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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망한 줄만 알았던 사브, 아직도 숨이 붙어 있었다
기사입력 :[ 2019-06-21 14:14 ]


사라져 버린 그 이름, 사브 멸망기 (2)

(1부에서 이어집니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 두 번째 배지 엔지니어링, 9-7X

SUV가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GM은 자동차의 대세가 SUV로 옮겨가고 있음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사브는 특히 집중해야 할 브랜드였다. 사브 오너의 30%가 SUV로 옮겨 타고 있는 이상, 사브 SUV는 가능한 빨리 만들어야 마땅한 제품이었던 것. 하지만 GM은 공들여 차를 만드는 대신 그냥 남의 차를 가져다 사브 엠블럼만 붙이는 ‘배지 엔지니어링(ㅠbadge engineering)’의 타성에서 벗어날 생각을 안했다. 스바루의 신형 SUV를 배지 엔지니어링할 방법이 사라지자 이걸 해결할 방법이랍시고 기획한 것은 또 다른 배지 엔지니어링이었다.

사브 최초의 SUV, 9-7X는 사실은 올즈모빌(Oldsmobile) 브라바다를 그대로 가져온 차였다. 2004년 GM의 브랜드인 올즈모빌(Oldsmobile)이 문을 닫자, 단종된 브랜드의 SUV를 냉큼 가져다 앞모습과 내장을 바꾼 것이다. 기반이 된 GMT360플랫폼은 GM의 다양한 브랜드들이 트럭과 SUV제작에 나눠 쓰려 만든 내수전용 프레임바디로, 하나같이 전장이 5미터나 되는 미국 전용 모델들이었다. GM의 6개 브랜드에서 10가지나 되는 차가 이 프레임에서 만들어졌다. 도어나 윈드실드, 바디쉘까지 모조리 공유했기 때문에 앞모습을 빼면 구분조차 쉽지 않았다. 직렬6기통 4.2리터와 5.3리터 8기통 두 가지 옵션에, 매칭된 4단 변속기까지 모두 똑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7X는 ‘야금야금’ 팔렸다. 이딴 걸 왜 5,000달러나 더 내고 사냐며 화를 내던 평론가들조차, 사브가 새로 손본 서스펜션과 고급스러운 내장재만큼은 후한 점수를 줬고, 이걸 좋게 본 고객도 있었으니까.

5년 동안 8만5,000여대의 9-7X가 팔렸다. 적지 않은 수량처럼 들리지만, 이건 GM의 ‘중형(?)’ SUV가 미국에서 갖는 입지를 모를 때 이야기다. 동기간 ‘형제차’ 인 쉐보레 트레일 블레이저가 무려 150만대나 팔려나갈 동안 도달한 숫자이기 때문. 하지만 GM이 9-7X에 걸었던 기대도 딱 이 정도였다. 9-7X는 상황이 만들어낸 임시 ‘땜빵’ 같은 차였다. 올즈모빌이 사라지며 생긴 생산 공백을 메우고, 급한 대로 사브 딜러에게 쥐어줄 SUV로 역할을 해주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고객은 안중에도 없는 놀라운 사고방식이었다.

신형 세타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사브의 첫 독자모델 SUV, 9-4X의 개발이 시작되지만, 형제차인 캐딜락 SRX 2세대의 생산준비를 이유로 발매는 2010년으로 밀린다. 색깔 없는 상품, 코어 팬의 이탈에 신차 부족이 거듭되며 연간 판매량이 9만대 수준까지 추락한다. 브랜드의 존속을 염려해야 할 숫자였지만, 희망은 있었다. 완전 신모델 9-5와 9-4X가 나올 때까지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2009년이 되었고 GM이 망했다.



◆ 사브 몰락의 방아쇠 당긴 미국 금융위기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위기는 미국의 경제를 만신창이로 몰아간다. 금융사업부가 나서서 주택 담보대출과 차량 융자를 연결하고, 각종 파생상품으로 깊숙이 개입했던 GM은 순식간에 자금 흐름이 막히며 존립을 위협받는 상황까지 몰렸다. GM은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지만 상원에서 부결되며 파산을 신청하고, 정부의 개입으로 겨우 몰락만 면한 채 미국 정부 소유의 공기업이 된다. 칼바람이 휘몰아쳤다.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실적이 안나오는 산하브랜드는 바로 숙청당했다. 사브 또한 막대한 적자를 끼고 있었지만, GM은 문을 닫는 대신 시장에 내 놓는다. 사브만큼은 제 돈을 받고 팔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브랜드 파워는 물론이고, 자본과 기술을 잔뜩 부어넣은 새 차 발매가 목전에 다다른 회사를 사려 24곳이나 되는 잠재 구매자가 나타났다. 이들과 GM, 미국정부, 연방법원, 유럽투자은행, 스웨덴 정부, 그리고 사브에 돈을 물린 스웨덴 채무국(이들 모두가 이해당사자였다) 까지 한데 어울려 이해득실을 따지는 일대 난장판이 벌어진다. 협상이 실타래처럼 엉켜만 가자, GM은 2009년 중 매각이 안되면 사브를 그냥 문닫아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지경에 이른다. 셀 수 없는 교섭과 결렬이 오간 끝에, 네델란드의 슈퍼카회사 스파이커 (Spyker NV)에 사브의 경영권이 넘어간다. 사브를 통으로 손에 넣는데 실패한 베이징자동차(BAIC)는 대신 9-3과 구형 9-5의 지적재산권, 그리고 구형 9-5의 생산 설비만 뚝 잘라 갖기로 한다. 2010년 2월 사브-스파이커 오토모빌스가 본격적으로 출범한다.



