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가 왜 이리도 터보 엔진을 강조하나 했더니

2017-07-04     나윤석


제로백 몇 초보다 운전자의 희열을 더 중시하는 기아차
기아차, 자신만의 색깔을 향한 진지한 출발

‘왜 지금 터보 엔진 이야기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기아차가 최근 주최한 K-드라이빙 스쿨에 ‘Turbo engine Experience & Learning’이라는 테마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다운사이징 트렌드로 요즘은 터보 엔진이 귀하지도 않고 오히려 터보 엔진이 없는 브랜드는 시대 조류에 뒤떨어진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즉, 시장의 관점에서는 터보 엔진은 신선한 주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아차가 특별한 터보 엔진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기아차의 거의 모든 모델들은 최소한 하나 이상의 터보 엔진을 사용한다. 최근 출시된 스팅어는 엔진 세 가지가 모두 터보 엔진이다. 하지만 기아차의 터보 엔진은 기본적으로 형제인 현대차와 함께 사용하는 것들이다. 모닝의 1.0 카파 T-GDI 엔진도 국내에서는 기아차만 사용하지만 해외에서는 현대차와 함께 사용한다. 즉 제품 면에서도 터보 엔진에 대하여 기아차만의 특별한 부분은 최소한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시장 관점에서나 제품 관점에서도 시선을 한방에 사로잡을 사건도 딱히 없는 기아차는 왜 터보 엔진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일까?



이번 행사는 전남 영암의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의 F1 코스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주로 사용되는 1랩 3km의 상설 코스가 아니라 F1 경기에서 사용했던 5.6km 풀 코스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KIC의 F1 코스를 달려본 사람은 이것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으리라. KIC F1 코스에는 1.15km의 엄청나게 긴 직선 구간이 있다. 여기에서 심장이 터질 듯 엔진은 자기가 가진 성능을 모두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끝에는 예각의 코너가 있다 F1 머신의 경우 시속 300km에서 곧바로 시속 80km로 감속해야 하는 곳이다. 드라이버에게는 단 한 번의 실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경쟁자를 추월할 수 있는 최적의 구간이다. 하지만 머신에게는 극한의 스트레스가 반복해서 가해지는 죽음의 구간인 것이다.

KIC 서킷 F1 코스의 2번 코너 – 1.15km 직선 – 예각의 3번 코너는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 안전을 담보하는 브레이크의 성능과 내구성,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예각 코너에서의 접지력 등 자기가 가진 밑천, 즉 기본기가 모두 드러날 수밖에 없는 극한의 코스인 것이다. 대부분의 승용차는 이 구간의 스트레스를 몇 번만 반복해서 받으면 성능이 뚝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래서 상설 코스에서는 이 구간이 빠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승 행사와 드라이빙 스쿨에서는 상설 코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아차는 이번 행사에서 F1 코스를 선택했다.

이럴 때 떠오르는 말이 있다. ‘성공하면 과감한 것이고 실패하면 무모한 것’. 기업은 절대 무모하지 않다. 성공보다는 실패하지 않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기업, 특히 대기업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기아차는 F1 코스에 도전할 만한 실력이 있다고 자신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틀에 걸친 도전에서 기아차는 무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첫 번째는 내구성이었다. 한 모델을 한 랩씩 도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는 했지만 피트에서 바로 드라이버를 교체하고 그 후 같은 조의 차량을 맞바꿔 타는 방식이므로 쉴 틈 없이 4랩을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10 분 가량의 휴식 후에 다음 조의 차량 2대로 이동하는 식으로 일곱 조를 반복했으니 F1 코스를 모두 28랩이나 달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사가 몇 일 동안 반복되니 차량에 누적되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게다가 날씨는 30도를 넘는 뜨거운 여름이다. 차량에게는 한층 가혹한 조건인 것이다. 게다가 열은 터보 엔진에게 가장 큰 적이 아닌가.

이번 행사에는 당연히 터보 모델이 대부분이었지만 모닝과 K7, K9의 자연 흡기 모델도 포함되어 있었고 경쟁사의 모델도 간혹 포함되어 있었다. 첫 만남부터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기아 모델들의 브레이크 상태가 ‘정상’이었다는 것이다. 행사에서 이미 혹사당한 모델들이라는 것은 타이어의 상태에서도 알 수 있었는데 제동 성능이 열화된 경우를 찾기 힘들었다. 또한 반복되는 코너링에도 휠 얼라인먼트가 틀어진 경우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것은 차체 강성을 비롯한 차량의 기본 설계가 이전보다 훨씬 향상되었다는 방증이다. 특히 터보 모델들의 경우에는 저회전에서도 큰 토크가 나오기 때문에 새시와 타이어 등에 훨씬 스트레스가 크다. 막내 모닝 터보부터 가장 고성능 모델인 스팅어 3.3T GT 모델까지 모두 차체가 끄떡없다는 점이 또 한번 이를 증명했다.

