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팅어는 어떻게 G70을 제치고 ‘올해의 차’가 되었나
2018-01-24 강희수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밝아 오는 무렵, 자동차업계도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한해 동안 실적이 정리 되면서 잘한 일에 대한 포상과 잘못한 일에 대한 질책이 뒤따른다. 업계를 향한 외부의 평가도 이 시점에 일어난다. 미디어 집단이 선정하는 ‘올해의 차’(Car of the Year)도 그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회장 하영선)가 가장 먼저 기아자동차 ‘스팅어’를 ‘2018 올해의 차’로 뽑아 시상까지 마쳤다. 협회는 “스팅어가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자동차 시장의 퍼포먼스 세단을 성공적으로 개척했고, 상품성도 뛰어나 올해의 차로 선정하게 됐다”고 시상의 배경을 설명했다. 스팅어는 대상격인 ‘올해의 차’뿐만 아니라 ‘올해의 디자인’까지 받아 2관왕에 올랐다.
‘스팅어’는 국내 미디어집단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대단한 호평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8 북미 올해의 차’ 최종 후보에, 유럽에서는 ‘2018 유럽 올해의 차’ 후보에 올랐다. ‘2018 북미 올해의 차’는 1월 13일 개막한 ‘2018 북미 오토쇼’에서 혼다 어코드가 ‘올해의 차’에 뽑히면서 아쉽게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다는 것 만해도 대단한 성과다.
올해의 차가 어떤 과정을 거쳐 뽑히는 지를 알면 쉽게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지 못한다.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의 선정 과정을 통해 차의 일생에서 단 한번 노릴 수 있는 ‘올해의 차’가 어떻게 탄생하는 지 확인해 보자.
‘올해의 차’는 연말 시상식의 대명사인 엔터테인먼트나 스포츠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엔터테인먼트나 스포츠 영역에서의 의미 있는 상은 일반적으로 ‘신인상’과 ‘대상’이다. 신인상은 해당 분야에 처음 등장한 인물 중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이가 받고, 대상은 전체를 통틀어 한해 동안 가장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이에게 시상한다.
그런데 ‘올해의 차’는 신인상과 대상의 구분이 없다. 대개 5년 전후의 주기로 완전변경(풀체인지) 모델이 출시 되는데, 출시 된 그 해에만 ‘올해이 차’ 후보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인상 수상에 실패하면 심기일전해 대상을 노려볼 수 있는 기회가 ‘올해의 차’에는 없다.
경쟁률도 매우 치열하다. 2017년의 경우 아우디와 폭스바겐이 디젤 게이트의 여파로 신차를 거의 출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 출시 된 신차는 61종이나 됐다. 국산차가 15종이고 수입차가 46종이었다. 아우디 폭스바겐이 영업을 재개하는 2018년에는 무려 80여 종의 신차가 출시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60~80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차지할 수 있는 영예가 ‘올해의 차’다.
‘올해의 차’를 주로 미디어 집단이 선정하는 이유도 엄청난 신차 물량에서 기인한다. 자동차 업계 종사자들조차도 60~80여종의 신차를 모두 경험해 볼 수 없다. 대부분 자사 브랜드의 차와 경쟁차 정도만 타보는 게 현실이다. 신차를 소개하는 일을 업으로 하지 않는 한 1년 동안 출시 된 ‘올해의 차’ 후보를 모두 경험해 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팅어를 ‘2018 올해의 차’로 뽑은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는 말 그대로 자동차 전문기자들이 주축이 된 모임이다. 일반적인 매체의 자동차 담당기자는 순환보직이다. 정치 사회 경제의 다양한 취재 영역 중 하나로, 인사에 의해 보직을 맡게 되는 출입처다. 하지만 전문기자는 보직이동이 없이 오로지 자동차 하나만 파고든다. 자동차 기자 경력도 10~30년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1년 동안 출시되는 거의 모든 차를 타본다. 브랜드에서 미디어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출시 및 시승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1, 2일씩 차를 타 보는 개별시승을 1년 내내 한다.
처음에는 일간지나 전문잡지 등에서 자동차 담당기자로 일하다가 미디어 환경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 되는 과정에서 온라인 전문지로 터전을 옮겨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가 2012년에 출범한 것도 2010년을 전후로 온라인 중심의 미디어 환경 변화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협회 회원도 매체 자격이 아니라 기자 개인 자격으로 가입 된다. 한 매체에 2명의 회원이 나올 수도 있고, 매체를 옮겨도 전문기자 신분을 유지하는 한 회원 자격에는 지장이 없다.
