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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BMW 떠나 망해가던 포르쉐로 돌아온 이 남자
기사입력 :[ 2019-08-23 14:21 ]


20년은 빨랐을지도 모를 파나메라, 포르쉐 989 (1)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인생은 우연히 진행된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자신의 인생길을 확정지었다고 한다. 과연 그러니까 공자인 것이고,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열다섯 살로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것은, 그냥 우왕좌왕하고 있는 아이다. 거대한 성취를 남긴 위인들이라고 해도 그 나이에는 별다르지 않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소년에게 길을 터주는 건 사회의 몫이다. 그리고 독일은 그걸 손꼽히게 잘 하는 나라다. 울리히 베츠(Ulrich Bez) 같은 사람의 삶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1943년, 2차 대전이 한참 벌어지던 시절에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고교를 졸업할 무렵에도 인생의 항로를 정하지 못한 것은 그 시절 독일아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별 생각 없이 친구를 따라 갔고, 공장에서 엔진 헤드의 밸브시트를 다듬는 견습생으로 인생의 첫 직업을 시작한다. 보통은 여기서 인생의 방향이 대충 정해지기 마련이지만, 이미 말했듯이 여기는 독일이다. 밸브가 닿는 자리를 매끈하게 갈아내는 단순한 일임에도 아이는 열심히 했고, 6개월 만에 솜씨를 인정받는다.

덕분에 좀 특이한 일이 주어졌다. 레이스 엔진의 밸브시트 작업을 맡은 것이다. 그것은 포르쉐의 F1머신, 804의 엔진이었다. 작업의 결과를 확인하러 불려간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F1 레이스카의 질주를 목격한다. 막연하던 인생의 방향이 또렷해진 순간이었다. 1962년, 레이스카에 공기역학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였다. 아이는 공기역학을 ‘마스터’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슈투트가르트 공과대학에 들어갔다.

다운포스에 대한 졸업 논문을 완성할 때쯤 청년이 된 울리히 베츠는 다시 포르쉐에 찾아가 면접을 본다. 자신의 논문이 실제로 통할지 한번 보고 싶다는 당찬 요구는 연구소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연구부서의 직원으로 채용되었고, 이후 10년을 포르쉐에서 근무한다. 포르쉐와의 두 번째 인연이었다. 섀시와 동역학, 레이싱 부서를 거치며 일을 배웠고, 주경야독으로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일단 목표가 정해진 뒤부터, 그는 한결같이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울리히 베츠는 포르쉐를 떠나 BMW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젊었고, 자신만의 결과물을 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BMW의 선행기술 연구조직인 BMW Technik의 초대 수장이 된 그는 BMW가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 한 신기술을 속속 제품화한다. 신세대 6기통과 8기통 엔진,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실체화했고, 환경테스트가 가능한 저소음 풍동을 완공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가장 인상 깊은 결과물이라면 단연 BMW Z1이였다. 플라스틱 바디패널을 가진 이 2시터 쿠페는 당대 BMW의 소재, 섀시, 공기역학 기술을 응축시킨 결정체로 각광받았다.



◆ 그리고 다시 포르쉐로

울리히 베츠가 승승장구하고 있을 동안, 그의 친정 포르쉐는 끝이 안 보이는 추락을 이어가고 있었다. 라인업은 1970년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지만, 아무도 그걸 걷어낼 생각을 못했다. 924와 928은 막대한 투자를 통해 만들어낸 신세대 포르쉐였다. 단지 우매한 소비자들이 그걸 몰라줄 뿐이라 생각한 경영진은 이 구태한 라인업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1985년이 되자 딜러망까지 붕괴하기 시작한다. 없는 여력을 쥐어짜 만든 944와 964까지 냉담한 평가를 받자, 포르쉐는 막다른 코너에 몰린다. 뒤늦게 운영진을 모두 교체한 뒤, 흩어진 포르쉐의 옛 식구들에게 SOS를 친다. 울리히 베츠에게도 다시 돌아올 용의를 타진하는 기별이 갔다. 연락 받은 지 한 달 뒤 그는 포르쉐의 연구이사가 된다. 세 번째 복귀였다.



◆ 993의 아버지

그가 취임하자마자 한 일은 964의 후속 모델 개발에 착수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클래식 911의 당당한 계보로 추앙받는 차지만, 1988년 당시의 964는 최악의 911로 거론되고 있었다. 차라리 전작 930이 훨씬 낫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것은 베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스웨덴의 눈길 테스트에서 직접 스티어링 휠을 잡은 그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964가 되며 처음 도입된 4륜구동모델 카레라4는 비교대상인 메르세데스 E 4WD보다도 느렸다. 주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변속기가 박살이 난 것이다. 그에게 포르쉐는 곧 911이였고, 911은 당연히 최고여야 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회사는 골병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이사회를 거세게 압박해 911의 재개발을 위한 예산을 따낸 뒤, BWM Z1을 함께 만들었던 디자이너 함 리가이(Harm Lagaaij)를 불러들인다. 리가이에게 떨어진 일은 디자인 수정 정도가 아니었다. 포르쉐가 쓸 향후 20년의 이미지를 정의하는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 제시가 임무로 떨어진 것이다.



개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지출도 줄여야 했다. 베츠는 비용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레이스 프로그램을 정리했다. 내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르망 프로그램을 전면 폐지하고 미국 CART 레이스도 접었다. 남긴 것은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홍보도 되는 944기반의 원메이크 레이스 정도. 이렇게 마련한 재원으로 그는 또다른 라인업을 준비한다. 911 하나만 가지고 회사를 지탱할 방도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만들기 시작한 오리지널 포르쉐는 바로 ‘4 도어 패밀리 스포츠카’였다.

(2부에 계속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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