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와 쌍용차가 쓰러진 지 20년, 무슨 일이 벌어졌나
2017-06-30 김형준
기억한다, 1998년을 (3)
IMF와 함께 수렁에 빠졌던 한국 자동차 산업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1998년, 대한민국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쓰나미처럼 밀려온 전년도의 외환위기 때문이었다. 해외투자자들(기업, 개인, 국가)이 자금을 회수해가면서 외환보유고가 빠르게 바닥났고, 정부는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IMF 체제의 시작이었다.
1980년대 고성장의 맛에 중독된 많은 한국 기업들이 무리하게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결과였다. 하지만 1990년대 시장은 짐작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자동차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화수분처럼 성장할 줄 알았던 내수시장은 이미 공급 과잉 상태였다. 수출 물량은 연간 140만대를 넘었지만 저가 모델이 대부분이라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동차를 생산하는 제조사는 우후죽순 늘어갔다. 현대정공이 현대자동차와 별개로 차를 만들고 기아자동차는 아시아자동차와 함께 규모를 키웠다. 대우자동차는 대우중공업과 함께 해외 시장을 확장해갔고 여기에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와 삼성상용차까지가 작은 한국 시장 안에서 아옹다옹했다. 이런 이유로 IMF 체제 이전, 한국 자동차산업은 이미 대대적인 재편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기아자동차가 중심에 있었다. IMF 체제 이전, 기아자동차의 계열사는 28개까지 늘어나 있었다. 이들 계열사의 채산성이 악화되자 핵심사업인 자동차 분야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기아자동차는 결국 1997년 7월 부도(정확히는 부도 유예협약 대상)를 냈다. 연산 100만대 규모를 지닌 기아자동차가 무너지자 경쟁 기업들이 달려들었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자동차였다. 두 기업이 기아자동차를 탐낸 이유는 서로 달랐다.
현대자동차는 기아자동차 인수를 통해 연간 생산규모를 250만대 이상으로 키우고자 했다.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였던 대우자동차도 연산 250만대를 천명한 터였다. 충동 구매는 아니었다. 현대그룹은 이미 그때로부터 4~5년 전부터 기아 주식을 조금씩 매입하고 있었다. 삼성자동차는 처지가 달랐다. 삼성은 1993년부터 자동차사업 진출을 예고했다. 이듬해 닛산과 기술도입계약을 맺었고 1995년 3월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1996년 11월에 부산 생산공장 건립이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삼성은 기아자동차 인수로 이를 중화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삼성의 기아 인수 추진 방침이 담긴 보고서가 유출되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삼성과 현대 모두 뒷걸음질을 쳤다. 그 사이 기아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정부는 공기업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마저 실현되지 못했다. IMF가 부실기업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아자동차의 제3자 인수 추진은 이듬해인 1998년에야 이뤄졌다. 그해 10월 현대자동차는 공개입찰을 통해 기아자동차 인수의 자격을 얻었고 연말, 주식 51%를 매입하며 기아차 인수를 마무리했다.
삼성자동차는 1998년 2월 첫 번째 승용 모델을 출시했다. SM5였다. 제품은 호평 받았지만 삼성자동차는 점점 어려워졌다. 기아 인수에 실패했고 삼성그룹은 자동차 사업 정리를 결정했다. 그해 연말, 삼성그룹과 대우그룹은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를 맞바꾸는 빅딜 실행 계획안을 정리했다. 하지만 이듬해 여름, 빅딜이 무산됐고 삼성그룹은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해외매각이 결정됐고 삼성자동차는 2000년 4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인수됐다.
실상 대우그룹도 삼성과의 빅딜이 부담스러웠다. 1999년 봄부터 경영 상태가 눈에 띄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대우그룹은 그해 8월 12개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이듬해엔 법정관리 체제로 돌입했다. 자동차사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8년 1월 쌍용자동차 인수로 희망에 부풀어 있던 대우자동차였다. 국내 자동차산업도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 투 톱 체제로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모기업의 부채가 발목을 잡았다. 애써 매입한 쌍용자동차는 2000년 4월 떨어져 나갔고 회사는 해외 매각이 결정됐다. 2001년 9월 미국 GM과 MOU 체결 후 이듬해 10월 지엠대우자동차기술(GM오토앤테크놀로지의 전신)이 출범했다.
쌍용자동차는 1990년대 갤로퍼 등과 과잉 경쟁을 벌이다 어려움에 빠졌다. 벤츠와의 제휴로 기술경쟁력을 확보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기술로 만든 제품은 투자한 것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했다. 1998년 초 대우에 인수됐다가 2년 만에 강제 방출된 쌍용자동차는 4년 만에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다시 인수됐다. 하지만 상하이차와의 결혼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구조조정, 평택공장 폐쇄와 정리해고 등이 이어졌다. 2010년 마힌드라 그룹과 인수합병 계약을 맺은 뒤 안정을 찾았고 2011년 3월 기업회생 절차를 졸업했다.
기아자동차와 쌍용자동차가 쓰러진 지 20년,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가 기아와 쌍용을 인수하고 삼성자동차가 첫 번째 승용 모델을 출시하자마자 회사 정리에 들어간 뒤로 19년이 흘렀다. IMF 체제 전후의 아비규환에서 벗어난 우리 자동차 시장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일단 한국 자동차산업은 연간 생산 423만대 규모로 성장했다. 중국-미국-일본-독일-인도에 이은 세계 6위 규모다. 그 안에서 현대자동차는 일반 승용차 시장에서 42% 가량을 점유하는 거물로 군림하는 가운데 별도의 고급차 브랜드(제네시스)로 수익성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여전히 형제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내에서 SUV를 가장 많이 파는 기업(16만6700여 대/약 37%)으로 올라선 것은 큰 위안거리다. 십 수년 질곡의 세월을 보낸 쌍용자동차는 B SUV 티볼리의 성공에 힘입어 비로소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불안감도 크다. 기아와 현대가 각각 스토닉과 코나로 B SUV 시장 쌍끌이 조업에 나선 탓이다.
대우 시절에 비해 점유율이 크게 떨어진 한국지엠(지난해 승용/SUV/RV 기준 12.6%)은 군산공장의 생산성 하락 문제를 풀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카마로 SS, 볼트 EV 등으로 연신 화제를 일으켰지만 판매 볼륨에 큰 보탬이 돼온 스파크가 주춤하고 주력인 말리부도 중형세단 시장에서 큰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는 등 걱정거리도 산더미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SM6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에 힘입어 일반 승용차 시장 점유율도 10%대까지 끌어올렸다. 다만 SM6와 보조를 맞출 제2, 제3의 수익 모델이 마땅치 않아 걱정이다. QM3와 곧 출시할 클리오 등 해외 OEM 생산 모델의 선전과 중형 SUV QM6의 원기 회복이 절실하다. 삼성자동차의 흔적은 시나브로 지워나가는 중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모터트렌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