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가 고작 렉서스를? ‘죽사남’ PPL 어색했던 까닭

2017-08-19     강희수·정덕현
<죽어야 사는 남자>의 자동차들 (2)

[강희수·정덕현의 스타car톡] 돈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는 부자들은 무슨 차를 탈까. 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의 아랍 부호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최민수)이라는 캐릭터는 바로 이런 궁금증을 자극한다. 아랍의 ‘조대부자’들은 전용주차장 가득 슈퍼카를 콜렉터처럼 수집한다고 하는데, 그런 그가 딸을 찾으러 한국에 오는 이 드라마에서 그는 어떤 차를 탈까 궁금한 것. 물론 롤스로이스가 등장하긴 하지만 <죽어야 사는 남자>는 이밖에도 꽤 많은 차량들이 나왔다. 그것이 과연 적절했는가에 대해 자동차 전문기자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이야기를 나눴다.



정덕현(이하 정) : 이 꼭지를 위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이번 여름휴가로 두바이를 다녀왔다. 그런데 가기 전에 <죽어야 사는 남자>를 소재로 이번 글을 쓸 것이라고 했기 때문인지 그 만수르가 사는 나라의 자동차들을 유심히 보게 됐다.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서 가이드한테 자동차 관련 질문도 많이 해봤다. 정말 두바이나 아부다비 같은 아랍 에미리트의 부호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부자들이 많더라. 부계의 혈통을 이어받은 에미라트들은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을 엄청난 부자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들이 타는 차들이 궁금해질밖에 없었다. 하지만 온통 슈퍼카들이 거리를 채울 것 같은 상상은 하나의 편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훨씬 평범한 차들이 대부분이었고, 간간이 페라리 같은 슈퍼카가 지나가도 우리처럼 그 차종 때문에 그걸 탄 사람이 엄청난 부호이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 사람들은 번호판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왕이 1번을 타고, 왕가 사람들이 그 이후의 번호들을 순서대로 탄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차보다 번호판을 더 유심히 보더라. 한 때 왕의 번호판 1번이 경매로 나온 적이 있는데 몇 백억에 달하는 고가로 판매가 됐다고 한다.



강희수(이하 강) : 차보다 번호판이라...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만큼 돈이 많다는 이야기일 거다.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에도 주인공이 아랍의 억만장자라는 설정에 걸맞게 ‘럭셔리’한 차들이 틈틈이 등장한다. 럭셔리카의 상징인 롤스로이스를 택시 부르듯 타고 다니면서, 시가 4억 원이 넘는 페라리를 장난감 고르듯 단박에 사 버린다.

정 : 사위와 딸의 자동차를 사주기 위해서 매장에 가는데 슈퍼카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어떤 차를 살까 사위가 고민을 하자 이 아랍 부호 백작은 둘 다 사버리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위 역시 속으로 “나도 하나” 생각하는데 백작은 그걸 읽었다는 듯 “하나 고르라”고 말한다. 그런 장면들이 우리에게는 비현실적이지만 이번 두바이에서 그들이 사는 삶을 봤더니 그게 그렇게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 바닷물을 끌어와 담수로 변화시켜 호수를 만들기도 하고 아예 인공섬을 만들어 전 세계 부자들에게 분양을 하기도 한다. 그게 다 남다른 부가 있어 가능한 상상들이라 생각됐다.



강 : 그런데 드라마로서 이런 상황이라면 자동차 브랜드들은 되레 PPL을 주저한다. 특정 브랜드 하나가 부각 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차종이 등장하거나, 단순히 일회성 배경으로 차가 노출 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또는 CF 제작자들은 이럴 때는 차를 협찬 받는 게 아니라 전문 대행사로부터 비용을 지불하고 촬영 기간 동안 빌려 쓴다. <죽어야 사는 남자>에는 이 방식을 통해 다양한 슈퍼카들이 ‘억소리 나는’ 소품으로 활용 되고 있다.

정 : 드라마로서는 아랍에서 딸을 찾으러 한국에 온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차들을 리스하듯이 타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또 그런 성향이 아랍 부호들에게는 일상이기도 하다. 우리처럼 한 대 갖고 주구장창 타는 게 아니라 그날 기분에 따라 골라서 타는 게 그들이 생각하는 자동차니까.



강 : 최근 방영분에서는 겨자색으로 래핑 된 렉서스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ES GS LS로 구분 되는 세단 라이업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LS460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한때 ‘강남 쏘나타’로 불리던 렉서스가 만수르에게 웬말이냐”는 반응도 많았다. 남들과 다른 럭셔리를 추구하는 대부호에게, 프리미엄급이기는 하지만 대량 생산 되는 렉서스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

정 : 슈퍼카와 비교되니 그렇지 렉서스도 서민들에게는 만만찮은 가격 아닌가?

