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를 아는 자만이 벤츠 G클래스를 만끽할지니
2017-05-01 김종훈
스포츠카 뺨치는 고출력 뿜으며 전장 누비는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김종훈의 자동차 페티시]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타고 대관령에 오른 적이 있다. 2012년이 저물 즈음이었다. 신형 G클래스를 출시할 때 열린 행사였다. 눈이 쌓인 산을, 얼음이 떠다니는 물을, 푹 파인 고랑을 묵묵히 지나갔다. 대관령 꼭대기에서 칼바람 맞으며 기념사진도 찍었다. 도열한 G클래스 10여 대와 함께한 그 순간, 행사였는데도 왠지 뭉클했다. 독특한 경험이었다.
그 경험과 감정은 복합적인 결과다. 한겨울에 산에 올라갔다는 점, (인위적으로 만들긴 했지만) 험한 길을 주파했다는 점, 결국 정상에 섰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과정을 G클래스가 함께했다는 점. 이후 도심에서 G클래스를 다시 시승했다. 눈 덮인 대관령 대신 마천루 사이를 달렸다. 차와 차 사이, 수많은 신호와 신호 사이에서도 G클래스는 독특한 감흥을 선사했다.
G클래스는 그냥 오프로더가 아니다. 정통 오프로더인 지프 랭글러와도 다르다. 가격을 견줄 만한 SUV인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와도 다르다. 둘의 성격이 다 들어 있으면서도, 다른 가치까지 끌어와 품는다. G클래스가 줄 수 있는 감흥은 꽤 다채롭다. 정통 오프로더이면서 고급 자동차의 위용을 뽐낸다. 그러면서 클래식 자동차 같은 가치도 지닌다. 아직 더 있다. AMG 배지를 달면 고성능 자동차다운 짜릿함도 선사한다. AMG만의 아름다운 사운드도 들을 수 있다.
G클래스는 자동차 한 대가 줄 수 있는 감흥 이상을 품는다. 그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단어로 ‘풍류’가 떠오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풍류를 이렇게 정의한다. ‘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 ‘일’이란 단어 대신 자동차를 붙이면 G클래스를 설명하는 말이 아닐까. 그냥 SUV라고 하기에, 그냥 메르데세스-벤츠라고 하기에, 그냥 AMG라고 하기에 G클래스가 걸친 영역이 꽤 넓다. 또한 각 영역에서 독특한 위치로 군림한다.
G클래스는 애초 군수용으로 개발된 자동차다. 길이든 어디든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조건이 따른다. 게다가 G클래스는 군수용과 내수용 차이가 별로 없다. 그 말은 G클래스의 오프로드 능력을 짐작케 한다. 자동차는 원초적으로 어디론가 이동하는 수단이다. 이때 어디로든, 특히 자연 속으로 이동할 수 있는 오프로더 특징은 즐길 영역을 확대한다. G클래스는 지금도 생산량 80%가 전 세계 미개척지와 전장을 누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벤츠라는 고급차 속에 껴 있다.
정통 오프로더답게 외관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G클래스는 2012년 2세대로 바뀌었다. 바뀌었다고 말했지만, 외관은 살짝 다듬은 수준이다. 1979년 출시한 이후로 박스형 차체를 유지했다. 고전적 원형 전조등도 그대로다. 물론 엔진이나 인테리어, 편의장치는 시대에 맞게 보완했다. 현대식 엔진과 기술력으로 복원한 클래식 모델을 타는 기분이랄까. 철커덕, 하고 닫히는 문을 닫아보면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문을 열고 닫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보통 앞서 말한 두 가지 특성이 있으면 달리기 성능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보다 길이 아닌 곳을 가는 능력, 클래식한 외관을 음미하는 재미가 돋보이니까. 하지만 G클래스는 달리기 성능도 품에 넣는다. AMG 모델은 V8 5.5리터 트윈 터보 가솔린 엔진을 품었다. 제원만 보면 여느 스포츠카 못지않다. 571마력과 77.5kg·m라는 토크를 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또 G클래스는 누가 봐도 정통 오프로더다. 이미지가 충돌한다. 그러든 말든 각진 차체 안에 우겨넣는다. 그게 또 어울린다. 물론 AMG G 63으로 고갯길 레이싱을 하진 않을 테다. 하지만 직선에서 광포하게 달려가는 짜릿함은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스포츠카 뺨치게 고출력 뿜어내며 달리는 SUV는 몇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G클래스만큼 클래식한 외관은 없다. 다시 G클래스는 자기만의 흐름으로 경쟁자를 따돌린다.
물론 시각에 따라 G클래스의 단점만 보일 수 있다. 일반 모델이 1억원, AMG 모델은 2억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 가장 걸린다. 이 가격대 자동차로 험로를 거리낌 없이 달릴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게다가 G클래스 실내는 넓지 않다. 생각보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의외로 좁은 실내는 많은 이들을 찡그리게 한다. 그렇지만 시각 문제다. 이 단점 또한 G클래스를 독특한 위치에 올려놓은 요소일지도 모른다. 풍류를 즐기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아, 그럼에도 즐겨야 풍류이려나. 역시 G클래스는 일반적인 기준을 거부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