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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있었기에 세계 최고가 부가티가 존재함을 고백합니다”
기사입력 :[ 2019-03-12 09:14 ]


베이론 이전의 슈퍼 부가티, EB110 (3)

(2부에서 이어집니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성대한 발표회까지 마쳤지만, EB110이 실제 고객에게 인도되기까지는 또 시간이 필요했다. 발매 1년 전 디자인을 뒤집은 후 겨우 일정에 맞춘 차의 완성도란 것은 그저 보여주기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목표로 한 실제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산더미 같은 작업이 남아 있었다.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 한편으로, 양산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92년 3월, 풍동 테스트로 다듬어진 최종형이 이탈리아 나르도 트랙에서 정밀계측에 나선다. 존재하는 모든 시판차의 기록을 갈아치우겠다는 원대한 목표는 멋지게 달성되었다. 0-100km/h 3.46초, 0-400m 11.4초에 최고속도 342km/h의 기록은 이 새로운 슈퍼카에 대한 모든 의심을 날려 버리기 충분했다. 이걸로 만족 못하는 하드코어 고객을 위한 SS모델도 따로 준비되었다. 편의장비를 덜어내고 경량소재를 써서 200kg을 감량한 뒤 부스트를 끌어올린 스페셜 모델, EB110 SS는 0-100km/h 3.24초에 실측 350km/h를 돌파한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기세가 된 사장 아르티올리는 호기롭게 미디어를 불러들인다. 이왕 판이 벌어진 거, 독일 자동차매거진 AMS(Auto Moter und Sport)는 경쟁자까지 몽땅 한자리에 불러 모아 비교테스트를 벌였다. 페라리 F40, 재규어 XJ220, 포르쉐 911에 람보르기니 디아블로까지 가져다 놓은 세기의 대결은 EB110의 완승으로 끝난다. 객관적인 성능은 물론, 주관적인 감성의 영역에서도 EB110은 대결을 지켜본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4000RPM을 넘어 네 개의 터빈이 일제히 부스트를 거는 순간, 단숨에 9000RPM으로 치솟으며 돌진하는 차의 가속은 당대의 모든 슈퍼카를 압도했다. 그러면서도 차는 대단히 몰기 쉬웠고, 항속 주행 연비는 경쟁차의 두 배를 넘는 8.9km/l에 달했다. 이 차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AMS의 필진 중 하나는 EB110을 그냥 한 대 ‘구입’하기로 마음먹는다. 돈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객관적인 성능비교를 위해 섭외된 F1 드라이버, 그의 이름은 바로 ‘마이클 슈마허’ 였다.

이제 EB110의 성능에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EB110은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차가 아니었다. 아르티올리는 예비 구매자에게 부가티에 걸맞은 품격은 물론, 도덕적 자질까지 요구했다. 최소 40만달러(현재 물가 환산 시 약 10억원)의 잔고 증명은 물론이고, 본사에서의 인터뷰를 포함, 범죄이력까지 들춰보는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했다. 이 과정을 지나 비로소 차를 살 수 있게 된 고객에게는 극진한 서비스로 보답했다. 새차는 주소지까지 전담 미캐닉이 동행했으며, 1주일간 차량의 작동과 관리에 대한 밀착 안내를 제공했다. 정비가 필요하다면 세상 어디라도 직접 날아가 처리하는 서비스도 포함되었다.

발표회 이후 1년이 지난 1992년 9월, 14번째의 프로토타입이 유럽충돌테스트를 통과하면서 모든 준비가 끝난다. 그해 12월 1일, 양산라인을 빠져나온 첫 차가 스위스의 고객에게 인도된다. 토리노의 첫 회동이 있은 지 9년만의 일이였다.



◆ 명품, 해외진출, 로터스

천신만고 끝에 차는 나왔지만, 부가티의 앞날이 마냥 탄탄대로인 것은 아니었다. 사양에 따라 차량가격은 최대 60만 달러(현 물가 환산 시 약 15억원)까지 올라갔지만, 부품 수급과 수공에 의존한 공정 탓에 차는 한 해 150대를 만드는 것이 한계였다. 개발과 설비에 들어간 과잉 투자는 EB110만 가지고 해결할 수준을 까마득히 넘어섰다. 닥쳐오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아르티올리 사장은 이에 아랑곳없이 확대 일변도의 정책을 밀어붙인다.

패션과 악세사리 같은 명품시장 진출의 한편으로, 새로운 자동차 라인업도 준비된다. 새 차를 만든 곳은 이탈 디자인. 비록 첫 슈퍼카 경합에서는 물을 먹었지만, 쥬지아로는 끈질기게 부가티의 주위를 맴돌며 아르티올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클래식 부가티의 디자인이 듬뿍 담긴 스케치로 마침내 쥬지아로는 일감을 따낸다.

1993년 3월, 제네바 모터쇼에 깜짝 등장한 부가티의 4도어 설룬 EB112는 사실은 부가티의 손길이 전혀 닫지 않은 이탈디자인의 외주 프로젝트였다. 휠베이스 3.1미터, 길이 5.13미터의 대형세단은 부가티의 특징을 현대적인 우아함 속에 되살려낸 모습으로 호평 받았다. 새로 설계한 6리터 12기통엔진은 터보가 없는 자연흡기 방식으로 460마력에 60kg.m가 넘는 토크를 발휘했다. 당장에 주문하겠다는 부호들의 반응에 들뜬 아르티올리는 3년만 기다리면 양산차를 받을 수 있다며 예약금부터 받아든다.



