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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생각이 있었겠지…’ 한국GM의 안타까운 헛발질
기사입력 :[ 2019-01-31 08:53 ]


한국GM,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다

[전승용의 팩트체크]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몇 번쯤은 그냥 실수라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런 실수가 계속되면 그 본연의 실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아니면 일부러 그랬던지요.

‘다 생각이 있었겠지…’ 자동차 브랜드가 가끔 내지르는 헛발질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긴 가방끈에 훨씬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대체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도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쉐보레 트래버스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여러 비판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출시 시기’와 ‘가격’인 듯합니다. ‘현대차 팰리세이드 나오기 전에 트래버스를 들여와서 시장을 선점했어야지. 이제는 힘들 거다’는 말이나 ‘이쿼녹스 대신 트래버스 선제적으로 들여와서 적당한 가격에 책정해서 판매하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장사할 마음이 있냐’는 댓글이 묵직하게 가슴에 꽂힙니다.



뭐 그리 특별한 말은 아닙니다. 대형 SUV에 대한 신규 수요에 맞춰 트래버스를 빠르게 들여와라, 최근 저지른 몇 번의 가격 정책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고 합리적인 가격에 출시해라… 자동차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너무 당연해 그러지 않은 이유가 궁금할 정도로요. 오죽하면 GM이 한국에서 떠나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왔겠습니까.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2011년 GM코리아는 회사명을 한국GM으로 바꾸고 쉐보레 브랜드를 도입했습니다. 당시로써는(물론, 현재로도) 유일하게 현대기아차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제품 라인업을 확보했죠. 그러나 한국시장 점유율 10%를 넘기겠다는 당찬 목표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 못 이루고 있습니다. 오히려 군산공장 폐쇄 등의 악재가 이어지면서 점유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죠. 특히, 지난해에는 판매량에서 쌍용차에 밀리며 4위로 떨어지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 것은 2016년입니다. 2015년 7·8월에 나온 신형 스파크와 임팔라가 전작을 능가하는 판매량을 기록하는 가운데, 2016년 5월 신형 말리부가 출시되며 전체적인 볼륨을 키웠습니다. 같은해 10월에 나온 트랙스 페이스리프트도 한몫했고요.

그런데 한국GM은 왜 이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하락세를 겪게 됐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파크부터 이쿼녹스에 이르는 제품 전 라인업에 조금씩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2015년 나온 신형 스파크는 ‘고급 경차’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출시됐으나, 경차치고는 너무 비쌌습니다. 풀체인지를 준비 중이던 기아차가 이를 가만히 놓아둘 리 없죠. 곧바로 모닝에 파격적인 할인을 하며 가격 싸움을 붙였습니다. 버티지 못한 스파크도 할인으로 맞섰고, 경쟁이 시작됐습니다. 당장의 판매량은 늘어났지만, 어느새 스파크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죠.

아베오는 처음부터 국내 시장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모델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탄탄한 주행 성능은 좋았으나, 프라이드나 엑센트에 비해 상품성이 다소 떨어졌고, 디젤 모델이 없었습니다. 한국GM에서는 엔진 라인업을 1.4 터보로 바꾸며 ‘펀카’로 포지셔닝하려 했으나, 너무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2017년 나온 신형 크루즈는 한국GM의 대표적인 가격 정책 실패 사례로 남았습니다. ‘프리미엄 중형차’를 표방해 성공을 거둔 르노삼성 SM6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프리미엄 준중형차’란 타이틀을 내걸고 가격대를 높였습니다. 출시한지 두 달 만에 가격을 최대 200만원 내렸지만, 이미 소비자를 태운 버스는 떠나고 없었습니다.



그나마 준수한 판매량을 기록한 말리부도 이런 헛발질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2016년 4월 공식 출시 후 한 달여 만에 계약대수 1만7000대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죠. 일부 모델의 경우 계약부터 인도까지 5개월이나 소요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한국GM은 신차를 기다리던 소비자들에게 가격이 오른 연식변경 모델로 계약을 바꾼다고 통보했고, 이에 차량 구매 취소 요청이 줄을 이었습니다. 여기에 노조 파업 등이 겹치면서 신차 효과는 금세 잠잠해졌습니다.

플래그십 실패의 역사를 끊어줄 뻔했던 임팔라 역시 헛발질 끝에 사라져버렸습니다. 2015년 8월 출시돼 1년 만에 1만5000여대를 판매하며 한국 시장에 안착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출시 1년 만인 2016년 9월, 돌연 임팔라의 가격을 최대 345만원 올려버렸습니다. 그 결과 9~12월 판매량은 전년 대비 68% 폭락하게 됐죠.



트랙스는 B세그먼트 SUV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좋은 모델이지만, 가격 정책에는 실패했습니다. 2013년 2월 출시된 트랙스(1.4 터보)의 가격은 1940~2289만원. 지금이야 이해할만한 가격이지만, 당시에는 너무 비싸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결국 디젤 모델을 앞세운 르노삼성 QM3에 주도권을 내줬고, 쌍용차 티볼리에 완전히 뺏기게 됐죠.

