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News 주요뉴스

미국에서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일본 최고 인기 경차
기사입력 :[ 2019-01-18 11:01 ]


일본 최초의 모노코크 바디 양산차, 스바루 360 (3)

(2부에서 이어집니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레이디 버그(무당벌레)’라는 애칭을 얻은 360은 1960년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차였다. 인구 밀도가 높고 도로가 좁은 일본에서 360은 완벽한 실용성을 갖춘 차량이었지만, 그건 이 차가 일본의 법에 딱 맞추어 나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후지중공업은 360을 해외에 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는 미국에 수출된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또한 미국의 법 때문이었다.



‘미국인’ 말콤 브릭클린은 후지중공업이 제조하던 스쿠터 수입상을 막 인수한 참이었다. 가진 재고를 모두 팔고 난 뒤 새 주문을 넣은 그는 제작사로부터 스쿠터사업을 접는다는 회신을 받는다. 자동차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생산라인을 통째로 매각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서둘러 일본에 들어간다. 설비를 사들이기 위한 협상이 목적이였지만, 라인은 이미 이스라엘로 뜯겨나간 뒤. 꿩 대신 닭이라고, 그는 후지중공업이 생산 중인 자동차 쪽에 눈을 돌린다.

스바루 360의 자그마한 체구는 바로 그의 이목을 끌었다. 전장이 5미터가 넘는 8기통 차가 대부분이던 미국 시장에서 스바루 360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물건으로 보였지만, 그는 이 차를 기회로 본다. 당시 미국연방법은 1000파운드(약454kg) 미만의 탈 것에게는 별도의 안전 인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주차와 운전이 쉬운 작은 차체에, 17km/L에 달하는 연비는 주머니 얇은 젊은 여성층이 소비하기에 딱 적절해 보였다. (별명도 무당벌레 (Ladybug)였으니…) 그는 곤란해 하는 후지중공업을 설득해 마침내 미국판매권을 따내는데 성공한다. 1968년, 필라델피아에 스바루의 수입사 스바루 오브 아메리카(Subaru of America)가 설립되고 90개의 지역 딜러가 모집된다. 스바루 360과 함께 이미 2세대로 진화한 삼바트럭과 밴, 최초의 박서엔진을 얹은 소형 세단 FF-1(미국명 스타)이 함께 수입된다.



◆ ‘싸고 못 생긴 게’ 어때서

인지도가 전무한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오늘날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노이즈마케팅’ 이였다. 그 유명한 광고 “cheap and ugly” (싸고 못생긴) 캠페인이 시작된다. 대놓고 자신의 상품을 폄하하는 광고는 단박에 주목을 끄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스바루라는 생소한 브랜드의 이미지를 안 좋게 각인시켜 버린다. 스바루 360은 과연 저렴하긴 했다. 시판가격은 1297 달러로, 이것은 당시 미국 내 시판 자동차 중 가장 싼 가격이었다. 스바루 360의 가격은 저렴한 차의 대명사였던 폭스바겐 비틀보다도 300달러나 낮았다. 하지만 자동차가 어디 싸다고 마구 팔리는 물건이던가. 저걸 어찌 타고 다니냐는 시선을 받으며 약간의 차가 괴짜들에게 팔려나가던 즈음 사건이 터진다. ‘컨슈머리포트’지의 평가였다. 오늘날까지 소비자 제품평가의 기준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 저명한 잡지는 스바루 360에 'Not Acceptable (사면 안됨)' 판정을 내려버린다.



‘속도가 50mph (약 80km/h)에 도달할 때까지 37.5초가 걸리는 가속성능은 고속도로에서의 신뢰성에 의문이 들게 만든다. 26마력짜리 2기통엔진은 60mph(약96km/h) 항속주행에 역부족이다. 갑작스러운 거동변화 시에는 뒷바퀴가 거북이 다리처럼 아래로 오므라들며 접지력이 회복이 안 된다. 앞 범퍼는 수박보다 단단한 물체와 부딪히면 쓸모가 없어진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이 차는 도심지 제한속도가 50km/h에 머무르던 당대 일본의 환경에서는 최선의 차였지만, 이미 오늘날의 수준과 다름없던 미국의 자동차 환경에서는 심각할 정도로 저성능의 차였다. 브릭클린은 이 끔찍한 리포트를 ‘고작’ 50만부밖에 팔지 못하는 잡지의 편견으로 치부해버렸지만, 사태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간다. 대출을 해준 은행도, 판매를 검토하던 딜러들도 모두 컨슈머리포트의 기사를 보았으니까. 대출상환이 일방적으로 통보되고, 사방에서 돈 달라는 압박이 시작되었다. 수입을 취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미 만대가 넘는 스바루 360가 입항을 끝낸 뒤였다.



다급해진 브릭클린은 할인 판매를 강행한다. 한 대를 사면 한 대를 얹어주는 1+1 행사도 모자라 나중에는 다른 차를 사면 단돈 1달러에 차를 끼워 파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브랜드 이미지가 망가지던 말던 알바 아니었다. 그는 생존력 하나는 끝내주는 장사꾼이기도 했다. 자동차 사업을 벌이기 전에 그는 이런 저런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돈을 번 사람이었다. 더 이상 할인판매조차 먹히기 않게 되자, 그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차를 처리하기 시작한다. 스바루 360을 가져다 카트로 꾸민 뒤 1달러를 내면 누구나 코스 한 바퀴를 달려보는 고카트 프랜차이즈를 만든 것이다. 개조된 360은 마구잡이로 굴려지다가 대부분 박살이 난 뒤 폐기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누구보다 경악한 것은 후지중공업이었다. 후지중공업은 서둘러 교섭을 시작한 뒤 브룩클린의 회사 스바루 오브 아메리카를 사들이고, 브릭클린을 쫒아낸 뒤 정상적인 자동차 판매법인으로 돌려놓기 위해 애를 써보지만, 망가진 브랜드 이미지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한다. 스바루의 차가 미국에서 정상적인 이미지를 회복하게 되는 것은 1978년 시판된 경트럭 브랫(BRAT)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난 뒤의 일이다. 스바루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면, 늘 자랑스럽게 앞세우는 360도, 미국에서만큼은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지금의 미국인들에게만큼은 박서엔진과 AWD만으로 기억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난장판이 된 회사를 빠져나온 브룩클린은 그 뒤에도 몇 번이나 미국의 자동차시장에 이름을 비추며 장사꾼의 수완을 이어간다. 그가 인생의 정점에 올라가는 것은 1980년대였다. 현대자동차 엑셀과 함께 저가차 시장을 풍미했던 유고슬라비아차 유고(Yugo)를 수입한 것이다. 채 4000달러가 넘지 않던 저렴한 차는 도합 15만대나 팔려 나가지만, 미국역사상 최악의 품질로 기억될 차라는 오명만 남긴다. 내전으로 공급까지 끊기며 회사는 파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 같은 패턴으로 덤벼든다. 2000년대에는 중국 체리(Chery)의 차를 수입하려 덤볐다가 법정다툼만 벌이고 실패한다. 거래가 성사되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마티즈 짝퉁이 미국의 거리를 활보하는 꼴을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Copyright ⓒ 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뒤로가기 인쇄하기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