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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속 양산차 재규어 XJ220의 안타까운 퇴장
기사입력 :[ 2019-04-09 10:37 ]


재규어 XJ220, 재규어의 마지막 슈퍼카 이야기 (2부)

(1부에서 이어집니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그렇게 많은 주문이 쏟아들어 왔음에도 재규어의 경영진은 흥분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때는 1980년대 말, F40과 포르쉐959로 촉발된 슈퍼카 열풍은 거품을 불어넣었다. 한정판 슈퍼카는 예외 없이 가격이 치솟아 올랐고 차액을 노린 투기세력까지 뛰어드는 판이었다. 1400대의 주문에 허수가 섞어 있는 건 뻔했다. 그래도 220대는 너무 적다는 의견에 최종 수량은 350대로 결정된다. 이제는 진짜로 차를 만들어야 할 때였다.

◆ 자 이제는 차를 만들어야지

고작 10개월 만에 만들어낸 XJ220은 아직 갈길이 먼 차였다. 검증되지 않은 파워트레인, 완성되지 않은 내장 같은 추가 개발 뿐만 아니라, 이걸 균일한 성능을 내는 양산차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재규어 내부의 문제도 있었다. 재규어는 어디까지나 양산 고급차를 만드는 회사였고 XJ와 XJS의 작업에 매달리느라 슈퍼카 양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곳이 톰 워킨쇼 레이싱(Tom Walkinshaw Racing, 이하 TWR.). 재규어의 레이싱 활동을 뒷받침하던 이 명망 높은 레이스카 컨스트럭터에게 XJ220의 남은 개발과 생산을 위탁하는 계약이 체결되고, 새로운 개발팀이 꾸려진다. 토요일 클럽 중 양산까지 남기로 한명을 뺀 다른 인원은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갔다.

새 개발팀이 맨 처음 한 것은 이 시장의 선두주자 페라리F40과 포르쉐 959 두 모델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었다. 초도 XJ220에 탑재된 6.2리터의 V12엔진은 최고 700마력의 출력을 발휘하는 뛰어난 레이스용 엔진이었지만, 도로용 슈퍼카에 넣다 보니 차의 크기와 무게가 지나치게 비대해진 데다가, 승용차의 배기 인증을 받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V12와 4륜구동까지 고수할 경우 차의 무게는 F40보다 600kg이나 무거워 질 판이었다. 경쟁자들이 택한 방식은 매력적이었다. 모두 채 3리터가 되지 않는 작고 가벼운 엔진을 사용했으며, 터보를 사용해 400마력 중후반대의 출력을 만들어 냈다. 작은 엔진 덕분에 휠베이스가 짧아져 운동성에도 더 유리했다. F40의 간결하기 짝이 없는 내장에 비해 959의 호화로움은 분명 XJ220이 나가야할 방향이었다.



고심 끝에 개발진은 XJ220의 엔진을 바꾸기로 한다. 딱히 고출력 터보 엔진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마침 대체할 만한 물건은 있었다. 그룹B 레이스용으로 오스틴 로버사에서 만들었지만 레이스 자체가 사라지면서 용처가 애매해진 V64V엔진이 대체재로 물망에 오른다. 이 엔진의 권리를 사들인 재규어는 배기량을 3.5리터로 키운 뒤 2개의 터보차저를 달아 550마력/64kg.m의 출력을 내는 괴물로 재탄생시킨다. 엔진이 작아지자, 휠베이스도 200mm 짧아지게 된다.



엔진과 함께 4륜 구동 시스템도 빠진다. XJ220에 4륜 구동을 넣은 것은 그룹 B 호몰로게이션의 경쟁력을 위한 것이었지만, 무거운 V12엔진에 결합된 4륜 시스템은 장기 내구성에서 애로가 꽃을 피울 물건임이 자명했다. 레이스라면 정해진 거리만 버틴 뒤 싹 정비하면 그만일 뿐이지만 이건 ‘차알못’들이 타고 달릴 도로용 자동차였다. 고객의 손에 넘어가 일으킬 오만가지 트러블에 겁이 난 개발진은 가능하면 4륜 구동 시스템을 덜어내려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엔진이 작고 가벼워질 필요가 있었다. 엔진의 소형화는 사실은 후륜구동 방식으로 돌아가기 위한 핑계였던 셈이다.



개발이 진행될수록 차는 원래의 계획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 간다. 제작상의 난점을 이유로 시저도어 대신 평범한 문이 달린다. V6 트윈터보 엔진의 후륜구동방식을 쓰는 간명한 파워트레인을 넣고, 4륜조향시스템도 삭제된다, 엔진의 토크밴드가 바뀌게 되자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어진 6단 변속기를 대신해 5단 수동변속기가 들어간다.