소형 미니밴으로 인기를 모았던 올란도는 SUV가 인기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판매량이 줄었습니다. 특히, 디젤 모델은 유로6로 인한 가격 인상, LPG 모델은 연료비 상승 등의 이유로 올란도의 강점이었던 ‘경제성’이 하락한 것이죠. 캡티바의 경우 2006년 이후 10년 동안 3번이나 페이스리프트 된 일명 ‘사골 모델’로, 하루가 멀다 하게 바뀌는 SUV 시장의 흐름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싼타페·쏘렌토·QM6 등의 경쟁자들과 현격한 상품성 격차가 벌어진 상태였죠. 게다가 GM 본사에서 올란도와 캡티바를 단종시키기로 결정하면서 기대할 것이 없는 모델이 됐습니다.

캡티바의 자리를 이어받은 이쿼녹스도 답이 없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오기 전부터 ‘중형 SUV에 1.6 엔진이 말이 되냐’는 부정적인 여론에 휩싸였고, 나오고 나서는 ‘1.6 엔진에 이 가격이 말이 되냐’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는 판매량에 고스란히 나타났죠.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은 필요한 듯합니다. 하나는 제품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유용함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자들보다 뛰어난 비교우위죠. 전자를 ‘상품성’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경쟁력’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런 관점에서 한국GM의 차량은 상품성이 좋을지는 몰라도 경쟁력은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GM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당장 돈이 안 되고, 손해를 보더라도 소비자들에게 ‘한국GM이 이렇게까지 노력하고 있다’란 인식을 심어줘야겠죠. 최근 흐름이 몇 년 더 지속된다면 한국GM은 정말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신차 출시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매번 한 박자 느린 신차 출시는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 전체적인 판매 하락의 원인이 됩니다. 디젤 모델 출시를 늦추는 바람에 트랙스가 B세그먼트 SUV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긴 것, 신형 크루즈와 신형 말리부의 국내 출시가 지지부진했던 것, 유로6 모델 도입이 늦어 긴 판매 공백이 생긴 것 등은 소비자들의 실망감만 높일 뿐입니다. 댓글에 언급된 대형 SUV 트래버스 출시 시기, 픽업트럭 콜로라도의 도입 여부 등도 마찬가지죠.

경쟁력 있는 가격 정책도 중요합니다. 한국GM이 판매하는 차들은 대체로 동급 현대기아차보다 비쌉니다. 단순한 가격 차이뿐 아니라 화려한 디자인과 다양한 옵션, AS 편리성과 중고차 가격까지 고려하면 차량 구매 시 체감하는 격차는 더욱 커집니다. 덕분에 한국GM 대신 현대기아차를 사는 전형적인 패턴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있더라도 시장 상황에 맞게 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 가격 결정은 제조사 고유의 권한이지만, 그 제품을 사지 않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기 때문이죠.

눈에 보이게 팔아야 합니다. 한국GM 차량은 구매자의 만족도가 꽤 높습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안정성과 정숙성, 핸들링 등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리죠. 그런데 이런 장점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가격과 디자인, 편의사양 등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눈에 보이는 요소들을 보강하면서 자신들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어필해야만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요즘 나오는 현대기아차는 기본기도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까요.



결국 GM 본사의 의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많은 소비자들은 한국GM보다 GM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가격과 출시 시점 등 문제점으로 지적된 일련의 상황을 과연 한국GM이 만든 것일까, 아마 대부분은 GM 본사에서 결정하는 게 아닐까, GM은 한국에서 장사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닌가… 이런 구조가 되는 것이죠.

의심의 결과는 군산 공장 폐쇄와 R&D 법인 분리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계속된 판매 부진으로 한국GM의 수익성이 나빠진 상황임에도 GM은 자기 몫만 챙긴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물론, GM에게 한국시장은 매우 불편할 수 있습니다. GM이 연간 판매하는 차량만 1000만대가 넘습니다. 쉐보레만 해도 400만대 이상이죠. 이에 비해 한국은 1년에 겨우 20만대도 안 팔리는 작은 시장입니다. 생산 기지나 R&D 거점으로서 가치는 있을지 모르나 무리한 투자를 해서 살려야 할 곳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노조와의 관계가 좋은 것도 아니고요.

한국GM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예상한다면 그리 긍정적인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좋은 차를 시장 상황에 맞춰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는다’는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죠.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GM이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애정 어린 마음으로 지켜볼 뿐입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전승용

전승용 칼럼니스트 : 모터스포츠 영상 PD로 자동차 업계에 발을 담갔으나, 반강제적인 기자 전업 후 <탑라이더>와 <모터그래프> 창간 멤버로 활동하며 몸까지 푹 들어가 버렸다.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에 관심이 많아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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