◆ 두 번째 파산

감당할 능력 없이 사브를 업은 스파이커는 바로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현금이 고갈되고, 부품대금을 받지 못한 회사들이 납품을 거부하자 공장이 멈춘다. 중국제조사 몇몇이 사브-스파이커에 접근했고, 합작투자계획이 나오자 바로 GM이 제동을 걸었다. GM이 가장 조건이 좋았던 BAIC로의 매각을 막았던 이유, GM의 최신 기술과 노하우가 그대로 중국 제조사에 넘어가는 일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합작을 막을 수 없게 되자, GM은 ‘자사 주주의 보호’를 위해 신형 사브에 투입된 모든 형태의 라이선스 계약을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사브-스파이커는 계약 위반으로 GM을 고소한다. 법원이 GM의 손을 들어주는 최종판결이 나온 것은 사브-스파이커가 망하고 2년 뒤의 일이였다. 2011년 12월 19일, 파산 시점에서 사브-스파이커의 부채는 15억달러(약 1조8000억원)에 달했다.



◆ 세 번째 파산, 그리고…

두 번째 파산 뒤에도 사브는 죽고 살기를 반복한다. 2012년, 스웨덴 채무국과 중국투자자들이 만든 회사, National Electric Vehicle Sweden AB(이하 NEVS)가 사브의 자산을 사들인 뒤 9-3 기반의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하필이면 구형차를 바탕으로 한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GM은 사브의 파산 뒤에도 철저히 기술 유출을 봉쇄했고. 9-5와 9-4X가 다시 만들어질 여지를 막아버렸다. 엔진이 없는 9-3이 사실상 NEVS가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차였다.

2014년, 지지부진한 개발을 이어가던 NEVS가 또 파산한다. 재정불안이 계속되자, 사브 브랜드의 권리를 쥔 사브AB(1960년대 자동차와 분리된 별도의 항공우주기업. 전투기를 만드는 곳이 이쪽이다)가 NEVS의 브랜드 라이센스를 취소해 버린다. NEVS가 더 이상 사브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이유다.

사브던 NEVS던, 당분간 이들의 신형차를 국내에서 만나볼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그들의 유산은 전혀 예상 못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 와 있다. 9-3과 9-5의 지적재산권, 그리고 9-5의 양산설비를 사간 BAIC는 고유모델 제작에 이들을 쏠쏠하게 활용했고. 한국에도 그 결과물 중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다.



고전을 이어가던 NEVS가 동력을 얻은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2019년 1월, 중국의 부동산 재벌 헝다(恒大/Evergrande)그룹이 NEVS의 지분 51%를 인수한다. 중국 전기차 회사 패러데이 퓨처에 대규모 투자를 벌였다 실패한지 6개월 만에 다른 전기차 회사를 1조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사들인 것이다. 2019년 내 신차를 시판하는 것은 물론, 사브의 이름까지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포부마저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투자유치에도 불구하고 NEVS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들이 전기차를 시판하겠다고 한지도 벌써 7년째다. 닥치는 대로 사다 붙여준 전기차 기술회사들이 손발을 맞추지 못한 채 삐걱거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올 6월에 차를 시판하겠다던 약속은 이미 물건너 갔다. 전기차 컨버젼이 이루어졌다 해도 2003년 시판된 9-3을 최신 전기차로 둔갑시켜 내보내는 ‘노인학대’도 여전하다.

멸망한 줄만 알았던 사브는 지난 10년간 부활과 사망을 반복하며 아직도 숨이 붙어 있다. 전기차 백가쟁명의 시대, 과연 사브는 자신의 이름을 다시 각인시킬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원래의 이름이라도 찾아올 수 있을까? 그 많은 돈에도 불구하고 왜 이 회사의 미래는 어둡게 보이기만 할까?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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