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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911을 꼴 보기 싫어했던 포르쉐 수장의 남다른 선택
기사입력 :[ 2019-07-17 15:17 ]


현대적인 FR 스포츠카의 표준을 제시한 포르쉐 928 (1)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1971년, 포르쉐에는 커다란 변화가 온다. 사업분야 별로 흩어져 있던 세 회사를 합치고 공개 유한회사(AG)로 전환한 것이다. 회사가 커지면서 더 이상의 ‘가족경영’ 방식이 통하지 않으리라 판단한 창업자의 아들, 페리 포르쉐(Ferry Porsche)는 전문경영인을 들이고 자신은 이사회 의장으로 한발 물러서는 체제 변화까지 감행한다. 엔진 부품회사인 고엣체(Goetze)의 수장으로 있다가 20년 만에 기술 총책임자로 불려온 에른스트 푸어만 (Ernst Fuhrmann)이 포르쉐의 사장으로 취임한다. 변화의 갈림길에서 회사의 도약시킬 중책을 받은 그의 첫 일성은 뜻밖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911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그는 경영자였지만, 전문 엔지니어였으며, 그간의 성취만큼이나 자기 확신이 엄청난 사람이었다. 초기 포르쉐의 명성을 이끈 일명 푸어만 엔진- type-547의 개발자였지만, 1950년대에 포르쉐를 박차고 나간 뒤에는 엔진 제작사였던 굇체(Geotze- 나중에 페데랄-모굴에 합병)에서 승승장구해 최고 책임자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주 고객사였던 메르세데스 벤츠의 자동차를 높이 샀지만, 911은 좋아하지 않았다. 현대적인 자동차 만들기 방식에서 911은 이질적인 자기고집만 가득한 차였다. 대표이사의 직무수행을 위해 받은 ‘회사차’ 911조차 그는 꼴 보기 싫어했다.

911로는 안 된다는 푸어만의 생각은 그저 편견에서 비롯된 아집이 아니었다. 외적인 이유도 충분했다. 356으로 탄생해 911로 본격적인 부흥기를 맞이한 회사는 1970년대에 이르러 완전히 독자적인 스포츠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911로는 넓어지는 시장을 상대하기 역부족이었다. 폭스바겐과의 공조가 삐그덕 거리기는 했지만, 겨우 완성된 미드십 쿠페 914로 하위 시장은 메워진 상태였다.



문제는 911 위로 형성된 시장이었다. 재규어 E타입과 애스턴 마틴, 페라리의 12 기통 같은 프리미엄 스포츠가 장르화된 시장의 꼭대기에 자리를 잡자,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전통 프리미엄 브랜드까지 뛰어들 채비를 시작했다. 6시리즈와 SL클래스, 이들의 품질과 달리기가 어떤 수준일지는 차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방도를 찾아야 했다.



사이즈와 엔진은 다들 제각각이었지만, 이들 프리미엄 스포츠모델들에게는 한결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앞엔진 후륜구동(Front Engine Rear Drive, 이하 FR.) 엔진을 뒤차축 뒤에 올려놓은(Rear Engine Rear Drive, 이하 RR) 911로는 이들과 같은 조종성과 승차공간을 양립시킬 방법이 묘연했다. 여기에 스포츠카의 최대시장 미국의 상황까지 RR의 입지를 크게 좁혀 버렸다.

* RR방식의 다른 차 쉐보레 코르베어 (Chevrolet Corvair)가 자꾸 오버스티어와 전복사고를 일으키자 RR방식 자체를 금지시켜야 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든다. 이건 사실 코르베어의 스윙 액슬 서스펜션과 기다란 오버행이 낳은 문제였지만, 한번 삐딱선을 탄 여론은 시민운동으로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차를 아예 못팔게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포르쉐 경영진의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 RR의 핸들링 응답성은 911의 매력이었지만, 미국시장에서는 지나치게 예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911을 사지 않은 미국 고객의 이유 중 하나는 차가 너무 휙휙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인들에게 차는 좀 느긋하게 움직이는 게 좋다는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것.

* 환경문제로 인한 배기 규제가 시작된다. RR의 좁은 엔진 공간속에 촉매와 배기 재순환장치를 밀어 넣는 일은 기술적으로 난항의 연속이었다.