문제는 EB112가 나올 때까지 버틸 체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재력과 함께, 부가티라는 이름이 끌어올 투자를 예상하고 벌인 일이였지만, 오로지 최고만을 향한 아르티올리의 집착은 예상의 몇 배를 뛰어넘는 비용으로 돌아왔다. 과잉투자와 화려한 행사, 개발번복과 지연이 겹치며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원래 하던 사업들은 예전에 날아가 버렸다. 세계최고의 슈퍼카를 만들어냈다는 우월감은 자연스레 다른 차를 깔보는 언사로 이어졌으며, 덕분에 아르티올리는 모데나의 동종업계에서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페라리가 그의 딜러권을 박탈해 버리자 그가 살아날 방법은 EB110을 더 파는 것 외에는 없게 된다. 판매량을 늘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국에 진출하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안전규정을 통과해야만 했다. 엔지니어링 컨설팅을 받기 위해 접촉한 회사, 영국 로터스에서 그는 개발역량과 방대한 유통망, 그리고 브랜드 가치를 깨닫는다. 조금만 손을 보면 로터스는 부가티와 상호 보완적인 조직이 되기 충분했다. 그는 남은 여력을 긁어모아 GM의 손에서 병들고 있던 로터스를 인수한다.



◆ 드리우는 암운

하지만 로터스에 쏟아 부은 대규모 투자는 부가티의 재정상태를 더 빠르게 악화시켰다. 1995년이 되자, 재무상태 전반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초기 계획과 달리 3년 동안 출고된 EB110은 고작 139대. 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부가티의 주요 수요처로 예상되었던 일본은 주문이 사라졌고, 60명이나 되는 사람이 선납금을 내고 기다리고 있던 미국의 안전인증은 한없이 늘어지고 있었다. 패션부분이 그나마 돈을 벌어오고는 있었지만,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급해진 아르티올리는 뒤늦게 상장을 추진해 보지만, 오히려 회사의 안 좋은 상황만 외부에 노출시킨 꼴이 된다. 투자자를 찾기 위한 필사적으로 애쓰지만 가짜 투자자 해프닝까지 벌어진다. 변명을 덮기 위한 변명이 이어지자 법원과 채권단은 마음을 굳힌다.



1995년 9월 22일 밤,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는 아르티올리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모데나 법원은 부가티에 파산 선고를 내린 뒤 모든 자산을 압류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직원 중 누구도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곧 해결될 것이라는 사장의 말을 직원들은 철석같이 믿었다. 23일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한 200여명의 직원들은 출입카드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야 회사의 운명을 알게 된다.

파산시점에서 부가티의 부채는 1억2천5백만 유로(현재 물가 환산 시 약 4천억원)에 달했다.

◆ 파산, 그 이후

이후의 일은 부가티의 저주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빚잔치 때 나온 7대의 미완성 차와 15대의 엔진을 사들인 곳은 독일의 명문 레이싱팀 다우어 레이싱. 그들은 EB110이라는 상표권까지 손에 놓은 뒤 부활을 선언하지만, 몇 년 뒤 회사가 파산해 버린다.

EB110을 만들었던 개발자 몇 명은 B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차린다. 갈 곳이 없어진 EB110의 유지보수를 주 업으로 하는 회사였지만, 부가티의 영광을 잊을 수 없었던 그들은 EB110의 부품을 끌어모아 자신들의 슈퍼카를 만든다. 슈퍼카 ‘이도니스(Edonis)’는 그 괴이한 생김새가 잠깐 화제가 되었을 뿐, 프로토타입 수준에서 끝나버린다.



모데나의 부가티 공장은 몇 번의 경매와 재개발 시도가 실패한 뒤, 2019년 현재도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널부러진 집기와 서류는 아직도 20여년전 마지막 날의 일과를 담은 채 멈춰서 있다.

부가티의 저주를 유일하게 피한 것은 폭스바겐이었다. 망해버린 회사와의 관계 잇기에 부담을 느낀 탓이었을까? 그들은 아르티올리가 되살려낸 부가티와는 일관되게 거리를 둔 채, 프랑스와 직접 대화하는 쪽을 택한다. 2005년의 ‘첫 차’ 베이론(Veyron)이 데뷔 이후, 폭스바겐의 부가티는 원래의 발상지였던 프랑스 몰샤임에서 오직 100년 전의 부가티만을 직계 조상으로 이야기해 왔다. 한 때 모데나에서 부활했던 슈퍼카는 폭스바겐의 리셋 이후 사실상 공기 취급을 받았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 EB110은 더 이상 잊힌 존재가 아니다. 2019년 2월, 부가티의 대표 스테판 윙켈만은 부가티 저택에 아르티올리를 초대해 신차 시론의 시범운전을 부탁한다. 부임 전 람보르기니의 수장으로 이탈리아 슈퍼카 산업의 한가운데를 헤쳐 온 그는, 아르티올리의 역사 또한 부가티의 정사로 보아 마땅한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86세의 노구를 끌고 나타난 아르티올리의 손을 잡고서 윙켈만은 말한다.



“그거 아십니까? 베이론의 엔진이 첫 주행 테스트에 나섰을 때, 그 엔진을 달고 달렸던 테스트카는 바로 EB110이었습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부가티가 있음을 이제 고백합니다. 드디어 이 곳에 당신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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