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는 왜 ‘죽사남’에 직접 협찬하지 않았을까

2017-08-17     강희수·정덕현


롤스로이스와 ‘죽사남’ 최민수의 의도적인 비현실
<죽어야 사는 남자>의 자동차들 (1)

[강희수·정덕현의 스타car톡] 롤스로이스가 세계적인 명차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유명한 롤스로이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이들도 드물다. 그래서 롤스로이스는 이름만큼 그 실체도 비현실적이다. 아마도 우리에게 아랍 에미리트의 만수르라는 이름이 주는 뉘앙스도 비슷할 것이다. 그가 억대부자도 아닌 ‘조대부자’라고 불려도 그 삶의 실체를 우리는 잘 모른다. 출퇴근을 헬기로 하고 전용 주차장에는 이른바 슈퍼카들이 너무 많아 흔해 보인다는 그 삶은 그래서 우리에게는 비현실적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방영되고 있는 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의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최민수) 같은 아랍권 보두안티아 공화국의 억만장자가 롤스로이스를 타는 장면은 잘 어울린다. 비현실과 비현실의 만남. 그 조합에 대해 너무나 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자동차 전문기자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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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이 드라마는 : <죽어야 사는 남자>라는 드라마는 특이하게도 1970년대 중동 붐으로 그 곳에 갔다가 사망처리 됐지만 큰 성공을 거두어 보두안티아 공화국의 석유부자가 된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한국인 이름 장달구, 최민수 분)이 뒤늦게 딸이 있다는 걸 알고 그녀를 찾아 한국에 와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 설정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판타지를 건드리고 있다. 죽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가 어마어마한 석유부자라니...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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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이하 정) : 이 드라마에서 첫 회부터 내 시선을 잡아 끈 건 자동차였다. 이 코너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등장하는 자동차를 눈여겨보게 되는데 사막에서 백작이 모래폭풍을 뚫고 추격을 따돌리는 데 나온 슈퍼카(아마도 페라리가 아닐까 싶은데)도 그렇고, 딸을 찾아 한국 땅을 밟았을 때 탄 럭셔리카(아마도 포르셰가 아닐까)도 그랬다. 하지만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이전까지는 말만 들었지 그 실체를 잘 보지 못했던 롤스로이스는 특히 눈에 들어왔다.

강희수(이하 강) : 사실 이 드라마는 자동차 선정에 있어서 고충이 좀 있었을 듯싶다. 이런 엄청난 부자가 타는 차니 일반적인 차를 넣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동으로 건너가 보두안티아 공화국의 백작이 된 한국인’, ‘플레이보이 억만장자’…. 따지고 들자면 인물 설정에서부터 드라마가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베테랑 연기자 최민수가 이 캐릭터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의 ‘비현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최민수는 ‘비현실’을 억지로 ‘현실’이라고 우기지 않았다. 오히려 알리 백작의 캐릭터를 ‘더 비현실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드라마 시청자들은 ‘설정이 황당하다’는 푸념을 할 겨를이 없다. 영화 <마스크> 속의 짐 캐리를 연상시키는, 최민수의 현란한 개인기에 취해 딴 생각은 할 틈을 찾지 못했다.



정 : 정말 이번 드라마에서 최민수의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과장되게 연기하는데 너무 몰입이 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하나의 캐릭터로 받아들이게 했다. 과거 <모래시계> 태수의 이미지가 지금껏 최민수에게는 인생 캐릭터라고 여겨졌는데,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하나 더 갖게 된 것 같다.

강 : 힘든 연기였을 것 같다. 그런데 연기야 최민수 몫으로 돌리면 되지만, 그렇다고 제작진의 고민이 끝나는 건 아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왕가의 왕자이자 대부호인 만수르에서 인물을 따온 듯한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은 어떤 차를 타야 어울릴까 하는 고민이 남기 때문이다. 번개처럼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다. 유구한 역사와 고고한 이름값을 지켜나가고 있는 ‘롤스로이스’다.

정 : 사실 그 차가 롤스로이스인지도 잘 몰랐다. 그 차가 처음 등장하는 건 백작이 사위인 강호림(신성록)이 일하는 은행을 찾아가는 장면에서다. 지점장이 직접 나와서 차 문을 열어주는데 백작이 위풍도 당당하게 내려서 특유의 과장된 포즈로 은행에 들어간다. 특이한 건 보통 자동차 신이면 주인공이 직접 차를 모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얼굴은 안 나오지만 전용기사가 차를 몬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백작 정도 되는 대부호이니 그럴 수도 있을테고 실제로도 롤스로이스 정도를 타는 이들은 전용기사를 쓰는 경우가 다반사이겠다 싶었다. 하지만 늘 따라다니는 비서 압달라(조태관)가 있는데도 전용기사가 따로 차를 모는 게 조금 이상해보였다. 뭐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 등장하는 롤스로이스는 협찬된 PPL이 아니더라.



강 : 어떤 이유에서인지 ‘롤스로이스 모터 카(Rolls-Royce Motor Cars)’의 한국 딜러는 제작진에 차를 협찬하지 않았다. 유추하건데, 드라마 주인공의 코믹하고 과장된 캐릭터가 롤스로이스 브랜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롤스로이스 관계자는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죽어야 사는 남자>의 제작진은 주인공 알리 백작의 차로 롤스로이스 ‘고스트’를 선택했고, 웹마케팅과 오토모티브 마케팅을 수행하는 모 종합광고홍보대행사를 통해 이 차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정 : 얘기 들어보니 이번 롤스로이스는 촬영을 할 때 전담기사가 직접 운전을 했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안전과 편리를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일 게다.