새 사장의 주도로 면밀한 사전 검토가 시작되었고, 검토 끝에 FR방식의 새 차 만들기가 결정된다. 이런 차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포르쉐에게는 문제이긴 했다. FR도 수냉식 엔진도, 전에는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



◆ 포르쉐의 첫 수냉식, 첫 8기통, 첫 FR

앞엔진 뒷바퀴 구동방식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그 접근 방법은 기존의 방식과는 사뭇 달랐다. 수냉방식, 뱅크각 90도의 V형 8 기통 OHC, 알루미늄 재질의 엔진은 다른 회사라면 익숙한 방법이었겠지만 공랭식 6기통이 전부였던 포르쉐는 모조리 새로 만들어야 했다. 기존의 수평대향 6기통과 부품을 공유할 방도는 없었지만, 엔진의 보어와 압축비가 똑같았던 것은 역시 익숙한 방법을 따랐기 때문.

초기에는 배기량을 3.9리터로 잡았지만, 당대의 표준 벤츠의 최대 사이즈 엔진을 따라 결국 4.5리터로 확정된다. 초기 출력은 240마력을 냈지만, 촉매와 배기 재순환 장치(EGR)를 단 미국사양 차는 219마력으로 출력이 떨어졌다.

특이한 것은 변속기의 위치였다. 엔진다음으로 무거운 중량물인 변속기는 아예 뒤차축에 놓았다. 엔진과 변속기 사이는 고속 회전하는 샤프트를 내장한 토크튜브로 이어져 있는 트랜스 액슬방식이 채용된 것이다. 차량 중량의 이상적인 전후 배분 외에도 파워트레인 자체가 강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구조물로 기능하는 이상적인 방식이였다. 변속기는 자체 제작한 5 단 수동, 또는 메르세데스 벤츠제 3 단 자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자동변속기 스포츠카가 드문 시절이었지만, 포르쉐는 자신들의 ‘플래그십’이 그랜드 투어러(GT)의 위치에 자리잡기를 원했다. 그리고 실제 928의 판매 대다수는 자동변속기였다.




◆ 현대적인 FR 스포츠카의 표준을 제시하다.

928은 트랜스액슬은 물론 현대 스포츠카의 여러 기술이 최초로 구현된 차이기도 했다. 928은 경량화를 목표로 차체의 주요 부분(도어, 본넷, 펜더) 부를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첫 번째 차였으며, 뒷바퀴의 방향을 바꾸어 운동성을 향상시키는 개념, 4륜조향(4 Wheel Steering, 4WS)이 최초로 적용된 차기기도 했다. 코너링 중에 걸린 횡하중에 의해 외부 후륜의 토값이 기계적으로 최대 2도까지 변하며 안정된 코너링을 구현하는 "바이사흐 액슬" (Weissach Axle – 바이사흐는 포르쉐의 개발센터가 있던 곳)을 탑재한 것이다.

이후 등장할 다른 회사의 4WS에 큰 영향을 끼쳤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4WS의 구현을 위해 세미트레일링 서스펜션의 컨트롤 암을 링크로 분해한 뒤 지지점을 분산시킨 리어 서스펜션은 뒷날 메르세데스 벤츠 190E가 ‘멀티링크’라는 이름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때는 1970년대, 쐐기 형태의 각진 보디가 대 유행하던 시대였지만, 928의 디자인은 이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명백한 후륜구동 스포츠카를 떠올릴 비율 속에 초창기 포르쉐부터 이어져 온 전통인 ‘공기를 거스르지 않는’ 디자인은 풍동 테스트를 통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후 수십년 동안 현대적인 포르쉐를 기준하는 형태를 담는 작업이었다.



포르쉐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려 한 노력은 원형 헤드라이트에도 담겨 있었다. 렌즈가 노출되어 있어 전혀 팝업처럼 보이지 않지만, 막상 라이트를 점등하면 앞으로 눈이 튀어나온 것처럼 올라왔다. 바디와 범퍼를 한 몸처럼 이어 붙인 일체형 범퍼는 당시에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시대는 1970년대, 플라스틱 범퍼와 알루미늄 패널, 강철표면에 모두 점착되는 페인트는 나오지 않았을 때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페인트를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인테리어는 2인 탑승을 원조로 2명이 추가 탑승 가능한 2+2구조를 채택했다. 계기판 전체가 스티어링휠과 함께 틸팅되며 시인성을 확보하는 시스템도 최초였다. T 자형으로 완만하게 탑승자를 감싸는 대시 보드 형상은 나중에 토요타의 소아라, 닛산 페어 레이디 Z같은 일본 스포츠카의 인테리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2부에 계속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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