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닉, 원색이 촌스럽지 않은 국산차 만나게 될 줄이야

2018-01-06     김종훈


오랜만에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기아차 스토닉

[김종훈의 자동차 페티시] 여백을 잘 살린 디자인. 특정 수입차 브랜드가 아닌 국산차에 이런 표현을 쓸 줄이야. 최근 국산차 디자인은 여백 운운하기 전에 강한 인상에 시선을 뺏겨버린다. 빈 공간을 음미하기에는 양념이 지나치게 강한 까닭이다. 짜릿하게 달릴 자동차야 성격을 드러내니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대체로 달리기 실력과는 상관없이 유행처럼 매섭게 치장한다. 이리저리 선을 긋고 꺾고 부풀렸다. 작은 차든, 큰 차든 욕망이 넘쳤다. 질릴 때가 한참 지났다.

기아차 스토닉은 욕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 심심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형제 차인 코나가 유독 강렬해서 더 대조적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달라졌다. 그동안 심심하다고 느낀 국산차가 있었나? 다르다는 점이 오히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첫인상은 지루했더라도 흐름에서 약간 비켜 선 디자인이 자꾸 바라보게 했다. 모두 자신을 봐달라고 과시하는 와중에 덤덤하게 서 있었으니까.



물론 스토닉도 유행에 맞게 눈초리를 잡아 늘렸다. 넓게 보이도록 좌우를 벌리고, 범퍼 쪽에 나름대로 치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딱 그 정도다. 복잡하게 선을 넣기보단 요소를 배치하는 수준이다. 그러고 나서 면을 그대로 살렸다. 보닛에 굴곡이 있지만 선보다는 면을 강조하게 처리했다. 선보다 면이 드러나는 디자인. 국산차에서 오랜만에 접하는 특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면의 힘이 느껴졌다. 작지만 단단해 보였다. 간결한 선으로 이루어진 면은 매끈해서 차량 전체를 보게 했다. 크기와 비율이 안정적으로 드러났다. 덜어낼수록 채워지는 디자인의 묘가 발휘됐달까. 무늬를 걷어내니 무늬로 표현할 수 없는 담백함이 드러났다. 오래 탈수록 이런 느낌은 더욱 진해질 거란 확신도 들었다. 한 달 전보다 어제 봤을 때가 더 보기 좋았으니까. 한 달 후에는 더 좋아질 테고. 몇 년 지나면 질리는 자동차, 그동안 숱하게 봤다.



스토닉은 노란색을 대표 색으로 내세운다. 디자인이 간결하기에 발랄한 색이 잘 어울린다. 요란한 치장 대신 색으로 시선을 잡아둔다. 보통 원색은 사진 찍을 땐 좋지만 도로에서 보면 뭔가 어색하다. 스토닉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채색이 어색해 보일 정도로 색을 잘 머금었다. 선 대신 면으로 자신을 드러낸 덕분이다. 투톤 역시 차체에 잘 스며든다. 예전보다 고심해서 색을 만든 점도 주효했다. 과거 국산차 원색 계열은 촌스러울 정도로 직설적이었다. 이젠 그 안에 채도를 조율할 여유와 실력이 생겼다. 덕분에 스토닉의 면이 더 강조됐다.

담담한 디자인은 외관에서 실내로도 이어진다. 차급에 맞게, 화려해 보이려고 치장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답게 그대로 놓는다. 그러면서도 딱 필요한 부분은 우레탄을 쓰거나 달리 처리해 ‘배려’한다. 스토닉에게 할당된 재원은 빤하다. 당연히 소박할 수밖에 없다.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요란하게 꾸미면 오히려 지저분해진다. 예전에 종종 그래왔다. 스토닉에선 그런 과시가 보이지 않았다. 실내 역시 덤덤하면서도 복잡하지 않게 비워뒀다.



어쩌면 스토닉의 미덕은 욕심을 버린 점이다. 작지만 작지 않게, 소박하지만 소박하지 않게 ‘보이려는’ 욕심을 부리면 고유 특징이 희미해진다. 자꾸 이런저런 걸 붙이면 달리 보이게 마련이니까. 번쩍거릴 순 있겠지만 특징은 뒤섞여 희석된다.

특징 없는 자동차는 재미없다. 그냥 이동하는 수단이나 재화로만 존재한다. 편리한 도구일 순 있어도 감정 교류하는 존재로 다가오지 않는다. 가격이 낮은 자동차도 합당한 멋과 맛이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스토닉은 간결하고 담백하게 채워 넣었다. 그러면서 과감하게 여백을 드러냈다. 덕분에 작지만 단단한 형체가 전면에 드러난다. 담백하면서 탄탄한 차라는 주장 또한.



스토닉은 작은 차다. 또한 실용적인 차다. 작은 차 즐겨 타는 유럽에선 스토닉처럼 작은 차를 단순하게 디자인한다. 굳이 화려한 치장으로 눈을 현혹시키지 않는다. 어울리지도 않으니까. 선보다는 면을 강조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어쩔 땐 너무 단순해서 심심할 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대신 간결한 만큼 오래 타도 질리지 않는다. 어떤 차종은 그 간결함 자체가 특징으로 오래 남는다. 스토닉도, 국산차 중에서 그런 지점에 서 있다. 그동안 너무 없어서, 더 반갑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