하지만 원래의 목표였던 시속 220마일(354km/h)을 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XJ220의 약점이 된다. 이탈리아의 고속 주회로인 나르도 트랙에서 XJ220은 시속 217.1마일(349km)를 기록한다. 당대 최고속의 기록이긴 했지만, 목표에는 못미치는 기록이 나온 것이다. 기록계측을 위해 촉매를 떼고 레드존을 7900RPM까지 끌어올린 뒤 르망 우승자 마틴 브런들까지 데려다 태웠음에도 나온 결과였다. 제 이름값도 못하는 결과에 당황한 재규어는 이게 직선 주로로 환산하면 시속223마일(359km/h)에 해당하는 기록이라며 자기 방어에 나선다. 변명이 길어질수록 궁색함도 늘어났다.

TWR도 문제였다. 개발과 양산을 일괄 맡기로 한 레이싱 컨스트럭터는 XJ220를 위해 조직과 설비에 아낌없이 투자했고, 그 비용을 차량가격에 고스란히 반영해 버렸다. 출시 시점에서 29만파운트로 공지했던 가격은 47만파운드로 치솟아 올라버렸고, 최초에 약속했던 주요 기능은 대부분 빠지거나 사라져 버렸다. 5만파운드를 넣은 초기 고객 중 진심으로 ‘꼭지가 돈’ 일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재규어를 맹비난하며 소송에 들어간다. 재규어가 배임혐의를 벗기까지 거의 4년이나 되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차의 성능이 형편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뿐, XJ220은 이미 세계 최고속 양산차에 등극한 상태였다. 1991년, 독일 뉘르부르크링 테스트에서 XJ220은 7분36초의 기록을 달성한다. 빠르기로 이 차를 능가할 차는 아무것도 없었다. 1993년에는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3대의 재규어 XJ220-C가 르망 24시에 출전한다. GT1클래스 출전을 위한 최소한의 변경만 가한 차는 양산차 그대로 르망을 달린다는 XJ220 탄생의 취지와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이었으며 그 성능을 입증하듯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다. 하지만 규정 상 촉매가 달리지 않은 것이 발각되며 차는 실격처리 된다.



XJ220은 처참한 실패와는 거리가 먼 차였다. 1990년대 초반을 휩쓴 금융위기가 아니었다면 목표였던 350대는 무난히 채우고도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블은 터졌고 한정판 슈퍼카 시장은 된 서리를 맞았다. 이 차에 세네배씩 붙었던 프리미엄은 삽시간에 꺼져들기 시작했다. 1994년, 281번째의 차를 마지막으로 XJ220의 생산은 종료된다. 남은 재고를 다 치운 것은 1997년이 되어서였다.



◆ 그리고 그 뒤...

TWR은 XJ220의 시설과 노하우를 활용해 계속 다른 회사의 차를 만들었다. 애스턴마틴의 DB7과 닛산의 르망머신 R390 또한 이들의 작품이었다. 이들 차를 디자인한 사람은 당시 TWR의 디자이너였던 이안 컬럼.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재규어로 스카우트된 뒤, 새로운 재규어 디자인을 정립시키며 지금까지 재규어의 디자인 치프로 활약 중이다. 다만 TWR은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레이싱카 제작을 넘어 양산차로까지 확장하고 싶었던 TWR은 로버의 신형차 개발을 맡았다가 파산해 버린다. 로버도 덩달아 작살이 나 버린다.

그 지명도에도 불구하고 XJ220은 좀처럼 달리는 모습을 보기 힘든 차였다. 어이없게도 그것은 타이어 때문이었다. 앞 255/45 R17, 뒤 345/35 R18이라는 해괴한 규격의 타이어는 유일한 타이어 공급사였던 브리지스톤 외에는 어느 곳도 만들지 않는 사이즈였다. 생산 종료 시점에서 남은 재고조차 경화가 시작되며 사용할 수 없게 된 뒤, 대부분의 XJ220은 관상용 신세를 면치 못했다. XJ220이 다시 달릴 수 있게 된 것은 전용 타이어가 새로 공급되기 시작한 2016년이 되어서다. XJ220이 다시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오너들의 호소에 고심하던 타이어 제작사는 새 타이어를 만드는 말도 안되는 결정을 내렸다.

XJ220 이후 재규어는 현재까지 슈퍼카를 만들지 않지만, 잠시 그 가능성이 빛나던 적은 있었다. 2010년 C-X75라는 이름의 하이브리드 슈퍼카가 발표된다. 엔진이 아닌 가스터빈을 통해 발전한 전기를 790마력의 모터로 달리게 하는 이 진보적인 슈퍼카는 구체적인 양산 계획까지 나왔지만, 다섯 대의 프로토타입을 끝으로 프로젝트 자체가 좌초된다.



재규어가 과연 또 다시 슈퍼카를 만들까? 지금의 상황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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