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엔진 얹고 달린 터빈 카, 왜 실패했을까

2017-08-08     안민희
세계의 자동차들 (40) - 비행기용 엔진 얹고 달린 크라이슬러 터빈 카

[안민희의 드라이브 스토리] 안녕하세요. 오늘은 비행기에 주로 쓰이는 가스터빈 엔진을 얹고 달린 자동차를 소개합니다. 가스터빈 엔진은 압축되어 들어온 공기에 바로 불을 붙이는 구조입니다. 출력이 높고 다양한 연료를 사용할 수 있을뿐더러 진동이 적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비싸고 피스톤 엔진보다 출력 조정이 느립니다. 게다가 이물질로 인한 손상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편 자동차에 이를 적용하려던 시도도 있었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930년대. 보잉이 첫 여객기를 만드는 등 항공 산업이 대중에게 다가가던 시대다. 당시 항공 산업은 온갖 고급 기술의 집약체였다. 한편 크라이슬러는 1930년대 후반부터 가스터빈 엔진을 자동차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첨단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하면 어떤 이점이 있을지 알아보는 것은 당연했다.

허나 자동차용 가스터빈 엔진을 만들기에는 상당한 열과 배기가스의 발생을 고려해야 했다. 따라서 가스터빈 엔진을 얹은 자동차를 만들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후 크라이슬러는 1954년에 플리머스 벨비디어(Plymouth Belvedere)에 자동차용 소형 가스터빈 엔진을 얹은 시제차를 만들어 시험을 진행했다.



1956년 3월에는 터빈 엔진 자동차로 뉴욕에서 LA까지 약 4일간 4,860km 거리를 8.5km/L의 연비로 달려 성능을 증명했다. 성공의 가능성을 본 크라이슬러는 많은 특허를 출원했으며 터빈 엔진 프로그램에 더욱 힘을 쏟았다. 1961년에는 3세대 터빈 엔진을 발표했다.

3세대 터빈 엔진은 130마력의 출력을 냈다. 공회전은 약 20,000rpm. 시속 192km로 달릴 때는 회전수는 60,000rpm으로 회전했다. 가솔린, 디젤 등 여러 연료로도 달릴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심지어 크라이슬러는 땅콩기름으로도 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크라이슬러는 다양한 모델에 터빈을 얹고, 콘셉트카 만들어 연신 쇼에 내보내며 ‘엔진의 미래’를 과시했다. 당시 미국 콘셉트카의 분위기는 최첨단, 미래를 줄곧 제시했다. 크라이슬러 또한 가스터빈 엔진 기술로 자신들의 기술적 우위성을 드러내길 희망했다.

한편 가스터빈 차의 오리지널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다른 모델에 가스터빈 엔진 달아 내보내는 것은 미래에 이런 엔진이 실릴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는 좋았지만 정작 강렬한 임팩트를 만들기는 부족했다. 그래서 디자인은 크라이슬러가 하고 차체 제작은 기아(Ghia)에게 맡겼다.



기아가 차체를 보내면 크라이슬러의 터빈 연구 센터에서 터빈 엔진 달아 완성했다. 많은 대수를 만드는 차가 아니니 크라이슬러에서 직접 만들기보다 다른 곳에 외주 주는 쪽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럼에도 비싸긴 했다. 당시 1대당 추산 비용은 5만5,000달러나 됐다. 지금 가치로 치면 약 4억 3,600만원 정도 수준이다.

크라이슬러는 1962년 5대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시험 주행에 나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그리고서는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총 50대의 가스터빈 엔진 실험용 자동차를 추가했다. 그리고 모두 203명의 시범 운전자들을 뽑아서 직접 몰아보도록 차키를 내줬다. 참고로 차 키의 모양이 전부 똑같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가스터빈 엔진은 실제 주행 시험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내구성이었다. 크라이슬러가 사용하지 않을 것을 권장한 유연 휘발유를 사용했기 때문인데, 납이 가스터빈에 누적되면서 망가졌기 때문이다. 당시 가장 구하기 쉬운 연료가 유연 휘발유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앞섰다는 생각이 든다.

크라이슬러는 가스터빈 자동차로 총 160만㎞의 주행 데이터를 쌓았다. 주행 시험과 함께 계속 내구성과 안정성을 끌어올렸던 크라이슬러였지만, 사용자 프로그램과 전시 계획이 끝나자 46대의 자동차를 폐기처분했다. 터빈 엔진의 미래는 불분명하다고 판단한 크라이슬러가 프로젝트를 폐기한 것이다.



관리의 문제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차를 폐기했다지만 후대에 남길 문화재로서 자동차를 바라본다면 아쉬운 일이다. 총 9개의 크라이슬러 터빈 카가 남았다. 이 중 대다수는 엔진을 제거하고 박물관으로 보냈다. 단 2대의 크라이슬러 터빈카만 정상적인 상태로 개인 수집가의 손에 넘어가 종종 이벤트에 등장하곤 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안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