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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노면 주행 모드는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
기사입력 :[ 2019-04-11 13:20 ]


포르쉐 911, 젖은 노면에서 이런 움직임 보여준 자동차 없었다

[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포르쉐 신형 911(코드네임 992)을 스페인의 한 서킷에서 테스트했다. 노면이 젖은 구간에서 주행 모드를 웻(Wet)에 놓자 차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변화는 놀라울 정도다. 이건 기존에 알던 웻 모드와 조금 다른 방식이다. 일부 자동차에 젖은 노면 주행 모드(Wet Mode)가 있다. 웻 모드는 비가 내리거나 젖은 낙엽 등이 깔린 노면에서 타이어의 접지력을 최대로 끌어올려서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게 돕는 기술이다.

자세제어장치(ESP)도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젖은 노면 주행 모드는 이와는 목적이 엄연히 다르다. 자세제어장치는 미끄러운 노면에서 엔진 출력을 억제하고, 각 바퀴에 독립적으로 제동을 걸어 차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한다. 반면 젖은 노면 주행 모드는 상황에 따라 엔진과 변속기의 부드러운 반응을 유도하면서 전자제어까지 합세해 타이어의 견인력을 최대로 효율적으로 발휘하도록 돕는다. 다시 말해 젖은 노면 주행 모드는 미끄러운 노면에서도 효율적으로, 혹은 빠르게 달리겠다는 목적을 가진 차들에 어울린다. 물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제품과 브랜드마다 다르다.



재규어는 최신형 모델에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ASPC) 혹은 어댑티브 서피스 리스폰스(AdSR) 같은 주행 모드를 제공한다. 이는 젖은 노면 주행뿐 아니라 눈길 출발, 빙판 경사로 주행, 젖은 잔디에서 견인 등 노면이 미끄러운 상황에서 자동차를 안정적으로 가속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ASPC의 특징은 다른 주행 모드와 달리 저속 크루즈 컨트롤을 통해 자동차가 정지부터 천천히 가속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비가 내린 후 미끄러운 잔디 위에서 차를 출발시킬 때 ASPC와 함께 크루즈컨트롤을 작동하면 운전자의 가속 페달을 조작하지 않아도 자동차가 스스로 최적의 타이어 접지력으로 원하는 속도까지 가속한다.

실제로 눈길에서 ASPC 사용해보면 꽤 믿을 만한 기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끄러운 노면의 상태와 타이어의 견인력을 순간적으로 파악하고 2단, 혹은 3단 기어로 출발해서 차를 안정적으로 가속시킨다. 별도로 가속 페달을 조작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마다 가속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페라리도 아주 정교하게 세팅된 젖은 노면 주행 모드를 가지고 있다. 과거엔 FF처럼 네바퀴굴림 모델에 특화된 기능이었지만, 최근엔 모든 모델에 기본으로 쓰인다. 스티어링휠에 달린 다이내믹 컨트롤 시스템 마네티노(Manettino)에서 버튼을 돌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젖은 노면 주행 모드에 들어서면 차의 모든 움직임이 최대한 부드럽게 작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아도 엔진 출력이 폭발적으로 분출하지 않는다. 변속기와 스티어링 휠 반응도 스포트나 레이스 모드에 비해 차분하다. 아주 정교하게 작동하는 전자제어 기술 때문에 운전자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꽤 빠르게 달리는 상황에서도 엔진 출력을 과하게 억제한다거나 전자제어 장치가 미리 개입하는 느낌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선 아주 약간 미끄러지는 것조차도 시스템이 허용한다.



다시 포르쉐 신형 911로 돌아와서 본다면, 이 차의 젖은 노면 주행 모드(Porsche Wet Mode)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보다 기술적으로 진보했다. 동시에 목표도 다르다. 포르쉐 911 개발 책임자 아우구스트 아흐라이트너(August Achleitner)에 따르면 “웻 모드는 젖은 노면을 안전하고 빠르게 주행하기 위해 개발된 주행 보조 시스템이지만 기존과 다르게 엔진 출력이나 최대 속도를 스스로 제한하지는 않기 때문에 과속 주행을 위한 보험으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젖은 노면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가 아니라 최대한 효율적으로 가속하고, 코너링하기 위한 기술이다.



특징이라면 젖은 도로를 자동으로 감지해서 운전자에게 사전에 위험을 경고한다는 것이다. 앞바퀴 휠 하우징 안에 달린 음향 센서가 타이어 주변으로 흩뿌려지는 물보라를 감지하는 원리다. 젖은 도로가 감지되면, 포르쉐 자세제어장치와 트랙션 컨트롤의 세팅이 곧바로 조정된다. 동시에 계기반에 경고를 통해 운전자가 수동으로 웻 모드를 전환할 것을 권장한다. 이후 웻 모드가 활성화되면 각종 전자제어 장치뿐 아니라 에어로다이내믹이나 토크 벡터링 구동 장치까지 합세해 타이어 접지력을 최대로 확보한다. 시속 90km부터 리어 스포일러가 작동하고, 쿨링 에어 플랩이 열린다. 스포트 모드나 자세제어장치 해제는 선택할 수 없다.



실제로 새로운 911의 웻 모드를 젖은 서킷에서 수차례에 걸쳐 테스트해봤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아주 매끄럽고 효율적이다. 비오는 날 트랙에서 숨겨둔 무기로 사용하기에 적절하다. 젖은 노면에서 스포트 모드로 달리는 것은 짜릿하지만 낭비가 많다. 미끄러지는 것이 즐겁지 않는 운전자에게는 대단한 모험이다. 하지만 젖은 노면 주행 모드로 바꾸는 동시에 많은 것이 바뀐다. 엔진 토크가 확실히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8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도 평소보다 느긋하게 반응한다.



무엇보다 코너의 입구에서 아주 과감하게 핸들링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뒷타이어가 접지력을 잃고 허둥거리는 모습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코너의 끝에서 가속 페달을 최대로 밟을 때도 급가속이 불안하지 않다. 엔진 출력을 억제하거나 자세제어장치가 강하게 개입하지 않는데도 이렇게 빠르고 효과적으로 젖은 노면을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두바퀴굴림인 카레라 S보다 네바퀴굴림인 4S에서 이런 움직임은 도드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4S의 경우 앞바퀴의 견인력을 적절하게 분배하면서 전자제어식 리어 디퍼렌셜의 잠금 비율을 젖은 노면에 최적화시켜 어떤 코너에서든 아주 빠르고 민첩하게 달렸다.

테스트를 시작할 땐 결과가 아주 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젖은 노면에서 911의 웻 모드를 경험한 후 생각이 달라졌다. 이건 전자제어나 기계식 기술로만 실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의 모든 부분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적절하게 세팅을 변화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젖은 노면에서 이런 움직임을 보여준 자동차는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렇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김태영 칼럼니스트 : 중앙일보 온라인 자동차 섹션을 거쳐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자동차생활>, <모터 트렌드>에서 일했다. 현재는 남성지 <에스콰이어>에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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