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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 천국 유럽마저... 소멸과 생존 기로에 선 경차들
기사입력 :[ 2019-06-05 09:43 ]
경차 가격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지난해 말, 피아트의 경차급 모델 판다가 유로 NCAP 충돌 테스트에서 별 등급을 한 개도 받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판다의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따랐다. 그런데 1.2 가솔린 동일 모델이 2011년에도 유로 NCAP 충돌 테스트를 한 바 있다. 당시에는 별 등급 5개 만점 중 4개를 받았다. 어떻게 같은 차가 7년 사이에 이렇게 다른 결과를 얻게 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돌 테스트 조건이 더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전에는 없던 각종 안전장치들이 평가 항목에 추가됐다. 2011년의 경우 '속도 어시스트' 유무만을 체크했으나 2018년에는 액티브 보닛, 보행자와 자전거에 대응하는 긴급 제동 장치 등이 있는지 없는지도 따졌다. 차선 보조 시스템까지 포함이 되면서 안전 옵션이 거의 적용 안 된 판다는 결국 낙제점을 받고 말았다.

판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경차 중 하나다. 수십 년 피아트를 이끌어 온 대표적인 모델이다. 다만 이 차는 저렴한 가격(1.2 가솔린 시작가 9,840유로)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만약 유로 NCAP이 요구하는 안전 사양을 모두 갖추게 된다면 가격은 훌쩍 뛸 게 뻔하고, 그렇게 된다면 판다는 경쟁력을 잃게 된다.

◆ 요구되는 안전 사양 그리고 발등의 불이 된 CO2 줄이기

판다의 충돌 테스트 얘기를 다시 꺼낸 것은 요즘 유럽에서 경차들이 위기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던 경차가 강화된 안전 기준에 비용 상승 고민을 안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산화탄소 감축이라는 더 거대한 벽 앞에 서게 됐다.

유럽은 2020년까지 자동차 회사들은 평균 CO2 배출량을 평균 95g/km에 맞춰야 한다. 2021년부터는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엄청난 과징금을 물게 된다. 액수가 너무 커 필사적으로 지키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미국의 경우이지만 강화된 배출가스 문제로 GM과 피아트크라이슬러는 모두 테슬라의 탄소 배출권을 수천억을 들여 구입하기도 했다. 테슬라 전기차 판매 대수를 GM과 FCA의 총판매량에 포함시켜 이산화탄소 배출량 평균을 떨어뜨리기 위함이다.

문제는 이게 시작일 뿐이라는 거다. 유럽의 경우 2025년까지 2021년 기준(95g/km)보다 15% 더 줄여야 하고, 2030년까지 CO2를 총 37.5%까지 감축해야 한다. 60g/km 이하로 만들어야 한다. EU 위원회와 유럽의회의 결정에 제조사들이 반발했지만 소용없었다. 자동차 회사들은 길게는 자율주행과 첨단 교통 인프라 구축 문제, 전기차 문제 등에 투자를 해야 하며, 당장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에 매달리게 됐다. 제조사들이 합종연횡하는 것도 이런 거대한 목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 비용 상승 감당 못 할 경차들

그렇다면 왜 경차가 CO2 감축으로 위기에 빠지게 된 걸까? 현재 유럽에서 판매 중인 경차급(A 세그먼트) 모델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5g/km 이하로 맞춘 모델은 손에 꼽힌다. 2030년까지 CO2 배출을 규제 안전선에 맞추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술에 대한 투자가 따라야 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며 자동차의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덩치가 큰 차는 그만큼 마진이 좋고 가격 상승에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 하지만 작은 차들은 조금만 금액이 차이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 심층 보도를 한 오토모티브 뉴스 유럽은 자동차마다 CO2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 비용으로 수천 유로의 부담을 안을 것이라는 보고서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오토모티브뉴스 유럽과 인터뷰를 가진 포드 유럽 대표 스티브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작은 차가 CO2 감축하기가 더 힘이 듭니다.” 역시 오토모티브뉴스 유럽과 인터뷰를 한 푸조시트로엥 유럽 책임자 Maxime Picat는 “제조사들이 안전과 배기가스 문제 해결을 위해 추가해야 하는 모든 기술로 인해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해하기 쉽게 스즈키 셀레리오 같은 경차를 예로 들어 보자. 셀레리오의 기본 모델은 1.0리터 가솔린 엔진이 들어간 것으로 기본가는 9,690유로 수준이다. 그런데 이산화탄소 평균 배출량은 99g/km로 당장 내년까지 이를 기준치인 95g/km 이하로 떨어뜨려야 한다. 그래서 스즈키 측은 실린더에 듀얼 제트 분사 방식을 적용한 셀레리오 1.0 에코플러스 트림을 추가했다. 같은 엔진에 연비 효율을 올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84g/km까지 낮췄다. 대신 가격은 11,900유로로 2천 유로 이상이 올랐다.



이렇게 가격을 올려서라도 기준을 지키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지만 아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단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오펠의 경차급 모델 카를과 아담이 CO2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단종될 수 있다고 오토모티브 뉴스 유럽은 전했다. 또 포드 역시 그들의 오랜 모델 Ka+를 유럽에서 판매 중단할 것이라는 관계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폭스바겐 역시 경차 UP에서 엔진을 빼버릴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자회사 스코다는 UP과 같은 플랫폼에서 나온 시티고의 전기차 버전인 ‘시티고-e iV’를 공개하며 폭스바겐 그룹의 경차 전략 변화를 예고했다. 피아트 역시 ‘피아트 500’을 전기차로 내놓을 것으로 보이며, 다임러 그룹 또한 스마트를 전기차로만 내놓기로 하고 중국의 지리차와 함께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물론 생산은 중국에서 이뤄진다.



◆ 그럼에도 경차는 소멸하지 않는다

결국 경차들은 일부가 사라지거나 전기차로의 전환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건 아니다. 전기 경차의 가격을 과연 시장이 수용할 수준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수백만 원 이상 더 비싼 경차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정부나 지자체가 보조금을 준다고 해도 지금 수준의 경차 가격 경쟁력을 갖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분석가들은 이런 혼란과 위기 속에서도 경차가 소멸하기 보다는 조정기를 거쳐 계속 시장에 남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의 경차 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제조사들은 어떻게든 가격 경쟁력을 갖추려 노력할 것이라고 내다 본 것이다.

서민들의 발이 되어준 경차가 점점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거나 사라질 거라는 소문에 휩싸인 경차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경차 소멸론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기보다는 그럼에도 버티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전기 경차이든 무엇이 됐든.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한 거 같다. 가격은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는 점.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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