견고한 차체는 충돌 안전도는 물론 안정적 조종 성능에도 중요한 기반이 된다. 그러니까 기아차는 기초를 잘 다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기아차는 한 발 더 나가고 있었다. 그 대표 주자는 GT 모델들이었다. K5 GT와 스팅어 GT가 그들이다. 일전에 K5 GT의 시승기에서도 이야기했듯이 K5 GT는 기존의 2.0 T-GDI엔진과 비교하여 출력이 높지는 않다. 그 대신 이 출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조종 성능을 꾀했다. 서스펜션의 질감과 튜닝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스티어링의 교감도 이전의 기아차와는 차원이 달랐다. 브레이크도 절대 용량을 키웠다. 스팅어 GT에서도 출력보다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로 조종 성능이었다. 스팅어는 칼로 베는 듯한 예리함보다는 절대로 흐트러지지 않고 드라이버를 놀라게 하는 경우가 없는 안정성과 높은 수준의 밸런스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기아차는 제로백 몇 초보다 드라이버의 희열을 더 중시하고 있었다. 즉, 양적 고성능보다 질적 고성능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스팅어의 세팅에서 알 수 있듯이 짜릿한, 그러나 자기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예리함보다는 엄청난 안정감과 접지력을 섬세한 균형 감각으로 다루어내는 ‘믿을 수 없으면 절대 즐겁지 않다’는 어른스러운 쾌감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터보 엔진이 주는 좀 더 강한 파워의 입력은 차체와 새시를 일깨우는 충분한 자극이 되는 것이다.

이론 교육 세션에서 기아차 터보 엔진 개발 수석 엔지니어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밤늦게까지 귀찮게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더 끄집어냈다. 기아차의 터보 엔진이 꽤 높은 수준이라는 것은 이전 직장의 독일인 엔지니어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었다. 그 첫째는 수석 엔지니어와 허심탄회하게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것을 허용한 기아 브랜드의 자세다. 사실 엔지니어들은 기본적으로 마니아다. 머릿속에 온통 자기가 하는 일이 가득하다. (나도 그런 경향이 있듯이) 그런 엔지니어에게 실질적으로 무제한적으로 질문을 받도록 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기밀이 누설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기아는 상당한 수준의 질문까지 스스럼없이 허용했다. 지면에는 싣기 위험한 수준의 정보까지 공유되었을 정도이니까. 그리도 둘째는 ‘저희도 그 부분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이었다. 부족한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그 부분에 대한 대책이 세워져 이미 진행 중이라는 대답에서 ‘아, 뭔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GT 모델이 아니라도 기아 모델은 기술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현대차의 동급 모델과 조금씩 다른 감각을 준다는 것은 몇 년 전부터 느껴온 기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경향이 이젠 점점 더 커진다는 점에서 기아차의 색깔이 진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K5 1.6 T-GDI 모델에서 느꼈듯이 GT보다는 확실히 무르지만 쏘나타와는 분명 다른 발목 하나로 차를 갖고 노는 재미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출시 초기에는 남성적이고 고급스럽지만 너무나도 편안했던 K7이 연식 변경과 함께 기아차의 새로운 색깔에 따라 이전보다 훨씬 드라이버와의 교감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기아차는 화끈한 젊은이들의 스포티한 감각보다는 좀 더 고민하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남자들의 스포츠라는 보다 어려운 접근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 기아는 확실하게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숫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적인 부분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도 반갑다. 양적인 부분으로는 현대-기아차는 이미 세계적 기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방법으로는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 자동차 산업을 이겨내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는 보다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어려운 시험 문제를 풀어야만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질적인 차이가 바로 고부가가치로 가는 길이다.

“비어만 효과가 확실하네요.”

행사가 끝난 뒤 이 말을 기아차 담당자에게 했다.

“맞아요. 저희도 느끼고 있어요.”

당신이 스스로 차를 타고 튜닝에 참가한다는 비어만 부사장은 확실하게 기아차의 색깔을 진하게 하고 있었다. 새시를 좀 더 조이고 진득하게 만들고. 터보 엔진도 반응을 섬세하게 새롭게 튜닝하는 등 차가 다른 맛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다. 기아차가 차를 좀 더 세심하게 다듬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자신만의 확신이 부족해 우물쭈물하는 것이 아쉬운 파워텍 변속기도 엔진 개발자와 변속기 개발자가 수시로 함께 앉아서 토론할 수 있다는 현기차 그룹만이 갖고 있는 장점과 함께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아직 유럽의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보다는 파워의 밀도감이 살짝 부족한 현기차의 터보 엔진도 막내인 1리터 카파 엔진에 값비싼 기술을 아끼지 않고 이미 차세대 엔진들이 착착 개발 중이라는 소식에 미래가 밝다.

이번 행사가 터보 엔진을 주제로 한 것은 확실히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기아차에게 터보 엔진은 엔진 자체로도, 브랜드 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한 퍼즐의 한 조각이었던 것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