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삼성전자·현대차가 있어 참 다행이다
2018-01-14 김형준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1Gbps.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북미국제오토쇼(NAIAS)는 자동차 업계의 새해 시작을 알리는 무대였다. 매년 1월에 개최되며 (중국이 급부상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자동차시장의 한복판(디트로이트)에서 열린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NAIAS는 더 이상 자동차 업계 새해 첫 행사의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 CES가 있기 때문이다.
CES는 소비자가전박람회(Consumer Electronics Show)의 약자다. 명칭처럼 소비자용 가전제품을 다수의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자리다. 첫 행사는 1967년 여름 뉴욕에서 열렸고, 1978년부터 1994년까지는 라스베이거스(1월)와 시카고(6월)에서 격년제로 개최됐다. 지금과 같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매년 1월 열리기 시작한 건 1998년부터였다. 가전 업계에선 오래 전부터 명성이 자자했지만 자동차에 푹 빠져 있는 우리 같은 이들에게 CES가 조명 받기 시작한 건 2010년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포드, 토요타 등은 전기차, 수소 연료전지차를 CES에서 처음 공개했고 아우디처럼 그래픽 프로세서 회사와 함께 CES를 찾는 브랜드도 늘어났다. 가전업체를 제치고 기조연설을 하는 자동차 브랜드도 생겨났다(2011년 포드, 2012년 벤츠). 2012년 처음으로 CES에 자동차 전용 전시공간이 마련됐고, 이듬해부터는 자율주행 자동차와 관련한 소식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후 흐름은 우리가 보아온 그대로다. 더 발전된 자율주행 기술, 사물인터넷과 어우러진 각종 서비스, 스마트폰 생태계와 공존을 노린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이 소개됐고 하루가 멀다 하고 자동차 업체와 IT 업체의 협업 소식이 터져 나왔다. 자율주행(Autonomous)과 연결성(Connectivity), 공유(Sharing) 경제가 어우러진 새로운 이동성(mobility) 시대의 플랫폼으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였다. CES가 북미국제오토쇼를 제치고 자동차 업계의 새해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로 발돋움한 배경이다.
2018 CES도 자동차 관련 소식으로 뜨거웠다. 굵직한 키워드만 던져진 채 형태가 모호했던 미래 이동성의 모습이 보다 구체화된 게 이번 CES의 가장 큰 특징이다. 자율주행 시대를 향해 많은 이들이 품은 의구심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 자동차를 공유하는 것에 과연 즐거움이 있을까?’이다. 이에 대해 가장 명쾌한 해답을 내놓은 곳이 바로 하만 인터내셔널을 앞세운 삼성전자다. 지난해 3월 삼성전자의 100% 자회사가 된 하만 인터내셔널은 많이 알려진 음향 기기뿐 아니라 커넥티드 기술과 기업 자동화 솔루션에도 내공이 깊다. 그리고 이번에 하만의 이름으로 공개한 디지털 콕핏 플랫폼은 공유경제 시대 모빌리티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이 기술은 5G 이동통신,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플랫폼(하만 이그나이트 플랫폼),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모두 아우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안드로이드 OS 스마트폰 점유율 세계 1위인 삼성전자가 있다. 요약하자면 많은 사람이 함께 쓰는 공유 자동차에서 ‘나만의 주행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앱으로 본인이 선호하는 환경(실내온도, 선호하는 음악, 차의 주행 성격 등)을 설정하면 이를 클라우드 플랫폼에 담아두었다가 공유 자동차에 탑승했을 때 자동으로 반영한다는 설명이다.
음성 AI 비서는 삼성 빅스비뿐 아니라 아마존 알렉사, IBM 왓슨 등 다수의 음성 AI 서비스를 함께 지원하며, 탑승자마다 선호하는 환경을 개별적으로 반영할 수도 있다. 나아가선 사용자별 선호 환경 분석을 통한 영업/구매활동 지원, 사이버공격으로부터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보안 기능, 5G 네트워크를 이용한 완벽한 자율주행 지원 등도 이 플랫폼에 모두 담긴다. 하만 인터내셔널(과 삼성전자)은 차세대 이그나이트와 디지털 콕핏 플랫폼을 모듈화해 다수의 자동차업계에 제공하려 한다.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차세대 차량 내 네트워크도 관심 있게 살펴볼 만하다. 현대차그룹은 2016년 네트워크 솔루션 회사 시스코(Sisco)와 손잡고 차량용 네트워크 기술 개발에 들어갔고, 이번에 보다 구체화된 내용을 공개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기존 CAN 통신을 대체하는 차량용 이더넷 통신 기술이다. 현 CAN 통신방식은 데이터 처리용량이 125~500kbps(초당 500킬로바이트)에 불과한 반면 이더넷 통신 기술은 최소 100Mbps(초당 100메가바이트)에서 최대 1Gbps까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5G 네트워크 때문이다. 5G LTE 기술은 초당 1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 전송이 가능하다. 실시간으로 더 많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만큼 자동차와 주변사물간 소통이 원활해지고, 이는 매우 매끄러운 자율주행 기술의 구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차량 외부에서 아무리 많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돼도 차 내에서 이를 소화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현대차그룹-시스코의 이더넷 통신 장치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차량 내 제어장치를 하나로 통합하고 소프트웨어로 관리하면 차량의 경량화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과 시스코는 여기에 네트워크 보안과 고속 네트워크 제어 기술까지 더한 새로운 네트워크 플랫폼을 2019년 양산차에 적용해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자동차 제조사나 IT 기업들이 상용화 기를 공언하고 있음에도 자율주행, 커넥티비티, 개인맞춤형 서비스, 공유 자동차 등은 아직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게 사실이다.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은 탓이겠다. 하지만 ‘그’ 시대는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GM은 모든 주행구간의 완벽한 자율주행이 가능한 로보 택시를 준비 중이다. 쉐보레 볼트 EV를 토대로 한 로보 택시의 상용화 시기는 2019년, 즉 내년이다.
이동통신 표준화 기구(3GPP)는 5G LTE의 상용화 시점을 2020년으로 보고 있다. 5G 네트워크의 세계 표준이 그때 결정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5G는 차간 통신(V2V), 차대사물 통신(V2X)에 없어선 안 될 필수요소다. 2년 뒤부터는 이론적으로 완벽한 자율주행 구현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아우디는 시속 60km까지 자율주행이 가능한 SAE 레벨 3 기준 자율주행 기술(트래픽 잼 파일럿)을 완성하고 신형 A8에 얹었다. 레벨 3 시스템 중 판매 허가를 받은 차는 신형 A8이 처음이다. 현대차는 2021년까지 스마트시티 내에서 레벨4 기준 자율주행이 가능한 차를 상용화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그때까지 3년밖에 남지 않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모터트렌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