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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떼일 걱정 없는데 광고까지, 재규어 경영진은 반색했다
기사입력 :[ 2019-04-23 14:18 ]


재규어의 숨겨진 슈퍼카 XJR-15 (1)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재규어는 다른 유럽 브랜드처럼 백 년이 넘는 시간을 버틴 유서 깊은 브랜드는 아니지만, 그 족적은 꽤 뚜렷한 회사다. 이 회사가 지금의 날렵함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 데에는 창사 이래 이어진 레이싱 활동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작 재규어를 대표하는 슈퍼카 XJ220이 현대적인 레이스머신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XJ220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칼럼을 참고 바랍니다)

XJ220은 사실 1980년대 재규어의 레이스활동과는 별 상관이 없는 차였다. 반대가 있으면 또 다른 반대가 나오기 마련. 재규어의 레이스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슈퍼카도 따로 만들어졌다.

XJR-15. 르망 레이스카를 그대로 시판 슈퍼카로 옮긴 것 같은 차는 XJ220에 가려져 존재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차다. 이런 게 있었나 싶어 조금 더 들여다보면, 뜻밖의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놀랍게도 개발과 판매기간이 XJ220과 겹치는 것이다. 어째서 재규어는 같은 시기에 같은 성질의 슈퍼카를 두 가지나 만들어 시판한 것일까? 여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 다시 1988년으로

1988년은 재규어에게 기념할 만한 해였다. 그룹C 레이스카 XJR-9이 전세계 내구레이스를 휩쓴 것이다. 재규어는 데이토나와 WSC(World Sportscar Championship)의 정점에 올라갔으며 그중에서도 르망 우승은 재규어의 역사를 다시 쓰는 대사건이었다. 1957년을 마지막으로 르망을 떠난 지 30여년 만, 다시 르망에 도전한지 4년 만에 거둔 결실이었다. 여기에 사내 엔지니어들이 만든 슈퍼카 XJ220까지 데뷔한 것이다. 밖에서 보기엔 이 새로운 슈퍼카가 그동안의 레이스 활동이 응축된 결실로 보였겠지만, 사실 이 차는 재규어 레이싱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차였다. 바로 이 점이 재규어 레이싱의 총책, 톰 워킨쇼 (Tom Walkinshaw)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톰 워킨쇼는 1980년대 재규어 레이스의 역사를 일으킨 사람이었지만, 재규어에 소속된 인물은 아니었다. 그가 주인인 톰 워킨쇼 레이싱(Tom Walkinshaw Racing, 이하 TWR)은 메이커와 협업에 능한 해결사 같은 존재로 대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재규어 외에도 호주 홀덴과 영국 로버의 레이스도 담당했으며, 그 모두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자신의 회사를 마치 특정 브랜드의 워크스팀처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성적만큼이나 뛰어난 ‘가성비’ 덕분이었다. 그는 무턱대고 자동차 회사에 돈을 요구하는 대신 레이스활동으로 발생한 브랜드 가치를 돈으로 바꾸는데 능했다. 유럽 그룹C 활동에 필요한 연간 자금 500만파운드 중 그가 재규어에 요구한 돈은 1/5 수준에 머물렀으며, 나머지는 스폰서와 주식을 통해 충당했다. 나중에 포드가 재규어를 합병할 때, TWR의 레이스 활동을 자산으로 편입시켜 주당 매입가격을 끌어올렸을 정도였으니까.

재규어의 XJR-9이 미국과 유럽의 양대 레이스를 평정하자, 이걸 하나 만들어 달라는 ‘부자친구’들의 요구가 몰려든다. 브랜드 가치의 ‘환전’이라는 평소의 방침으로 보아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XJ220이 출시되기 두 달 전, 그는 신차 개발의 핵심멤버들을 불러 모아 프로젝트 R-9R(R-9의 road버전)을 시작한다. 재규어에게는 1990년의 새 규정에 맞춘 공력 테스트 작업으로 알렸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같은 이야기랄까.