강 : 그렇다. LS460은 일반 모델이 1억 1,120만 원, 롱바디 모델이 1억 3,800만 원에 이르니 보통사람들의 시선에선 가격이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최민수가 연기하고 있는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이라면?



정 : 그런 점 때문에 사실 렉서스가 거기 들어가 있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 같다. 아랍 부호들은 슈퍼카가 일상일 테니 말이다. 심지어 그런 이야기도 들었다. 아부다비에 가면 왕자가 일하는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에는 헬기 착륙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즉 그 왕자는 우리처럼 출퇴근하는데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헬기를 탄다는 것이다. 정말 클래스가 다른 부유함이지만, 나 같은 서민들이 듣기에는 좀 재수 없는 면도 있었다(웃음).

그러니 딸이 쓴 대본을 드라마화한다고 그 제작사를 사버리는 백작이 렉서스를 탄다는 건 너무 어색할 수밖에. 물론 두바이의 길거리에서 유독 많이 발견되는 차는 렉서스나 도요타 같은 일본차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부호들이 타는 게 아니라 그저 일반인들이 타는 차들이다.



강 : 두바이에 일본차들이 많은 이유가 있나.

정 : 사실 조금 놀란 것이지만 렉서스 같은 일본차들이 굉장히 많았다. 특히 사막 투어 들어가는데 차량 대부분이 토요타의 랜드크루져였다. 사막 투어라는 것이 그 모래사막을 차로 랠리하듯이 속도를 내서 달리는 건데, 사막 곳곳에 랜드크러져들이 떼를 지어 달리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굉장한 경사를 막 달려서 넘어질 것 같은데도 잘 나가는 차가 참 신기했다. 그런데 왜 일본차들이 그리 유독 많은가 물어봤더니 그 차들이 다른 차들보다 훨씬 정교하다는 이미지가 박혀 있어서라고 하더라. 사막지대라 모래바람이 일상이다. 그래서 차가 빈틈없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고장이 잦다는 것이다. 일본차들이 굉장히 많았고 우리 차들은 생각보다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죽어야 사는 남자>에 나오는 백작 같은 사람은 렉서스보다는 다른 차를 타겠지만.



강 : 알고 보니 래핑 문제도 렉서스와 알리 백작의 부조화에 한 이유를 만들었다. <죽어야 사는 남자>에 노출 된 렉서스 LS460은 사실은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LS급의 대형 세단을 황금색(또는 겨자색)으로 변모시키는 ‘래핑’이 핵심이었다. LS460은 드라마에 나온 컬러가 애초에 없다. 자동차래핑은 특수 필름으로 자동차 겉면을 씌워 완전히 다른 느낌의 차로 만들어 내는 시공술이다.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컬러와 문양으로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운전자들이 래핑을 애용하고 있다. 드라마 제작자는 화려한 색상으로 탄생한 래핑 기술을 노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역시 시청자들의 눈은 날카로웠다.

정 : 사실 <죽어야 사는 남자>는 엄청난 부호를 캐릭터로 내세우는 작품이라 자동차 PPL이 만만찮았을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이 간다. 보통의 차가 아니라 슈퍼카들을 계속 등장시킨다는 것도 부담이고, 또 슈퍼카들 입장에서도 이 작품의 캐릭터 이미지와 과연 잘 어울릴까 고민이 생겼을 수 있다. 그래서 래핑한 렉서스가 등장했지만 여러모로 어색한 느낌을 준 건 어쩔 수 없었다.



epilogue. 막연한 편견들을 넘어야 실체가 보인다

<죽어야 사는 남자>는 초반 이슬람 비하라는 논란을 겪기도 했다. 우리가 막연히 아랍이라고 생각하면 떠올리는 편견들을 실상과 달리 등장시켜 그걸 실제로 본 이슬람 사람들의 공분을 산 것이다. 물론 제작사는 이에 대해 사과를 했고 의도가 아니었다며 해당 장면은 삭제 조치했다. 그런데 이 부자라는 이미지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게 이 드라마의 진짜 메시지다. 알리 백작은 엄청난 부자지만 결국 딸 한 사람의 사랑을 얻기가 쉽지 않다. 부자라고 해서 돈으로 뭐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자동차에 대한 것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흔히들 아랍 부호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슈퍼카를 떠올리고, 그 슈퍼카는 그 자체로 그 사람의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물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지만, 그런 돈의 부유함만으로 어떤 권위나 실제 지위가 얻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우리에게 자동차는 실용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 사람의 위치를 평가하는 상징물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이지만.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x 자동차전문기자 강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