산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제안’이라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한 출품작들이었다.



◆ 메르세데스 벤츠 비전 EQ 실버 애로

최근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동화(electrification)에 소홀하지 않다. 내연기관차를 세계 최초로 특허 등록한 메르세데스 벤츠도 마찬가지. 이들은 2022년까지 모든 제품을 전동화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전동화는 순수 배터리 전기차뿐 아니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연료전지 전기차까지를 포함한다. 계획대로라면 2022년 무렵 벤츠 산하에서 만들어지는 전동화 모델은 130가지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EQ는 이 같은 전동화 전략에 대비해 마련한 신규 브랜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파워트레인의 경우 ‘EQ 파워’라는 명칭으로 소개하고, 100% 배터리만 쓰는 순수 전기차(BEV)는 C-E-S 등 차급을 나타내는 벤츠 고유 명칭 앞에 EQ가 붙는다. 벤츠는 이번 파리 모터쇼 무대에 EQ 브랜드의 첫 번째 BEV인 EQC를 처음 올렸다. 그 옆에는 비전 EQ 실버 애로(Vision EQ Silver Arrow)라는 쇼카도 전시했다. 파리 행사에 앞서 지난 8월 미국 몬터레이 카 위크에 등장한 모델이다.

실버 애로(Silver Arrow)는 1930년대 그랑프리 무대를 주름잡았던 벤츠 경주차를 일컫는 별명이었다. 이 쇼카는 그 중에서도 1937년에 시속 432.7km로 세계 최고속 기록을 세운 W125 모델을 소환해냈다. 유선형의 매끈한 실루엣부터 반짝이는 은빛 차체까지 구석구석에 W125 속도기록차를 떠올리는 흔적이 가득하다. 80kWh 용량 배터리로 전기모터가 750마력의 성능을 낸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상 이 부분은 크게 관심이 가진 않는다. 이 차의 의미는 성능이 아니라 이야깃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신규 브랜드는 시장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벤츠라고 다르지 않다.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AMG 역시 매력적인 고성능 브랜드로 확실히 각인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중심을 잡아주는 모델이나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면 신규 브랜드는 조금은 수월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비전 EQ 실버 애로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 역사가 일천한 EQ 브랜드에 풍성하고 깊이 있는 스토리를 더해주는 것, 그게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37년형 W125 실버 애로는 아무 때나 꺼내서 아무렇게나 써도 좋은 시시한 옛날얘기가 아니다. 벤츠가 큰맘 먹고 끄집어냈다는 얘기다. EV, 자율주행, 승차공유 등 새로운 이동성이 자리 잡아가면 그에 발맞춘 새로운 브랜드도 속속 등장하고, 찬란했던 과거를 소환하는 작업도 점점 활발해질 거다. 메르세데스 벤츠 비전 EQ 실버 애로는 그 전주곡이라는 생각이다.



◆ 르노 EZ-얼티모

르노는 올해 ‘EZ-’로 시작하는 콘셉트카 3연작을 선보였다. 제네바 오토살롱의 EZ-고, 하노버 모터쇼의 EZ-프로, 그리고 이번 파리 모터쇼의 EZ-얼티모가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전기 파워트레인과 자율주행 기술을 갖춘 커넥티드카로 고안됐으며, ‘공유 경제’ 안에서의 저마다 다른 쓰임을 모색한다. 예컨대 EZ-고는 모든 이들을 위한 도심형 이동수단이며, EZ-프로는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 서비스를 위한 자동화된 물류 차량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최근작인 EZ-얼티모는 마지막 빈자리, 개인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프리미엄 이동수단을 지향한다. 하나같이 현실적이고, 선명한 아이디어들이다.



르노 EZ 콘셉트 3연작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공유경제 안에서 자동차 제조사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음, 최소한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ICT 기업에 밀려 무기력하게 무너지진 않을 듯하다. 120년 내공은 허투루 볼 게 아니다.



◆ 푸조 e-레전드

각설하고, 이 차는 멋지다. 이번 파리 모터쇼 출품작 중 가장 멋진 차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는 점에서도 멋지다. 간략하게는, 자율주행과 커넥티드 기능을 갖춘 배터리 전기차다. 딱히 특별한 콘셉트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비전 EQ 실버 애로가 그랬던 것처럼 이 차도 푸조가 자랑해 마지않는 과거 명차를 오마주하고 있다. 50여 년 전 프랑스 도로를 주름잡았던 504 쿠페가 그 주인공이다.



1969년에 출시한 푸조 504 쿠페가 얼마나 대단한 차였는지는 모르지만 푸조 e-레전드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2도어 쿠페 보디의 실루엣은 고전적이지만 얼굴 디자인은 매우 현대적이다. 좌우 모서리를 비스듬히 깎은 앞 범퍼, 가운데가 봉긋하고 앞 끝이 살짝 가라앉은 보닛은 분명 최근의 보행자 충돌안전 기준을 따른 영향이다. 반면 지붕을 떠받드는 기둥(필러)들은 우산살처럼 가느다랗다. 오마주한 1960~70년대의 504 쿠페를 고스란히 따른 인상인데, 요즘 차는 이렇게 얇은 기둥이 없다. 차량이 전복됐을 때 승객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e-레전드는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멋져 보이고 시판 모델(양산이 된다면)의 모습이 더 기대된다. 21세기의 강력한 안전기준은,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조치임은 분명하지만 자동차 디자인에서 날렵함을 앗아가 아쉬웠다.



푸조 디자이너는 무슨 생각으로 e-레전드의 기둥을 저렇게 얇게 만들었을까? 그저 오마주이기 때문에? 아니면 고도의 자율주행 기술이 사고발생 가능성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 거라는 예측으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 걸까? 또는 우산살처럼 얇아도 차량 무게를 충분히 지탱할 수 있는 새로운 경량 고강성 소재나 차체 강화구조라도 발견했나? 무엇이 됐건 푸조 e-레전드가 당장 전시장에서 만나보고 싶은 차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김형준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톱기어> 한국판, 남성지 <지큐코리아>에서 다년간 자동차 글을 써왔다. 글로벌 자동차 잡지 <모터 트렌드> 편집장을 거쳐 현재는 한층 흥미롭고 심도 깊은 자동차 문화 탐구를 위해 자유 항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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