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협정 깨진 소형 SUV 시장, 싸움 구경 즐겁다
2017-07-27 나윤석
소형 SUV 시장 혈전, 즐겁게 관람하시고 혜택만 챙기시라
[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지난 26일 RSM(르노삼성자동차)의 뉴 QM3 미디어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뉴 QM3는 완전 신모델은 아니지만 상품성을 대폭 개선하고 디자인을 새롭게 가다듬은 페이스리프트 모델입니다. 이로써 작년 10월에 출시된 쉐보레 트랙스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더 뉴 트랙스로부터 시작된 소형 SUV, 즉 B SUV의 제 2기 라인업이 완성된 것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B’는 유럽에서 소형차를 일컫는 B 세그먼트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B SUV의 현재 라인업을 한 번 세어 볼까요?
쉐보레 더 뉴 트랙스 (2016년 10월 페이스리프트)
현대 코나 (2017년 6월 신모델)
쌍용 티볼리 아머 (2017년 7월 스페셜 모델 추가)
기아 스토닉 (2017년 7월 신모델)
RSM 뉴 QM3 (2017년 7월 페이스리프트)
자, 무엇이 보이시나요? 일단 다섯 모델이 새로 출시되거나 새단장을 한 것이 1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트랙스를 제외한 모델들은 심지어 한 달 남짓한 기간에 모두 새로 나왔습니다. 이것은 자동차 시장에 이런 경우는 매우 희귀한 케이스입니다. 왜냐 하면 신차 또는 상품성 개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서로 적절한 시간차를 두고 시장에 나오는 것이 업계의 신사협정이나 불문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B SUV 시장이 이 신사협정을 깨고 거의 모든 새 모델들이 한꺼번에 시장으로 나온 겁니다. 그렇다면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첫째 이유는 이 시장은 되는 시장이라는 판단이고, 둘째 이유는 그 맛있는 시장을 남에게 줄 수 없다며 서로 치열하게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시장이 커질까 지켜보던 현대차와 기아차가 거의 동시에, 그러나 서로 살짝 다른 시장을 코나와 스토닉으로 일제 공략하자 시장의 맹주였던 티볼리와 QM3가 반발하는 셈입니다. 싱싱한 먹잇감을 앞에 두고 신사협정 같은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제대로 싸움이 난 거죠.
싸움 구경은 재미있지요. 하지만 자동차 시장의 싸움은 그냥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고객들에게는 실제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모델들은 강점은 키우고 단점은 보완하였으며 새 모델들은 글자 그대로 신선하게 새로운 선택지가 될 만한 매력을 갖고 나왔습니다. 모델 별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쉐보레 트랙스는 아저씨 차 같다는 디자인을 확 바꿨고 재질이 나쁘다는 실내를 크게 손 보고 옵션도 늘렸습니다. 기본형 가격을 이전보다 125만원 인하하여 문턱을 낮춰 비싸다는 불만에 대응하려 했습니다. 이번에 수동 모델까지 나와서 시작 가격이 1600만원대까지 내려왔습니다.
젊은이들이 타깃이라면서 정작 젊은 디자인의 모델이 부족하다는 점에 현대 코나는 착안했습니다. 그리고 첨단 사양을 많이 갖추어 기존의 강자들을 허름한 차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요.
이에 대항하여 기존의 왕인 쌍용 티볼리는 이미 강했던 SUV의 터프한 이미지를 강화하는 전술을 택했고 그래서 태어난 것이 아머 에디션입니다. 그러니까 가격이나 옵션에는 굳이 손을 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이미지만 굳건히 해도 될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인 것입니다.
QM3는 수입차이다 보니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았던 부분을 개선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먼저 암 레스트나 컵홀더와 같은 사소한 듯 하지만 품질이 아쉬웠던 국내 제작 액세서리를 기본 아이템으로 개발하여 실내 품질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B SUV 시장에서 고급 시장에 포지셔닝했던 것에 비하여 아쉬웠던 옵션 사양과 디자인 요소를 보강하여 포지셔닝에 걸맞은 제품력과 상품성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스토닉은 단정한 디자인과 매력적인 가격으로 실용적인 고객을 겨냥합니다.
실제로 B SUV 시장이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것은 이 시장이 우리나라 자동차 브랜드 다섯 개가 모두 뛰어든 유일한 시장이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시장은 대부분 세 브랜드 정도가 경쟁을 하고 있으며 가장 치열하다는 중형 세단 시장도 쌍용차를 제외한 네 브랜드가 경쟁 중입니다.
B SUV 시장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국내 모든 브랜드들이 뛰어들어 경쟁하는 가장 치열한 시장입니다. 둘째, 서로를 비교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제품은 날로 개선되고 가격 경쟁력은 좋아지고 있습니다. 셋째, B SUV 시장의 두 가지 축인 패션성 중심 고급 시장과 실용성 중심의 가성비 시장이 더욱 또렷해지며 가격의 상하 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넷째, 다양한 캐릭터의 모델이 더 넓은 가격대에 포진하여 다양한 고객들에게 어필하는 다양성이 가장 발달한 시장입니다. 즉, 치열한 경쟁의 결과로 고객들에게 즐거운 소식이 가득한 시장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당분간은 B SUV 시장이 고객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시장일 것입니다. 물론 인접한 소형 승용차 시장이나 준중형 승용차 시장, 준중형 SUV 시장은 피해를 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죠. 그리고 경쟁이 또 시작되면 그 혜택은 소비자들에게 돌아옵니다.
B SUV 시장의 싸움. 소비자들은 즐겁게 관람하시고 혜택만 챙기시면 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