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 ‘비밀의 숲’ PPL 효과 톡톡히 누렸나

2017-08-03     강희수·정덕현


신형 그랜저(IG) vs <비밀의 숲> (2)

[강희수·정덕현의 스타car톡] 한때 그랜저는 부와 성공의 상징이었다. 단단한 외형에 중량감이 더해지면서 위압감마저 주던 차, 그랜저. 그래서 그랜저를 끌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우스갯소리로 ‘그랜다이저’라고 불리기도 했던 차. 그랜저를 끈다는 것은 그래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만한 지위를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랜저의 이런 이미지는 아재들이나 할 법한 농담이 되어버렸다. 스포티해지고 세련되어 심지어 날렵하게까지 보이는 지금의 그랜저를 보며 과거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어딘지 구세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 tvN <비밀의 숲>에 등장한 그랜저는 그래서 새삼스럽다.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검사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랜저를 타고 있지만 그 이미지가 너무나 달라 보여서다. <비밀의 숲>에 등장했던 그랜저를 통해 그 변화된 이미지가 의미하는 것에 대해 자동차 전문기자인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수다를 나눴다.



정덕현(이하 정) : 앞서 그랜저의 이미지 변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구체적으로 그랜저 개발자들은 어떤 점에 더 주목했던 것인가.

강희수(이하 강) : 2011년 5세대 모델이 나온 이후 5년 동안 그랜저 개발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내려놓기’였다. 오르기보다 내리기가 더 어렵다는 교훈은 주변의 여러 삶에서 이미 확인된 바다.

정 : 사실 연예계에서도 한때 굉장한 아우라를 가진 연예인이 나이 들어 그 이미지를 내려놓는 일은 성공 자체보다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랜저 역시 그랬을 것 같다. 한 때는 성공의 상징이었으니. 그래서 어떤 방법을 택했나.

강 : ‘신형 그랜저’가 선택한 ‘내려놓기’의 방법은 ‘젊음’이었다. 마치 이전 세대가 그랜저를 타면서 은퇴를 고려해야 했다면 지금의 그 세대는 더 노련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디자인은 가볍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젊어지고, 중후했던 이미지는 역동적으로 바뀌었다. 전면부 인상을 좌우하는 라디에이터 그릴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그것보다는 작지만 기본 틀은 그대로다. 측면 오버행은 앞쪽으로 뾰족하게 튀어 나온 모양을 해 둔한 느낌을 없앴다.



정 : 무엇보다 디자인적인 변신이 눈에 띈다.

강 : 5세대 모델(HG)의 흔적은 뒷바퀴 펜더 라인에 볼록하게 살아 있다. 이 볼륨감이 있고 없고에 따라 그랜저와 하위 세그먼트인 ‘쏘나타 뉴라이즈’가 구분 된다. 전면부에서 출발한 캐릭터 라인은 후면부로 이어지다 뒷문짝 중앙 부근에서 잠시 사라지지만 곧 문짝 끝 부근에서 살아나 후면부의 펜더로 이어지며 도드라진다. 시야에서 춤추는 듯한 라인은 원근감으로 표현 된 입체감이다. 덕분에 신형 그랜저는 세련된 볼륨감을 갖게 됐다.

정 : 이런 변화는 소비층의 변화도 이끌었을 것 같다.

강 : 맞다. 거추장스럽던 것들을 버렸더니 세련미가 더해졌다. 젊어진 디자인은 젊은 소비자층을 끌어들였다. 출시 이후 ‘신형 그랜저’는 월 1만대 이상씩 팔리는 베스트셀링카가 돼 있다.



정 : 이제 드라마에 나왔던 그랜저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황시목(조승우)이 탄 차가 그랜저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드라마를 봤던 나 같은 자동차 무식자의 입장에서도 차가 등장하는 장면 중 특이한 게 하나 있었다. 그건 황시목이 이전에 수습으로 데리고 있던 영은수 검사(신혜선)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검시실로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충격을 받은 그가 잠시 차선을 이탈하자 경고음이 나오며 차가 방향을 잡아주는 장면이었다.

강 : 그 장면에 대한 작은 논쟁들이 나온 걸 봤다. 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달랐을 것 같은데, 이 장면을 두고 “교묘한 PPL이 몰입을 방해했다”, “워낙 자연스러워서 PPL인 줄 몰랐다”라는 의견들이 분분했다고들 한다.

