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파격적인 보조금이 줄어들 징조를 봤습니다

2017-06-09     나윤석


볼트 EV 타보고 새삼 느낀 전기차의 진화, 구매 적기는?

[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지난 주말에 제주도에서는 전기차 에코 랠리가 열렸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모델들이 대부분 참가했던 이 행사는 승부도 중요했지만 전기차의 메카가 되려는 제주도가 전기차의 실용성을 증명하고 이를 일반 참가자들이 체험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저는 쉐보레 볼트 EV를 타고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볼트 EV는 다른 모델들과는 구분되어 경기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이유는 너무 길어서였습니다. 이번 대회의 규칙은 정해진 코스를 완주한 뒤 더 달릴 수 있는 주행 거리가 긴 차량과 참가자가 우승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볼트 EV는 완전 충전된 배터리로 달릴 수 있는 항속 거리가 400km에 육박하기 때문에 200km에도 미치지 못하는 다른 모델들과 같은 코스를 달리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번에 우승을 목표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제가 다른 자동차를 운전하듯이 볼트 EV를 운전하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즉, 실제로 전기차가 얼마나 쓸모가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찾아온 여름 날씨에 걸맞게 에어컨디셔너도 시원하게 틀고 가속과 제동도 시원시원하게 하면서 달렸습니다. 제주도는 해안을 따라 달리는 평지와 한라산을 끼고 달리는 산악도로 등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기에 안성맞춤인 코스여서 데이터가 더욱 신뢰성이 높습니다. 전기차에게는 막히는 시가지보다 뻥 뚤린 고속도로가 효율이 떨어지는 구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제주도가 가혹한 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평소와 같이 – 그러나 절대 온순하지 않게 – 거의 200km를 주행한 뒤에도 앞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가 200km였습니다. 즉, 쉐보레 볼트는 그냥 타도 383km라는 공인 주행 거리를 달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4년 전부터 전기차를 꾸준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로 카 쉐어링으로 레이 EV 등 다양한 전기차 모델들을 실제 생활에서 사용해 보았기 때문에 볼트 EV가 주는 주행 거리 압박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한 번은 책상을 가져오기 위하여 레이 EV를 카 쉐어링으로 빌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을 완전히 가로지르는 코스였지만 완전히 충전된 레이 EV라면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했지요. 차를 처음 받았을 때 계기반이 보여준 주행 가능 거리는 110km. 넉넉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저는 에어컨을 틀고 출발했습니다. 강복 강변도로를 달리다가 계기반을 본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주행 가능 거리가 60km대로 줄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전기차들은 요즘 전기차가 사용하는 히트펌프 방식이 아닌 일반 컴프레서 방식의 에어컨을 사용했기 때문에 에어컨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했던 것입니다. 반대로 겨울철에도 전기 코일을 사용하는 히터를 사용하다 보니 카 쉐어링 전기차 안에는 ‘히터 대신 열선 시트를 사용하시면 훨씬 경제적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달려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전기차를 시승하거나 카 쉐어링으로 사용할 때는 서울 근교를 벗어나는 코스를 선뜻 잡기가 불안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꼭 가야만 할 경우에는 에어컨이나 히터를 줄이고 평소답지 않게 곱게 운전하는 등 ‘차에 사람을 맞추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전기차의 짧은 주행 거리는 장거리 여행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불편하고 평소에도 일반 자동차가 주유소를 들르는 것보다 훨씬 자주 충전소에 가서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번거로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아니라 차가 우선되는 주객전도의 심리적인 불편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볼트 EV는 이런 심신의 불편함에서 거의 완벽하게 자유로웠습니다.



볼트 EV는 테슬라와 더불어 전기차의 다음 단계를 열었습니다. 그것은 좋은 차라는 점입니다. 이전의 전기차들은 효율성 때문에 다른 부분들이 희생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기차는 작고 약하다는 것으로 선입견이 씌워졌었습니다. 하지만 테슬라가 럭셔리하고 강하다는 것으로 그 선입견을 부수었고, 볼트 EV는 작지만 매운 고추이며 재미있는 차라는 점에서 전기차에게 자동차의 본질인 감성적 만족도를 되돌려준 것입니다. 볼트 EV를 타면서 만일 내가 볼트 EV를 산다면 가장 먼저 바꾸고 싶은 부분이 엄청난 토크와 우수한 조종 성능을 따라가지 못하는 고효율 타이어라는 점을 떠올리면서 이제는 전기차가 효율성이라는 점만 강조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

앞으로 전기차는 점차 저렴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전기차는 비싸질 것입니다. 차 자체의 원가는 배터리의 가격 인하와 대량 생산의 효과로 점차 떨어지겠지만 지금처럼 파격적인 보조금 규모는 계속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앞으로는 전기차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점과 예산은 제한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론입니다.

어쩌면 앞으로 3~5년이 전기차를 가장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