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치아가 남긴 전설의 랠리카와 불멸의 기록들

2017-07-19     황욱익
멋과 낭만, 열정이 가득한 이탈리아 자동차 (Ⅷ)
이탈리안 럭셔리, 랠리의 황태자 란치아(2)

[황욱익의 플랫아웃] 란치아 하면 랠리를 빼놓을 수 없다. 혹자는 회사가 망해가는 줄도 모르고 레이스에 집중했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무려 20년 넘게 WRC(월드랠리챔피언십)에서 활동하며 모터스포츠 역사에 진한 족적을 남겼다. 다양한 기술적 시도와 과감한 디자인, 폭발적인 성능은 란치아=랠리라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WRC가 출범하기 1년 전인 1972년 인터내셔널 랠리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풀비아 HF는 란치아 랠리카의 기원으로 불린다. 란치아는 1950년대 그랑프리와 내구레이스에서도 활동했지만 길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모터스포츠에 뛰어든 시기는 1970년대이다. 안타깝게도 풀비아 HF는 WRC 첫해인 1973년 알피느 르노 A110에게 챔피언 자리를 내주었지만 이후 투입한 스트라토스가 3년 연속 챔피언십을 차지하며 랠리의 황태자로 군림하게 된다.



◆ 풀비아 HF

1963년부터 1976년까지 생산된 풀비아는 마지막으로 V4 엔진을 올린 차이다. 란치아는 이미 1920년대부터 V4 엔진을 사용했다. 효율성과 고출력을 강조한 이 엔진은 가벼운 차체의 풀비아를 만나면서 마지막을 불태우게 된다. 란치아는 1965년 레이싱팀인 HF 스콰드라 코르세를 인수하면서 고성능 버전을 개발했는데 이후 HF는 란치아의 고성능 버전으로 자리를 잡는다. 배기량 1.6ℓ에 최고출력 132마력을(후기형) 자랑한 풀비아는 이후 란치아가 WRC 무대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로드버전은 4도어의 벨리나, 2도어 쿠페, 2도어 패스트백 쿠페(스포츠)로 구분된다.



◆ 스트라토스 HF

타입 829로 명명된 스트라토스는 총 492대가 만들어졌다. 디자인은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거장 마르첼로 간디니가(람보르기니 미우라, 쿤타치, 디아블로, 부가티 EB110, 마세라티 기블리 등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 베르토네 시절 담당했으며 엔진은 페라리 디노에 사용하던 V6 2.4ℓ를 사용했다. 로드버전의 최고출력은 약 140마력 정도였으나 랠리 버전은 200마력 정도로 알려져 있다. 스틸 스페이스 프레임으로 짠 보디와 미드십 레이아웃, 뒷바퀴 굴림, 과격하고 공격적인 디자인은 WRC 역사상 가장 인상 깊은 랠리카로 꼽힌다.

스트라토스 HF는 1974년부터 1976년까지 WRC 매뉴팩처러 챔피언십을 차지했으며, 1977년에는 WRC 최초의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1978년과 2005년, 2010년에는 스토라토스의 디자인을 계승한 컨셉트 모델이 공개됐으나 양산되지는 않았다.



◆ 랠리 037

스트라토스의 후속으로 등장한 랠리 037은 1982년 데뷔전을 치렀다. 란치아의 주도 아래, 피닌파리나, 아바쓰, 달라라 등 굵직한 전문 업체들이 개발에 참여한 랠리 037은 WRC 역사상 마지막 후륜구동 챔피언이기도 하다. 피아트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랠리 037은 케블라로 보디를 만들었고 미드십에는 피아트에서 만들고 아바쓰에서 슈퍼차저 튜닝을 담당한 직렬 4기통 2.0ℓ 엔진을 올렸다. 랠리 037은 1984년까지 WRC에서 활동했는데 그룹B의 경주차들이 대부분 사륜구동을 채택한데 반해 가장 마지막까지 후륜구동을 유지했다. 이미 WRC에서는 종전 후륜구동은 경쟁력을 잃었고 란치아도 1985년부터 WRC 투입 경주차에 스포츠 사륜구동을 도입하게 된다.

랠리 037은 WRC 은퇴 이후에는 서킷으로 그 활동 무대를 옮겼는데 몬테카를로 터보라는 이름으로 활약했다. 최종 생산 대수는 그룹B 호몰로게이션에 맞춰 250대가 제작되었으며 이중 200대가 205마력 사양의 로드버전(스트라달레)이다. WRC 경주차는 최고 출력이 350마력이다.



◆ 델타 S4

랠리 037의 후속으로 등장한 델타 S4는 모터스포츠 역사 상 가장 비운 했던 경주차로 불린다. 델타 S4에 탑재된 아바쓰에서 개발한 트윈차저 엔진은(슈퍼차저와 터보를 함께 사용) 부스트압 5바에서 1,000마력을 냈으며, 실제 WRC에서는 600마력 정도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당시 각 메이커들은 경쟁자들을 의식해 최고출력을 낮게 발표했고 지금과 같은 정확한 계측기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출력은 그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델타 S4는 트윈차저와 스포츠 사륜구동 등 당시 란치아가 가진 모든 기술이 집약된 경주차였다. 공차 중량은 890kg 정도 였고 1985년 데뷔전인 영국랠리(RAC랠리)를 우승으로 장식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1986년 5라운드인 프랑스 랠리에서 헨리 토이보넨이 몰던 경주차가 언덕 아래로 구르며 발생한 화재로 인해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가 사망하게 되고 이후 FIA는 그룹B의 폐지를 발표하며 델타 S4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델타 S4는 짧았지만 강력한 인상을 남긴 경주차였다. 참고로 델타 S4가 선보인 트윈차저 시스템은 생산 단가와 기술력 문제로 사라졌다가 2000년대 중반에 와서야 양산됐다.



◆ 델타 HF

최고출력을 300마력으로 제한하는 그룹A 호몰로게이션이 1987년부터 발효됨에 따라 란치아는 소형 패밀리카인 델타를 WRC에 투입한다. 란치아가 그룹A 호몰로게이션에 맞춰 투입한 델타 HF는 1987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6년 연속 매뉴팩처러 챔피언을 차지한다. 드라이버 챔피언은 1987년 유하 칸쿠넨을 시작으로 1988년과 1989년(미키 비아션) 3년 연속 등극한다.

델타 HF의 엔진은 피아트의 양산 엔진을 아바쓰에서 튜닝한 것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피아트 엔진으로만 표기되어 있다. 양산차 엔진을 피아트에서 공급받는 란치아 입장에서는 아바쓰가 레이스 엔진을 튜닝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같은 피아트 그룹의 페라리가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델타 HF는 8V를 시작으로 16V, 인테그랄레, 인테그랄레 에볼루치오네 등으로 진화하며 WRC 무대를 평정했다. 경영난으로 WRC에서 철수한 1993년까지 란치아가 기록한 매뉴팩처러스 6년 연속 챔피언 기록과 통산 10회 챔피언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욱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