정 : 과거 <태양의 후예>에서 진구가 김지원에게 차 안에서 자율주행모드로 운전하며 키스를 하는 장면이 화제와 동시에 논란이 되기도 했었는데, 그것보다는 <비밀의 숲>에서의 이 장면은 훨씬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된다. 그만큼 충격을 받을 만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태양의 후예>의 경우는 너무 PPL을 하려는 의도가 드러나지만, 적어도 <비밀의 숲>에서는 작품의 이야기 속에 PPL을 자연스럽게 녹이려는 노력이 보였다.



강 : 의견은 분분했지만 자동차의 등장이 시청자들 사이에 논란거리가 될 정도로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이는 우리가 ‘스타car톡’이라는 칼럼을 기획하면서 지향점으로 삼았던 바이지 않은가? 드라마 연출자가 PPL 제품을 어떻게든 작품 속에 노출시키는 데만 천착하지 말고, 작품 속에 하나의 캐릭터로 녹여 달라는 바람이었다. PPL 제품도 입찰가에 맞춰 선택할 것이 아니라 배우를 캐스팅 하듯 세밀한 분석 끝에 어떤 브랜드, 어떤 제품을 선택해야 할 지를 결정해 달라는 거였다. 최소한 <비밀의 숲>에서 화제가 된 이 장면에서 ‘신형 그랜저’는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라, 주인공 황시목의 복잡한 내면을 가장 절실하게 보여주는 조연급 배우였다.

정 : 그 장면에 등장하는 기능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가.



강 : 문제의 장면에서 신형 그랜저(개발명 IG)가 한 기능은 ‘현대 스마트 센스’라고 불리는 지능형 안전 시스템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들은 저마다 안전 운전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운용하고 있는데, 현대자동차는 이를 ‘현대 스마트 센스’라고 부르고 있다. 사실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이 운용하는 안전 운전 지원 시스템은 대동소이하다. 앞과 뒤, 그리고 주변의 차를 감지해 차가 알아서 달리거나 정지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사람의 개입이 전혀 없는 운전, 즉 완전 자율 주행으로 가는 중간단계의 시스템이라 생각하면 된다. 센서는 룸미러 부근에 자리 잡는 카메라, 앞 번호판 주변에 달려 있는 레이저, 그리고 차의 네 모서리에 달리는 감지 센서 등으로 구성 된다.

정 : 자동차는 점점 스마트해지고 그럴수록 운전자들은 퇴화하는 느낌이다(웃음).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자동차가 알아서 다 해주니 말이다.



강 : 그렇다. 충돌 위기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의 순발력보다 그 상황을 감지해 사람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차가 자동적으로 정지하게 만드는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이 작동된다. 차선을 바꾸려 할 때 사람이 사이드 미러로 감지 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서도 차량 존재 유무를 알려 주고 만약의 경우 대처해 주는 ‘후측방 충돌 회피 지원 시스템’이 충돌 또는 추돌 위험시 사람 대신 차를 세워주는 장치들이다. 주행 중에는 레이저 감지를 통해 앞차와의 거리를 자동적으로 조절해 주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과 주행 조향 보조시스템(LKAS)이 운전자를 지원한다. <비밀의 숲>에서 딴 생각에 빠진 조승우의 차가 차선을 벗어나자 차가 알아서 핸들을 돌려주는 장치가 바로 LKAS(‘엘카스’로 지칭)다. 차에 달린 레이더 센서가 차선을 인식해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차선을 벗어나려 하면 스스로 핸들을 조작해 선 안으로 차를 밀어준다.

정 : 사실 아직까지는 실감이 없지만 완전자율주행도 아주 멀지 않은 얘기라고 들었는데.

강 : 운전에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완전자율주행은 ‘현대 스마트 센스’ 같은 지능형 안전 시스템을 기반으로, 차대차 또는 차와 도로 간의 정보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사물인터넷, 실시간 도로 상태가 업데이트 되는 정밀 내비게이션만 추가 되면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될 수 있다.



epilogue. 권위를 내려놓는 것, 시대의 요청이다

그랜저가 과거의 권위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권위를 내려놓는 그 모습은 우리네 가치관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7,80년대만 해도 성공이 목적이던 삶은 이제 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수직적 체계 속에서 가장 꼭대기에 서는 삶이 아니라 수평적 체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옆자리에 서는 삶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때는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표상되던 그랜저가 이제 그것을 내려놓고 보다 친근해졌다는 건 그런 점에서 이 자동차가 시대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자동차의 이야기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무수한 권위의 꼭대기들이 무뎌지고 깎아져 대중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이제 우리는 모두가 희구하고 있다. <비밀의 숲>이라는 드라마가 검찰의 적폐청산 이야기로 그걸 전했듯이.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x 자동차전문기자 강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