◆ 르망 머신을 도로에 끌어낸다

같은 시기에 착수된 두 가지의 개발은 도로를 달리는 레이스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톰 워킨쇼는 처음부터 XJ220같이 호화로운 내장과 편의시설이 갖춰진 차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도로 주행 허가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장비는 추가하지만, 차의 근본적인 성격을 변화시킬 요구는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레이스카라는 것은 잘 달리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차다. 그리고 이런 차를 사려는 사람은 바로 이 ‘날 것’이 주는 달리기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순수함을 넘어 난폭함으로 치닫는 진동과 소음까지 고스란히 경험으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것이 슈퍼카에 대한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도 두 명이 탈 수 있는 공간은 필요했다. 뼈대가 된 XJR-9은 운전자 한명의 탑승을 전제로 설계된 레이스 머신이었다. XJR-9을 설계한 명개발자, 토니 사우스게이트(Tony Southgate)에게 탑승공간을 가능한 넓혀보라는 요구가 전달된다. 폭 75mm, 높이 40mm를 키운 것이 다였지만, 그나마 두 사람이 몸을 구겨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빠듯하게 마련된다.

그룹B 규정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던 XJ220과 달리, 이 차는 내구레이스를 달리는데 염두를 둔 차였다. 1990년 개정을 앞둔 WSC GT규정에 맞추어 길이 4.8미터, 폭 1.9미터, 높이 1.1미터에 맞춘 디자인이 새로 완성된다. 이 차에 맥라렌 F1을 연상하게 되는 실루엣이 담긴 것은, 단지 동시대의 차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냥 디자이너가 같았기 때문이다. 훗날 기아자동차 엘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M100을 끝으로 로터스를 퇴사한 피터 스티븐슨은 TWR이 발주한 R-9R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후 곧장 맥라렌으로 향한다. 그가 수석 디자이너로 고든 머레이와 함께 진행한 차가 바로 F1이다.



XJR-9에 외피를 바꿔 씌우는 초속성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TWR은 XJ220의 남은 개발과 생산일감까지 가져온다. 온갖 난항 속에서 XJ220의 개발이 진행되던 와중에, 톰 워킨쇼는 완성된 자신의 슈퍼카를 재규어의 경영진에게 들이민다. 황망해하는 경영진에게 그는 자신의 강력한 계획을 펼쳐 보인다.

1. 이런 차를 손에 넣으려는 고객은 당연히 그룹C 레이싱의 성과와 기술이 이어진 차를 기대한다. XJ220은 그게 없어서 이 난리 아닌가. 내 차는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킨다.

2. 페라리에게 배우자, 그들이 성공한 것은 더 팔 수 있음에도 늘 주문보다 적게 만들기 때문이다. 차는 많아봐야 50대 제작하며, 전액 선금 입금 받고 자재 준비 들어간다.

3. 이미 고객을 확보했다. 우리는 30여명의 확정 고객과 사전 접촉했으며 그들의 의사를 반영해 스펙과 스타일을 확정했다. 브루나이의 술탄 같은 고객이 말 바꿀 사람들로 보이나?

4. 미국 시판, 도로주행 관심 없다. 재규어의 레이싱 경험을 이 차와 같이 팔 거다. F1의 사전 레이스로 이 차들만 달리는 별개의 레이스 시리즈를 열겠다. 미디어 노출 장난 아닐 거다.

TWR의 제안은 매력 덩어리였다. 돈 떼일 걱정 없는데다가 광고효과까지 만들어 온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재규어 경영진은 안 그래도 XJ220의 노선 변화와 생산지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참이었다. XJ220은 미국시장의 배기와 소음 인증을 위해 엔진을 V6로 갈아치운 상황이었으며 개발의 난항이 예상되던 4륜구동도 빼 버린 뒤였다. 특히 재규어 레이싱의 심장으로 여겨지던 6리터급 12기통 엔진의 삭제는 예상 이상의 반발을 몰고 왔다. 계약금 넣고 기다리다가 스펙다운된 차에 불만이 폭발한 일부 고객은 소송도 불사할 분위기였다. 적어도 몇 명은 이 차를 보여주고 ‘VIP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했슴!’ 하고 빌면 못이기는 체 따라와 줄 것은 확실했다.

1990년 11월, F1에 서포트 레이스가 생긴다는 루머가 돌 무렵, XJR-15는 예고 없이 기습적으로 발표된다. XJ220의 시판 소식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는 꽤나 강렬한 뒤통수였다.



(2부에 계속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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