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로 회자되던 마이바흐를 ‘대중적’으로 녹인 벤츠
2017-08-10 김종훈
대우받는 기분이 절로 드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500 뒷좌석
[김종훈의 자동차 페티시] 고급 세단의 가치를 생각해본다. 각종 차량 안전 신기술? 안정성이야말로 최우선이다. 그 다음은 운동성능? 물론 가격에 합당한 운동 성능을 제외할 순 없다. 하지만 ‘쇼퍼 드리븐’ 자동차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운동 성능에 앞서 뒷좌석에 공력을 집중한다. 차주가 앉을 바로 그 자리. 뒷좌석 수준에 따라 고급의 단계가 갈린다. 뒷좌석이야말로 고급 세단의 척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높은 등급을 부른다. 전통 있는 수작업 럭셔리 브랜드 대표 세단까지 올라가면 끝을 경험할 수 있다. 롤스로이스 팬텀이라든가 벤틀리 뮬산이라든가. 모든 면에서 최고를 지향하고, 소재 하나하나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제한 없는 가격이니 뭔들 못 하겠나. 그들의 뒷좌석을 논하는 건 흥미가 떨어진다. 최고가 아닌 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 안에서 가격을 절충해본다. 이른바 최고급 세단의 ‘가성비’랄까. 간단하지 않다. 그 안에서 이것저것 잴 게 많아진다. 계산 끝에 도달한 곳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500. 메르세데스-벤츠가 죽였다가 다시 살린 그 브랜드. 고급 세단의 ‘천외천(天外天)’으로 군림하던 그 브랜드. 벤츠는 마이바흐를 AMG처럼 서브 브랜드로 부활시켰다. 어떻게 보면 강등이지만.
마이바흐는 벤츠라는 이름 아래 되살아났다. 벤츠 입장에선 활용했달까. 우선 ‘합리적’으로 가격을 조절했다. 과거 천외천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배신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물론 몇 명 안 됐겠지만. 대신 (상대적으로) 대중적 위치를 노렸다. 전설로 회자되던 그 마이바흐를 S클래스에 녹인 셈이다. S클래스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솔깃할 결정이었다.
그 결과 괴물이 탄생했다, 라기엔 조금 미흡하다. 서브 브랜드니까. S클래스와 놓고 보면 뭐가 변한지 잘 모를 수도 있다. 우선 휠이 독특하다. 보통 휠은 무늬로 멋을 부린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오히려 무늬를 메워 멋을 부렸다. 넓적한 휠이 고풍스럽달까. 웃돈 주고라도 채택할 옵션이다. 두툼한 C필러와 C필러에 붙은 마이바흐 엠블럼도 사소한 차이다. 그것 외에는 외관에서 특별히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차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서브 브랜드니까.
그렇다면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단지 엠블럼 붙인 가격일까? AMG는 성능을 특화했다. 마이바흐는 서브 브랜드로서 뒷좌석을 특화했다. 고급 세단의 등급을 좌우하는 그 뒷좌석 말이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S클래스 ‘롱 휠베이스’ 모델보다 휠베이스가 길다. 무려 20cm나. 즉, 공간이 넉넉하다. 더 챙긴 공간을 뒷좌석에 할애했다. 등급이 올라간다.
뒷문을 열면 (옵션에 따라 다르겠지만) 두툼한 흰색 시트가 기다린다. 격자무늬 나파 가죽이 부드럽게 엉덩이를 반긴다. 앉으면, 굳이 휠베이스 수치를 몰라도 넓다고 느낀다. (사람에 따라서) 두 다리 쭉 뻗어 스트레칭도 할 정도다. 일단 그 여유에 흐뭇해진다. 운전석 인테리어가 S클래스와 비슷하더라도 상관없을 정도로. 앞쪽으로 갈 시선이 뒷좌석 공간에 머문다. 머물 만큼 공간이 넓다. 넓은 뒷좌석은 고급 세단의 기본 아닌가. 기본이 탄탄하다.
넓기만 할 리 없다. 그 공간을 어떻게 꾸미는가 하는 점도 고급 세단의 등급을 좌우한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마이바흐 이름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전통과 기품으로 뼈대 만들고, 예술품 같은 소품으로 치장하진 않았다. S클래스의 모던한 인테리어가 기본이다. 마이바흐다운 가격을 덜어내며 그에 따르는 사치도 덜어냈다. 오직 고급스런 쓸모에 집중했다.
기품 대신 기술을 선보인다. 짙어지며 투과율을 달리하는 파노라마 선루프라든가, 운전석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하는 음성 증폭 시스템이라든가. 편의장치도 마찬가지다. 유럽 어느 산골의 유서 깊은 나무로 만든 우드 트림 따윈 없다. 대신 접이식 간이 책상을 달았다. 비즈니스 클래스처럼. 좌석에 달린 지지대에 다리를 얹고 접이식 책상에서 업무를 보노라면, 대우받는 기분이 든다. 전용 헤드폰으로 음악 듣고, 차량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라도 마시면 더욱.
딱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고급 세단의 요소를 모두 품었달까. 감성적인 사치는 과감히 덜어내고 이성적인 목적성을 극대화했다. 그러면서 가격은 S클래스 롱 휠베이스 모델 정도다(메르세데스-마이바흐 S500 기준). 마이바흐 엠블럼의 가치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싸다고 느껴진다(물론 주 고객 기준이다). 최고급 세단이라고 해서 ‘가성비’가 없을까?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뒷자리는 그 효율성을 획득한다. 챙길 건 다 챙긴다. 역시 벤츠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