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라이벌에도 꿀리지 않는 스파크의 성숙한 하체
2017-06-08 김종훈
앉아보면 사랑에 빠질 더 넥스트 스파크의 하체
[김종훈의 자동차 페티시] 마티즈 1세대를 타고 다닌 적이 있다. 조약돌 같은 차체에 개구리눈 같은 전조등을 달았다. 한국에서 탔지만, 유럽 시골길 운전하듯 즐거웠다. 물론 고갯길에선 교통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힘이 없었지만. 절대 출력이 아쉬워도 참았다. 작은 차체는 그 자체로 운전하는 재미가 있었으니까. (아주 편안한) 카트 타듯 도로를 누비는 즐거움은 경차만이 주는 최고의 재미다.
그 이후로 기회가 될 때마다 경차를 탔다. 특히 도심에선 경차의 효율성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했으니까. 카셰어링으로 자주 이용했다. 여러모로 부담이 적었다. 그 마티즈가 이제는 쉐보레 더 넥스트 스파크로 이어졌다. 마티즈에서 스파크로 개명하면서 인상 자체가 달라졌다. ‘더 넥스트’라는 예명이 붙으면서 또 달라졌다. 단지 이름만 바뀐 게 아니었다. 1세대 마티즈를 타던 사람이라면 타임머신 타고 시간여행이라도 한 듯 달리진 걸 느낄 테다.
최근 경차는 경차 기준을 꽉 채웠다. 백패킹 배낭 싸듯 더 담을 수 없을 만큼 담았다. 특히 주행 안전장치나 편의장치는 서럽지 않을 정도다. 경차에 사각지대 경보장치까지 달았으니까. 이젠 단지 크기가 작을 뿐이다. 덩치만 밀릴 뿐 다른 자동차의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 아, 넘었다고 말하진 않으련다. ‘소형차 같은 경차’라는 말은 자격지심이 담긴 수사 같아서.
더 넥스트 스파크가 자랑하는 요소는 꽤 많다. 안정성이라든가, 주행 안전장치라든가, 편의장치라든가. 홍보 문구지만, 단지 홍보만을 위한 문구는 아니다. 아니지만, 사실 와 닿진 않는다. 있는 거 없는 거 다 달면 가격이 무시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있는 거 없는 거 다 달았더라도, 그 차만 단 건 또 아니니까. 동급 경쟁차 역시 만만찮은 무기를 소유했다. 오히려 더 막강할지 모른다. 같은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차별점이 적은 게 사실이다.
우위를 점하려면 다른 프레임으로 유도해야 한다. 아예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면 호불호가 갈린다. 더 넥스트 스파크에는 그런 요소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다른 모든 게 수세에 몰리더라도 역전할 수 있는 한 방. 주행 감각을 결정하는 성숙한 하체다. 경차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어색한 거 안다. 보통 이런 문장은 중형 세단을 설명할 때 주로 쓴다. 그만큼 더 넥스트 스파크의 하체는 프레임을 바꿀 정도로 도드라진다. 경차인데도, 경차라도, 경차라서 더 주효하다.
자동차를 타다 보면 서스펜션, 즉 하체 차이가 꽤 흥미롭다. 종류가 같은 서스펜션인데도 표현하는 성격이 다르다. 재료가 같더라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요리 맛이 식사를 좌우하듯 하체 성격이 운전을 좌우한다. 물론 단지 하체라고 표현했지만 여러 요소가 어우러진 결과다. 차체 강성부터 서스펜션 세팅 값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 결과, 엉덩이에 성향이 전해진다. 숫자만 봐선 알 수 없는 느낌의 영역이다.
더 넥스트 스파크의 하체는, 평범한 재료로 맛깔스러운 요리를 만들었다. 기대하지 않은 맛이 난달까. 각 상황에 잘 대처한다. 충격을 흡수해야 할 때, 좌우로 흔들리는 차를 잡아야 할 때, 속도 내거나 감속할 때, 그 상황에 맞도록 서스펜션이 유연하게 대처한다. 성숙하지 않은 서스펜션은 쉽게 포기하거나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이건 자동차의 성격에 맞춘 서스펜션 세팅과는 또 다르다. 필요해서 정한 성격과는 다른, 능력 얘기다.
더 넥스트 스파크는 운전하고 싶어지는 하체다. 엉덩이에 전해지는 느낌이 정갈하다. 적당히 충격을 흡수하고, 적당히 탄성도 있다. 기분 좋은 긴장감과 경쾌한 감각이 공존한다. 경차는 기본적으로 작은 차만의 거동이 장점이다. 휠베이스가 짧아 민첩하다. 이런 성향에 성숙한 하체가 맞물리면서 운전 자체에 재미를 더한다. 더 넥스트 스파크 수동 모델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물론 지금까지 말한 건 경차라는 기준 안에서 통용된다. 오해하진 마시라. 더 넥스트 스파크하체가 BMW 3시리즈에 필적하는 수준이라는 뜻은 아니다. 경차라는 걸 감안하고 탈 때 꽤 극적인 느낌을 전달한다는 뜻이다. 자동차 브랜드에서 괜히 세그먼트를 만들어놓은 게 아니니까. 감안하고 보면 더 넥스트 스파크의 하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제동 감각이 둔해도, 시트가 저렴해도 만회할 만큼.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