강 : 롤스로이스에 대해 말하면 이 차는 1906년 영국에서 태동해 지금은 BMW 그룹에 속해 있는 명차 브랜드다. 이름도 두 창업자 찰스 롤스와 헨리 로이스에서 따왔다. 영문 ‘R’자를 두 개 겹친 브랜드 로고도 ‘롤스’와 ‘로이스’의 첫 철자에서 비롯됐다. 그 대단해 보이는 이름과 로고가 알고 보면 좀 싱겁기는 하다. 롤스로이스 브랜드의 첫 차는 설립 1년 뒤인 1907년 ‘실버 고스트’로 탄생했고, 이후 110년간 세계적 명차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정 : 다른 차들은 그래도 손에 잡히는 느낌인데 이상하게도 롤스로이스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

강 :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 있다. 지난 100년간 생산 된 롤스로이스의 60% 이상이 아직도 도로 위를 달리고 있거나, 전시장에 진열 돼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죽어야 사는 남자>에 등장하는 ‘고스트’의 원조가 된 ‘실버 고스트’는 1925년까지 생산 됐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째각거리는 시계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은빛 유령’은 이미 이 때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총 7,870대가 생산 됐다. 잠시 잊혀졌던 ‘고스트’는 2009년 ‘실버’라는 수식어를 떼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모던하고 정교한 스타일을 자랑한 고스트는 롤스로이스 브랜드의 비약적인 판매 신장을 이끌게 된다. <죽어야 사는 남자>에 등장하는 ‘고스트’는 2014년에 등장한 ‘고스트 시리즈 Ⅱ(Ghost Series Ⅱ)‘다. 고스트의 상징적인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편의성과 역동성이 강조 된 차로 손질됐다. 우리나라 연예인 중에서는 장근석이 애마로 아끼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 : 그런 비현실적인 느낌 때문인지 롤스로이스와 이번 <죽어야 사는 남자>의 최민수의 연기는 너무 잘 어우러졌다고 보인다. 아까도 말했지만 최민수는 비현실을 현실이라 강변하기보다는 그저 비현실을 그대로 캐릭터로 만들었다. 롤스로이스가 가진 이미지가 그렇지 않나.



강 : 그래도 롤스로이스는 최근 들어 그 이미지를 살짝 벗겨내고 약간의 타협을 하고 있다. 110년 전통을 자랑하는 롤스로이스지만 앤티크(antique)를 개성의 표현으로 여기는 젊은 세대들에겐 희소성을 지닌 매력적인 브랜드이기도 하다. 장근석, 지 드래곤, 도끼, 김재중 등 젊은 연예인들이 롤스로이스를 타는 이유도 그러하다. 롤스로이스도 이 같은 세태에 맞춰 약간의 타협을 했다. 젊어지기다. 전통적인 롤스로이스를 가장 잘 표현한 ‘팬텀’에서 모던한 스타일에 역동성을 더해 젊은 취향을 일부 받아들인 ‘고스트’, 한발 더 나아가 직접 운전하는 재미를 지향하는 ‘레이스’까지 향유 세대를 큰 폭으로 확장하고 있다. 2.5톤에 이르는 육중한 몸으로도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기까지 4.9초에 불과한 고성능 컨버터블 ‘던 블랙 배지’도 만들어 내는 판이다.

정 : 물론 여전히 그 비현실적인 독보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롤스로이스 역시 지금 세대에 발맞추기 위한 노력으로 젊은 세대에게도 소구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것이 최민수의 경우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서 최민수의 과장연기를 통한 코믹한 캐릭터 구축은 비현실적이지만 그 연기감각은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공감을 얻었다. 과거 <모래시계> 때의 과도한 비장함을 떠올려보라. 그런 연기는 지금 세대들에게는 지나치게 심각해서 오히려 웃음이 나는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보면 최민수도 과거의 카리스마를 한 차원 내려놓는 모습으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간 면이 있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과장됨과 코믹함이 롤스로이스 측에서는 자사의 차 이미지에는 아직까지는 너무 나갔다는 판단을 하게 했을 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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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수의 이 차는 : 젊어지기 위해 약간의 타협을 하고 있지만 롤스로이스가 절대 버릴 수 없는 한 가지 고집이 있다. 바로 ‘비스포크(Bespoke)’다. 비스포크는 우리말로 ‘주문 맞춤 제작’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 하는 차가 아니라, 주문자의 취향에 따라 색상이나 문양, 재질까지도 다르게 만들어지는 시스템이다. 롤스로이스의 실내외 색상과 품목은 자그마치 4만여 가지나 된다. 아무 롤스로이스를 두고도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차’라고 부르는 이유는 비스포크 방식 때문이다.

아름다운 경치가 찍힌 사진을 제시하며 “실내를 이 디자인으로 해 달라”고 주문하면 그 콘셉트에 맞게 문양을 꾸민다. 물론 차에 적용되기까지에는 롤스로이스 장인들의 창의적 응용 과정을 거친다. 사연이 있는 고목(古木)을 갖고 가 대시보드의 장식으로 쓰고 싶다고 주문하도 안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적용이 가능하다.

배기량 6,600cc, V12 트윈터보 엔진을 장착해 최고 출력 563마력을 내는 고스트 시리즈 Ⅱ의 기본 가격은 스탠다드 휠 베이스가 4억 1,000만 원, 익스텐디드 휠 베이스가 4억 8,000만 원이지만 어디까지나 이 가격은 기본가일 뿐이다.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가격은 상상 이상으로 높아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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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 계속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x 자동차전문기자 강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