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News 주요뉴스

현대차 스스로도 그랜저 IG가 대박을 칠 줄은 짐작 못했다 [최고의 반전]
기사입력 :[ 2018-10-29 14:24 ]


그랜저 IG, 말하자면 계산이 치밀한 ‘기획 상품’의 승리다

[최고의 반전] 현대차는 2016년 11월에 그랜저 IG를 출시했다. 시판에 앞서서는 으레 그렇듯 미디어 시승행사가 이뤄졌다. 첫인상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사실 기대보단 우려가 컸다. 새로운 그랜저 차체는 각진 모서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매끈했다. 보닛에서 지붕, 트렁크 끝까지 이어지는 선도 곱디고왔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형상, 그릴 모양과 크기는 소담했다. 이전 HG 그랜저의 과시적인 면모는 ‘1’도 느껴지지 않았다. 따라가며 바라본 뒷모습은 아담해 보이기까지 했다. 양끝을 오므린 엉덩이 때문이었다. 우리 머릿속 그랜저는 크고 우람한 게 정상이었다. 눈앞의 그랜저는 작고 아담해 보였다. 우려는 그 때문이었다. 그랜저 소비자가 과연 ‘젊은 그랜저’에 매력을 느낄까?

기우였다. 그랜저 IG는 사전계약 단계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사전계약 시작 첫날 1만5973대로 역대 최대 기록을 세우더니 3주 동안 2만7000여대의 사전계약을 성사시켰다. 갑자기 반짝하고 세게 부는 돌풍이 아니었다. 그랜저 IG는 그해 12월 1만7247대를 시작으로 이듬해 7월까지 8개월 연속 1만대 이상 판매량을 보였다. 기세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2017년 한해 판매량 합계는 13만2080대에 달했다. 월평균 1만1006대 꼴이었다. 경쟁상대를 찾을 수 없는 베스트셀러였다.



아무리 차가 좋은들, 제아무리 한국 자동차사에서 손꼽히는 선망의 고급차였던 그랜저라 한들 준대형 세단이 베스트셀러에 오를 거라 짐작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국 자동차 소비자가 아무리 크고 화려한 걸 좋아한다 해도 3000만원 초반부터 시작하는 준고급 승용차가 불티나게 팔리는 건 기현상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랜저 IG의 성공은 그 자체로 최고의 반전이었다.

물론 현대차의 의도는 명확했다. 이전보다 슬림하고 젊어 보이는 스타일링은 고객 연령대를 낮추어 저변을 넓히겠다는 의도가 공공연했다. 요소 하나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는 비슷한 가격대의 수입차를 견제하겠다는 분명한 의지였다. 3055만원의 시작가격은 중형과 준대형 세단 틈새를 공략하며 성공했던 SM6까지 겨누는 견제장치였다. 2.4리터와 3.3리터 가솔린 중심으로 제법 잘 굴러가고 있던 형제 모델 기아 K7과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파워트레인 라인업도 2.4리터와 3.0리터 가솔린, 2.2리터 디젤 엔진 3가지만으로 단출하게 구성했다(물론 뒤이어 3.3리터 V6 가솔린 모델을 꽂아놓고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추가하긴 했지만). 말하자면 계산이 치밀한 ‘기획 상품’이라고 해도 좋았다.



치열하게 고민해 내놓은 상품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랜저 IG의 경우 달라진 시장 환경이 기획 의도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성공으로 이어진 케이스였다. 공식 출시한 2016년 말은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영향으로 여러 수입차 브랜드가 주춤하던 시기였다. 폭스바겐은 국내에서 3000만원 초반~4000만원대 중반 제품이 주력인 브랜드였다. 전격 판매중단에 들어간 2016년, 폭스바겐의 국내 판매량은 1만3178대로 전년도(3만5778대)보다 2만2000여대나 줄어 있었다. 그들 말고도 닛산(캐시카이), 인피니티(Q50), 메르세데스 벤츠(A 180 CDI) 등 다수의 엔트리 수입모델이 디젤 엔진 인증 문제로 국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터였다.

고급화된 면면으로 국산 중형세단 시장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르노삼성 SM6도 공식 데뷔 이듬해인 2017년 들어서면서부터 하락세가 완연했다. 애초부터 준(準)고급차였던 그랜저의 변모는 SM6의 경쟁력 약화에 톡톡한 역할을 했다. 자율주행 관련기술의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ADAS로 일컬어지는 첨단 운전자 보조장치가 대중화된 것도 그랜저 IG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현대차가 그랜저 IG에 처음 도입한 스마트 센스 패키지는 자동 긴급제동(AEB)과 주행 조향보조(LKAS), 후측방 충돌회피 지원(ABSD),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SCC) 등을 아우르고 있었다. 150만원 가량이면 자율주행차에 준하는 편의와 안전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반향이 적지 않았다.



점점 벌어지는 소득격차, 높은 수준의 소득향상을 기대하기 힘든 정체된 경기 등으로 ‘가성비’를 꼼꼼히 챙기는 소비성향도 빼놓을 수 없을 터였다. 이 같은 경제상황에 처하면 소비자들은 색다른 도전보단 실패 확률이 적은 검증된 브랜드나 제품에 투자하는 경향이 짙다. EQ900보다 S 클래스가 더 잘 팔리거나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는 SUV 판매가 늘어나는 현상은 한국에서 검증된 고급 소비재인 그랜저 IG가 성공한 배경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자동차 스스로도 그랜저 IG가 그만한 성공을 거둘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성공을 기대하긴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짐작조차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일지 모르겠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그랜저 IG의 기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출시 1년 여간 기록한 월평균 판매량 1만여 대까지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차는 올해도 매달 꼬박꼬박 9300여대씩 팔리고 있다. 중형 세단 쏘나타와 준중형 세단 아반떼의 월평균 판매량(각각 5444대, 6328대)과 비교하면 그 위력은 한층 더 대단하게 다가온다. 그랜저 IG는 당연히 올해도 판매량 8만3454대(9월 말 기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승용차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새로운 입문형 차로 자리 잡은 다섯 가지의 B 세그먼트 소형 SUV(코나, 티볼리, 스토닉, 트랙스, QM3) 판매량 합계(9만1316대)보다 불과 7862대 부족할 뿐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Copyright ⓒ 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뒤로가기 인쇄하기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