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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공룡’ 조롱받던 독일 전기차의 무서운 변신
기사입력 :[ 2019-07-19 09:45 ]
전기차 기세 뜨거운 독일, 노르웨이까지 추월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독일 전기차 시장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는 2020년까지 백만 대의 전기차가 돌아다니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지만 현실은 공약을 비웃기라도 하듯 냉랭했다. 전기차 판매가 어느 정도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누적 전기차는 10만 대가 겨우 넘는 수준을 보였다. 메르켈 정부는 공약 달성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전기차 보조금 제도 등, 나름의 다양한 유인책을 통해 시장 변화를 꾀했지만 쉽게 통하지 않았다. 보조금 액수만 봐도 우리나라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순수 전기차의 경우 4천 유로,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환산해도 500만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자동차 제조사가 보조금의 절반을 보조하는 등 전기차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업계가 같이 노력했지만 독일 운전자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디젤 게이트가 터지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문제가 부각되는 등 분위기가 전기차에 유리하게 바뀌며 판매량이 늘기는 했으나 신차 시장의 1%대 수준이었다. 독일 언론은 중앙 정부와 지자체의 인프라 구축이 너무 늦다며 비판을 가했고, 보수적이고 변화에 더딘 독일 특유의 정서가 엔진 사랑과 맞물려 벽을 깨기 쉽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런데 최근 2년, 눈에 띄는 변화를 맞았다.



◆ 유럽 전기차 천국인 노르웨이 추월

최근 독일의 자동차 시장 분석 기관인 센터 오브 오토모티브 매니지먼트(이하 CAM)는 2019년 상반기 유럽 주요 국가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포함) 판매량 비교 자료를 공개했다. CAM에 따르면 독일은 2019년 상반기 4만 8천 대의 전기차가 신차로 등록됐다. 2018년 상반기(3만 4천 대)와 비교해 41%의 성장이었다. 같은 기간 4만 4천 대가 팔린 노르웨이를 판매량에서 앞지른 결과였다.

노르웨이는 매년 유럽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가 팔리던 곳이고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긴, 전기차의 천국 같은 곳이다. 이런 노르웨이를 판매량에서 따라잡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독일에서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독일의 신차 시장과 노르웨이 신차 시장 규모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직접 비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 독일의 빠른 변화는 분명 의미가 있다.



◆ 다양한 모델 등장, 빠른 충전 인프라 구축

이처럼 전기차 시장이 독일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판매되는 전기차 모델이 다양해졌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2018년 이후 판매되는 전기차만 50종이 넘는다. 1억이 넘는 고가의 배터리 전기차부터 비교적 가격 부담이 없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차 등이 계속 시장에 등장했고, 선택지가 늘며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다.

충전기 설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진행하는 공공 충전기는 현재 독일 전역에 1만 7천 개 이상이 있다. 여기에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은 고성능 충전기 보급 확대를 위해 아이오니티라는 합작 회사를 설립했다. 올해 100개가 설치됐고 내년까지 유럽 곳곳에 400개 이상의 고출력 충전기 설치를 끝낼 계획이다. BMW와 포르쉐는 패스트차지라는 역시 초급속 충전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테슬라 슈퍼차저보다 더 빠르다고 한다.



◆ 배터리 공장 속속 공사 시작, 라이벌과도 손잡기 마다하지 않아

독일 제조사들은 전기차에 미래가 있다고 보고 있다. 폭스바겐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전기차 브랜드로의 전환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2030년까지 30조 원 이상을 전기차를 위해 투자하기로 했다. 그들의 모든 역량을 전기차에 몰아넣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차 폭스바겐의 이런 변화, 선언은 독일 국민에게 제법 큰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메시지는 폭스바겐만 보낸 게 아니다. 벤츠와 BMW, 아우디 등도 전기차를 매년 몇 종씩 내놓을 계획이다. 테슬라로 대표되는 고가의 전기차 시장을 자신들이 주도하겠다는 목표로 뛰고 있다. 벤츠와 폭스바겐은 모두 이런 계획을 위해 자체적으로 수급이 가능한 배터리 공장을 만들려 한다. 이미 짓고 있는 곳도 있다.

변화에는 돈이 드는 법. 전기차를 위한 투자비 부담은 돈 많은 독일 자동차 회사들에도 부담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감하게 손을 잡기로 했다. 폭스바겐은 포드와 손을 잡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장에 함께 대응하기로 했으며, BMW와 벤츠와 같은 100년 라이벌도 같은 이유로 손을 잡기로 했다. 아우디 역시 BMW, 벤츠의 협력에 참여하기를 희망했다.



◆ 환경 대응, 그리고 늦었다는 위기감에 대한 공감

그동안 독일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시대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 결과 주도권을 놓쳤고, 중국과 한국, 일본 등 아시아의 전기차 공략과 계획에 불안해했다. ‘테슬라’라는 작은 전기차 회사가 고가의 전기차 시장을 포식하는 모습을 포르쉐를 포함한 독일 프리미엄 4사는 속절없이 지켜만 봐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독일 자동차 업계는 결과물을 하나둘 보여주기 시작했고, 가격이면 가격, 성능이면 성능 면에서 뒤지지 않는 전기차들을 쏟아낼 준비를 다 끝마쳤다.



EU는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에 강하게 대응 중이다. 과다 배출에 따른 천문학적 벌금이 제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살길을 찾아야 한다. 특히 큰 차, 고성능 차 판매가 핵심인 독일 제조사들의 위기감이 크다. 그리고 현재로는 배터리 전기차가 가장 현실적 대안이다.

뿐만 아니라 독일인들은 비교적 환경 문제에 관심이 높다. 또한 이들은 자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자부심도 높다. 실제 자동차는 독일 경제의 가장 큰 버팀목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이유들이 뒤섞이며 전기차 시장이 힘을 얻게 된 것이 2019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이번 상반기 전기차 판매량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이런 독일의 전기차 성장은 계속될까? 독일 소비자와 업계, 그리고 정부 모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어떻게 해서든 전기차 성장세는 이뤄질 것이다. 변화에 둔한 사람들이고, 또 자동차 업계 또한 늦게 대응을 한 면이 있었지만 마치 니트로 부스터 스위치를 켠 것처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매우 빠르고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독일 전기차 시장이 성장할 수도 있다. 전기차에 있어서 잠자던 공룡이라 조롱받던 독일 회사들이 지금부터 어떻게 판을 꾸려갈지, 흥미롭게 지켜볼 부분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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