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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G90을 응원하는 게 진부한 애국심의 발로라고?
기사입력 :[ 2018-11-12 10:07 ]


페이스리프트 한 G90, 제네시스 브랜드 일으켜 세우나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6,379대. 제네시스 브랜드의 맏형이 3년 만에 제 이름을 찾았다. 지난주 초 제네시스 강남 전시장에서 가진 미디어 대상 프리뷰 행사를 통해서였다. 이 차는 지난 3년 동안 EQ900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만이었다.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에선 일찍이 G90이라는 명칭으로 통해왔다. EQ900은 2015년 말 제네시스 브랜드의 출범과 함께한 모델이었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중핵 모델인 제네시스 세단 명칭을 G80으로 변경했다. 행사 현장에선 콤팩트 세그먼트에 속하는 G70이 추가될 거란 소식도 함께 전했다.

하지만 브랜드의 최상위 모델만 제네시스(Genesis)를 상징하는 G 레터링 대신 EQ900이라는 이름을 썼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EQ900이 한국에서 인지도 높은 에쿠스(EQUUS)의 명맥을 따르려 한 작명임을. 애초 그 차도 제네시스 EQ900(또는 G90)이 아니라 에쿠스 풀 체인지 모델로 개발된 터였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적지 않았다. 제네시스는 현대자동차가 10년 가까이 공식 출범을 고민한 브랜드였다. 2015년 말의 행사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고 마침내 개별 브랜드로 독립함을 알리는 자리였다. 그런데 브랜드의 이미지와 기술력을 상징할 플래그십 모델만 별개의 이름을 쓰다니…. 딱히 특별하게 느껴지는 결정은 아니었다.



늦었지만 제네시스 플래그십은 본명(?)을 되찾았다. 이번에 공개된 G90은 EQ900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하지만 변화의 폭이 상당하다. 특히 스타일링 측면에선 완전히 다른 차라고 해도 될 만큼이다. 얼굴부터 측면, 뒷부분에 이르는 차체 패널은 EQ900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프리뷰 행사장에서 제네시스 디자인 담당 이상엽 전무는 안정되고 우아한 캐릭터를 담기 위해 “수평선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마따나 새로운 G90 스타일링을 지배하는 건 곧고 힘차게 뻗어 있는 수평 라인이다. 새로운 형태의 LED 포지셔닝 라이트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시그니처 라이트는 헤드램프 유닛을 뚫고 나와 프런트 윙까지 파고든다. 동일선상에 놓인 휠아치 뒤쪽의 측면 방향지시등과 이어지면서 이상엽 전무가 말한 ‘안정된 수평 라인’에 힘을 싣는다.

이는 꽤 흥미로운 표현방식이다. 수평선은 차체 크기와 안정감을 주는 데 효과적이다. 그동안은 보디 패널의 에지와 음영으로 수평선을 강조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반면 G90은 라이팅으로 수평선을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헤드램프 라이팅으로 브랜드 캐릭터를 규정하는 건 요즘 카 디자인의 유행이다. 볼보는 헤드램프에 담은 독특한 LED 라이팅을 ‘토르의 망치’라고 부른다. 실제로 토르의 망치가 그런 모양인지는 알 길 없지만 사람들은 이제 ‘토르의 망치’ 라이팅을 볼보 브랜드의 상징으로 인식한다. 과거엔 BMW의 ‘엔젤 아이’ 라이팅이 그 같은 기능을 했다. G90의 LED 라이팅은 앞서 말한 것처럼 대형 고급세단의 크기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GV80 콘셉트에서 제시했던 독특한 시그니처 라이트 형상을 효과적으로 양산화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GV80 콘셉트에서 소개했던 두 가닥의 얇은 LED ‘쌍’ 라이트 형상은 두툼한 LED 포지셔닝 램프 위아래에 배치된 쿼드램프 레이아웃으로 구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네시스라는 얼굴’이 단숨에 각인된다는 점이다. 플루이딕 스컬프처 2.0 디자인 테마에서 출발한 1세대 제네시스 브랜드 디자인은 그 존재감이 흐릿했다. 특징이 무엇인지, 제네시스만의 분위기가 무엇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시그니처 라이팅은 제네시스 브랜드 디자인에 명확한 색깔을 부여한다. G90이 도로를 굴러다니기 시작하고 이후 G80 후속모델, GV80 콘셉트를 양산화한 SUV가 잇따르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제네시스 브랜드의 존재를 인지하게 될 거다.

모든 변화가 긍정적인 건 아니다. 웅장함보단 안정감과 우아함을 추구한 디자인인 탓에 차체가 실제보다 낮아 보이며, 방패 모양이 선명한 크레스트 그릴과 (역시 가로로 길게 뻗은) 하단 에어인테이크는 묘하게 알파로메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상엽 전무는 “(G90 디자인은)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페이스리프트에서 이만큼 큰 변화를 도모한 만큼 잇따르는 완전신형(G80 후속, GV80) 제네시스 디자인은 훨씬 큰 변화와 분명한 캐릭터를 담게 될 거란 예고다.

하지만 새로운 디자인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못한다. 소비자는 가치가 명확한 제품에 손을 뻗는다. 고급 제품다운 사양과 기술수준에 더해 브랜드로서도 선망하는 위치까지 다다르지 못하면 럭셔리 시장에선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미래에 제네시스는 과연 어떤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해야 할까? 디자인 담당인 이상엽 전무가 바라는 그림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다. 진부한 애국심의 발로라고? 잇따르는 설명을 들으면 생각이 조금 바뀐다. “제네시스 레터링 아래 SEOUL을 쓸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비근한 예로는 ‘PARIS’ 글자가 적힌 샤넬 로고가 있다. SEOUL은 한국인에겐 뻔하디 뻔한 느낌이지만 미국, 유럽인에겐 TOKYO, BEIJING과 다르지 않게 기대감을 선사하는 미지의 도시다. 기회의 문이 완전히 닫혀 있진 않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도 제네시스는 우선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고급차가 돼야 한다. 제네시스 EQ900의 올해 국내 판매량은 지난 9월까지 6,379대다. 같은 기간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는 5,597대가 팔렸다. AMG와 마이바흐 모델까지 더하면 6,226대로 격차가 거의 없다. 같은 기간 1,812대 팔린 BMW 7시리즈까지 더해지면 두 독일 대형세단 판매량(8038대)은 그보다 더 저렴한 EQ900 판매실적을 훌쩍 뛰어넘는다. 서울 도심에서 제네시스 EQ900보다 벤츠 S 클래스, BMW 7시리즈가 더 자주 보이는 듯한 ‘느낌적 느낌’은, 막연한 느낌이 아니었던 셈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김형준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톱기어> 한국판, 남성지 <지큐코리아>에서 다년간 자동차 글을 써왔다. 글로벌 자동차 잡지 <모터 트렌드> 편집장을 거쳐 현재는 한층 흥미롭고 심도 깊은 자동차 문화 탐구를 위해 자유 항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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