2012년 3월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는 36개 언론사 소속 45명의 회원으로 출범했다. 자동차분야 취재경력 3년 이상, 동종업계 7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기자라야 정회원이 될 수 있었고, 한국 자동차 산업의 현주소를 조명하고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정강을 세웠으며 그 해 나온 신차를 대상으로 이듬해 ‘올해의 차’를 뽑기로 했다.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는 매년 연말 ‘올해의 차’를 뽑기 위해 2차에 걸친 선정 절차를 밟는다. 1차는 일종의 서류심사다. 당해 출시 된 신차를 대상으로 회원 각자가 10대의 ‘올해의 차’ 후보를 뽑는다. ‘올해의 차’ 운영진에서는 이를 집계해 표를 많이 받은 순서대로 10대를 추려 ‘올해의 차’ 결선 후보로 추린다. 2차 심사는 12월 중순께 후보에 오른 10대를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마지막 실차 테스트(단거리 시승)로 열린다. 테스트 후에는 23가지에 이르는 항목에 개별 점수를 매긴 뒤 운영진에서 총점을 내 수상차를 최종 선정한다.
23가지 항목은 크게 디자인, 퍼포먼스, 편의/안전, 경제성, 혁신성으로 구분 되고 각 항목은 다시 3~7가지의 세부 항목으로 나눠진다. 23가지 항목에는 총점을 내기 전 항목별로 달리 주어지는 가중치를 적용한다. 전 항목에서 만점을 받을 경우 총점은 5700점이 되고 ‘2018 올해의 차’에 선정 된 기아자동차 ‘스팅어’는 총점 4,615점을 받았다. ‘올해의 차’와 함께 뽑는 ‘올해의 친환경’ ‘올해의 디자인’ ‘올해의 퍼포먼스’ ‘올해의 SUV’는 실차 테스트만 없고 뽑는 방식은 동일하다.
항목별로 가중치를 다르게 두는 이유는 체급의 차이에서 오는 핸디캡을 없애기 위함이다. “물건을 볼 줄 모른다면 비싼 걸 고르라”는 말처럼 가격 비싸고 럭셔리한 차가 좋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아간다면 시장에서 느끼는 만족도와는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럭셔리 브랜드는 동급의 럭셔리 브랜드 차와 경쟁을 하게 되고 대중 브랜드는 동급의 볼륨카와 ‘올해의 차’ 수상 경쟁을 펼치게 된다.
그 동안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차’ 면면들을 보면 협회 회원들이 어떤 요소를 중시하는 지 알 수 있다. 2012년 출범한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는 그 이듬해부터 ‘올해의 차’를 뽑기 시작했다. ‘2013 올해의 차’는 국산차 부문과 수입차 부문으로 나눠서 수상차를 가렸다. 국산차 부문에서는 기아자동차의 K9이, 수입차 부문에서는 렉서스의 ‘뉴 ES.’가 선정 됐다. K9은 기아자동차 K시리즈를 완성하는 플래그십 세단이고, ‘뉴 ES’는 궁극의 상품성을 자랑하는 렉서스의 볼륨 모델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국산차와 수입차 부문을 따로 뽑았기 때문에 국산 브랜드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여건이었다. 진정한 승부는 국산/수입의 경계를 없앤 2014년부터였다. 그 해, 강력한 후보가 맞붙였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대명사 메르세데스-벤츠가 ‘더 뉴 S클래스’를 내놓았고 현대자동차가 ‘신형 제네시스’를 출시했다. 더 뉴 S 클래스는 다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디자인의 패밀리룩을 완성한 플래그십 세단이다. 여기에 맞서는 신형 제네시스는 훗날 ‘제네시스 브랜드’ 파생의 기초가 된 히트 모델이다. 어느 차가 올해의 차가 되든, 수긍이 가는 여건이었다.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는 더 뉴 S클래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너무 높아 가격 경쟁력 면에서는 많은 감점 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에 참여한 회원들은 “도무지 약점을 잡아낼 수 가 없었다”며 S클래스를 선택했다.
