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야 하는 현대기아차에게 카셰어링 사업이란
2017-08-12 이진우
현재 뭐라도 해야 하는 현대·기아차에게 카셰어링 사업은 새로운 기회의 창구가 될 수 있다
[이진우의 불편한 진실] 이달 초 기아차가 카셰어링 서비스 ‘위블’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현대차도 오는 9월 카셰어링 브랜드 ‘딜카’를 론칭한다. ‘위블’은 사용자 편의를 위해 아파트 단지 등 주거지까지 공유차를 제공하고, ‘딜카’는 고객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원하는 차를 배달하는 방식이다. 현재 현대·기아는 한국에서 내수 점유율이 7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카셰어링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사실 현대·기아는 늦은 편이다. 다임러 그룹은 지난해 말 P2P 카셰어링 플랫폼 크루브를 출시했다. 자동차 오너가 자신의 차를 공유해 수익을 내는 플랫폼이다. 다임러는 이미 2008년부터 유럽에서 카2고라는 자동차 공유 사업 운영하고 있었다. 다임러 외에도 폭스바겐 퀵카, 아우디의 아우디앳홈, BMW 드라이브나우, PSA의 프리2무브, GM 메이븐 등 이미 많은 제조사들이 자동차 공유 플랫폼을 내놓았다.
여러 사람이 한 대의 차를 공유한다는 건 그만큼 자동차 판매량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실제로 컨설팅 기업 프로스트 앤 설리번은 “공유차 한 대가 종례에는 15대의 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까지 내놓기도 했다. 차를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제조사가 앞장서서 카셰어링 사업에 뛰어드는 건 모양새가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현대·기아차가 카셰어링 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 건 변화하는 자동차 생태계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을 예로 들면, 현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삼포세대를 넘어 오포, 칠포세대로 불리고 있다.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여기에 희망과 취미도 포기한다는 말이다. 엄청 높은 등록금을 내기 위해 학자금대출을 받아서 공부해도 취업할 곳이 많지 않다. 취업이 안 되면 대출금을 갚지 못하니 신용불량자가 된다. 그런데 이들이 차를 살 수 있을까? 다행히 취업이 된다 해도 수천만 원에 달하는 학자금대출을 먼저 갚아야 하니 차를 살 돈도 없다. 돈이 있다고 해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대중교통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또 차를 운전하면 스마트폰을 볼 수가 없다. 하루 종일 게임하고 SNS, 웹툰, 동영상, 카카오톡을 봐야하는 그들에게 자동차 운전은 스마트폰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해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연결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넣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실효성을 거둔다는 소식은 없다.
잠재적 또는 실질적 고객이 줄어드는 환경은 미래 자동차 시장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컨설팅 업체 매켄지는 “자동차 공유로 연평균 3.6퍼센트였던 세계 자동차 판매 증가폭이 2030년엔 2퍼센트로 줄어들며 신차 판매 10대 중 1대가 공유에 쓰이고 2050년에는 10대 중 3대가 공유용으로 판매될 것”이라 전망했다. 현대∙기아차가 공유사업에 뛰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자 판매가 줄지만 공유 목적의 소비가 창출되니 사업체를 차려 이쪽으로 차를 팔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차들은 여러 사람에게 공유되면서 새로운 수익을 안겨준다.
자동차 공유는 다른 방식으로 현대·기아에게 기회의 장을 열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자동차 제조사는 더 많은 소비자가 자사의 자동차를 경험하길 원한다. 그래서 전시장을 운영하고 다양한 시승 이벤트를 펼친다. 현대·기아도 지역 곳곳에 시승센터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예약만 하면 2시간 정도 탈 수 있다. 그런데 딜카와 위블은 소비자 집까지 찾아가서 자동차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소비자에게 돈을 받으면서 말이다.
카셰어링은 ‘경험의 제공’ 외에도 ‘정보의 습득’이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카셰어링은 목적지가 뚜렷한 실질적 이동이다. 따라서 시승센터에서 얻어낼 수 없었던 소비자들의 이동경로를 파악할 수 있고 나이별, 성별, 직업별, 지역별 운전성향이나 차종 선호도 등 세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새로운 자동차에 대한 고객 반응을 모니터하기에도 좋다. 이렇듯 카셰어링은 소비자가 자동차를 이용하면서 생성되는 실질적인 정보를 캐내기에 좋은 플랫폼이다. 이런 정보들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 중요한 자료가 된다.
현대․기아차의 지난달 내수 점유율은 69.6퍼센트로 70퍼센트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판매량은 예전만 못하다. 인구는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점점 줄어드는 젊은층은 차를 사야할 필요성이 없거나 살 여력이 없다. 뭐라도 해야 하는 현대·기아차에게 카셰어링은 새로운 수입 창출을 위한 루트이며 신차 기획을 위한 정보의 창구다. 향후 5년 내에 1조원 시장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카셰어링 시장이 현대․기아차에게 돈을 벌어다 줄지는 모르지만, 카셰어링 사업으로 얻은 소중한 정보가 좋은 차를 만들고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는데 좋음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진우(모터트렌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