2015년에는 인피니티의 ‘Q50’이 렉서스 하이브리드 SUV ‘NX300h’와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를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Q50은 당시 독일의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석권하고 있던 럭셔리 디젤 세단 시장에 신선한 도전장을 던진 것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벤츠의 디젤 엔진을 장착하고 포뮬러1의 레이싱 DNA가 개발 단계에서부터 적용 돼 국내 수입차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공기역학을 감안한 물 흐르듯 하는 디자인이 최고의 매력을 뽐내던 시기라 디자인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프리미엄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해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것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렉서스 NX300h도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Q50을 뛰어넘진 못했고, S클래스의 패밀리룩을 계승한 신형 C클래스는 더 이상 ‘올해의 차’를 넘볼 감흥은 주지 못했다. Q50이 ‘올해의 디자인’까지 2관왕에 오른 것을 보면 인피니티 디자인의 매력은 그 때가 정점이었던 듯하다.
2016년엔 현대자동차 준중형 세단 아반떼가 올해의 차에 오른다. 신형 제네시스에서 시작 된 ‘플루이딕 스컬프처 2.0’ 디자인이 쏘나타를 거쳐 아반떼에서 완결형으로 자리잡았다. 기동성 좋은 준중형에 안성맞춤인 듯 디자인은 맞아 떨어졌고, 7단 DCT 적용으로 변속감은 힘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웠다. 디젤 엔진의 경우 복합연비가 18.4km/l에 이를 정도로 경제성도 좋았다. 그 해 아반떼는 현대차에서 스핀오프 한 제네시스의 맏형 ‘EQ900’과 BMW의 럭셔리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i8’을 따돌렸다.
‘2017 올해의 차’는 르노삼성자동차의 신개념 중형 세단 SM6가 차지했다. SM6는 현대-기아자동차 중심의 우리나라 중형차 시장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기치 아래 탄생한 전략모델이다. 외관 디자인을 세련 되게 뽑고 내관을 고급스럽게 치장했으며, 안전성을 강화해 시장에서도 베스트셀링 카의 반열에 오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차의 성공으로 르노삼성자동차는 한 때 침체 됐던 분위기를 떨치고 재기의 메시지를 만방에 떨칠 수 있었다. 당시 자동차전문기자들은 디자인과 혁신성, 가성비에서 높은 점수를 줬다. 선정 과정도 극적이었다. 제네시스 G80이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는데 총점에서 SM6가 3,259점(당시 만점은 4,000점), G80이 3,257점을 얻었다. 단 2점차로 타이틀의 주인공이 가려졌다.
지난 11일 시상식을 가진 ‘2018 올해의 차’에서는 기아자동차 스팅어가 상패를 가져갔다. 스팅어는 그 동안 수입 브랜드의 전유물이었던 고성능 스포츠 세단 영역을 성공적으로 개척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1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콘셉트카로 첫 선을 보일 때부터 자동차 애호가들의 깊은 관심을 받았던 스팅어는 6년 동안 개선을 거듭해 작년 5월 양산차로 국내 시장에 투입 됐다. 관심과 기대 속에 ‘남자의 본능을 깨우라’는 메시지를 앞세운 스팅어는 보통사람도 가질 수 있는 현실 속의 퍼포먼스 세단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 시간이 4.9초(3.3 가솔린 터보 모델)에 불과하다는 점도 크게 화제가 돼, 국산 자동차도 일명 ‘제로백’을 따질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스팅어의 경쟁자는 형제 브랜드인 제네시스에서 나왔다. 역시 퍼포먼스 세단을 표방하는 G70이 강력한 경쟁자로 수상을 다퉜다. 5,700점 만점 중 스팅어가 4,615점을, G70이 4,588점을 얻었다. 근소한 차이는 디자인과 퍼포먼스, 혁신성에서 갈렸다. G70이 더 고급스러웠지만 협회 회원들은 혁신성에서 앞선 스팅어의 손을 들어주었다.
역대 수상차들에서 보듯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가 중시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혁신성이었다. 한국 자동차 산업, 나아가 세계 자동차 시장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었는가가 올해의 차를 선정하는 주된 요소였다. 좀더 낮은 가격에, 좀더 뛰어난 성능을 보이며, 좀더 안전하고 미래지향적인 신차가 나온다면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차 수상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자동차칼럼니스트 강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