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넥쏘가 자랑하고 싶은 것 혹은 숨기고 싶은 것
2018-02-14 김형준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609km. 얼마 전 현대자동차가 다음 달로 예정된 넥쏘 공식 출시에 앞서 시승 행사를 가졌다. 넥쏘는 2013년 등장한 투싼 FCEV의 뒤를 잇는 현대차의 2세대격 양산 수소 전기차다.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 수소 연료전지 전기 자동차, 연료전지차 등 국내에서 우후죽순으로 쓰이던 FCEV(Fuel Cell Electric Vehicle) 관련 표현은 슬슬 수소 전기차라는 명칭으로 수렴되는 분위기다. 실상 수소 전기차는 현대차가 넥쏘 출시와 함께 꺼내든 표현이다. 이전 투싼 FCEV(와 유럽의 ix35 FCEV)를 소개할 때는 수소 연료전지차와 수소 전기차 등을 혼용했던 그들이다. 하지만 인지도가 ‘매우’ 떨어지는 신종(新種)을 널리 알리려면 명칭은 통일하는 게 좋다. 자동차 세상에서 입지가 매우 좁은 FCEV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고.
그렇다. FCEV는 전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다. 배터리 전기자동차(Battery Electric Vehicle, BEV)가 최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것과 대비돼 갈수록 설득력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그렇다곤 해도 FCEV를 깨끗이 배제하긴 어렵다. 세상이 수소 에너지라는 카드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까닭이다. 유럽은 독일을 중심을 수소 에너지 사회를 진지하게 추진 중이고, 중국은 2035년까지 수소 전기차 100만대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 역시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하고 본격적으로 수소 에너지 사회를 추진 중이다.
한국에도 수소는 당장 가용한 에너지원이다. 이미 전국에서 연간 210만 톤 가량의 수소 연료가 생산되고 있고, 그중 140만 톤은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부생수소다. 그리고 10만 톤 가량은 당장 수소 전기차용으로 공급이 가능하다. 이는 수소연료 1kg으로 70~80km 운행이 가능한 수소 전기차 50만 대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에선 연간 120만대 가량의 신차가 판매된다. 전국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2200만대가 넘는다. 50만대는 신차 판매의 약 40%, 전국에 있는 차량의 약 3%에 해당한다. FCEV가 당장의 일상용 자동차를 대체하더라도 무리 없다.
문제는 충전 설비다. 현재 국내에 16곳의 수소 충전소가 있다. 이중 실제 사용이 가능한 충전소는 8곳뿐이며, 상업용 시설(4곳)을 제외하면 4곳에 지나지 않는다. 올해 안에 36곳까지 늘어날 예정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상황은 해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소 사회화에 적극적인 일본이 100곳 정도로 앞서 있고, 토요타와 혼다와 현대가 각별히 신경 쓰는 미국 캘리포니아도 31곳의 충전소를 갖추고 있는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소 전기차 제조사들은 항속거리를 힘주어 말한다. 현대차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번 넥쏘의 경우 ‘609km’로 현재까지 세계 시장에 출시된 수소 전기차 중 가장 긴 항속거리를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양산 수소 전기차는 토요타 미라이와 혼다 클래러티 퓨얼 셀, 그리고 투싼 FCEV 3종이다. 이들이 모두 출시된 시장은 미국으로, 이곳에서 석 대는 각각 312마일(약 502km)과 366마일(약 589km), 265마일(약 426km)의 항속거리를 인증 받았다(EPA 인증 기준). 그리고 현대차는 투싼 FCEV를 대체하는 넥쏘의 경우 EPA 기준으로 370마일(약 595.5km)의 항속거리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제조사인 현대차가 테스트한 수치이긴 하지만 실제 인증치가 이보다 크게 떨어질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 시점, 넥쏘가 최대 항속거리를 지닌 시판 수소 전기차라는 주장은 아주 그릇된 정보는 아니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 있다. 에너지원인 수소 탱크의 용량이다. 토요타 미라이는 약 5kg, 혼다 클래러티 퓨얼셀은 5.46kg의 수소 연료를 저장할 수 있다. 넥쏘의 경우 수소 탱크 저장용량이 6.33kg으로 이들보다 많다. 넥쏘가 두 경쟁모델보다 큰 수소 탱크를 갖출 수 있었던 데는 패키징 효율의 극대화에 있다. 현대차는 SUV 차체의 이점을 살려 작은 수소 탱크 3개를 바닥에 배치했다. 이를 통해 객실과 적재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수소 저장용량까지 넉넉히 챙길 수 있었다(대용량과 소용량 수소 탱크를 각각 하나씩 갖춘 다른 두 차는 적재용량에서 넥쏘에 크게 뒤진다). 실사용에 더 적합한 수소 전기차라는 점에서 넥쏘는 대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더 많은 연료를 싣고 있음은 드러내지 않은 채 가장 멀리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만 드러내는 모습을 달갑게만 보기는 쉽지 않다.
국내에 첫 선을 보이는 자리(지난 2월 5일 시승 행사)에서 차량과 관련된 정보를 ‘선별해’ 공개한 점도 입맛이 쓰다. 시승회 현장에서 공개한 자료엔 국내 출시 사양의 모터 출력이 154마력(113kW)으로 적혀 있다. 반면 2018 CES를 기점으로 소개된 미국 사양은 모터 출력이 120kW(약 161마력)로 국내 사양과 다르다. 또 연료전지 스택과 배터리가 낼 수 있는 최대 출력치(각각 95kW와 40kW)를 공개한 미국 내 보도자료와 달리 국내 사양은 이들과 관련한 정보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이후 현대차 쪽에 문의했고, 그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과 미국 출시 모델은 같은 사양입니다. 다만 지역 인증기준의 차이가 있어 전동기 출력의 수치가 다를 수 있습니다. 연료전지와 배터리 역시 한국과 미국 모델의 사양은 똑같습니다.” 연비(혹은 전비)도 아니고 전동모터의 출력이 인증방식 차이 때문에 달라진다는 설명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그들의 공식입장은 그렇다.
내수와 수출 사양의 차별화를 거들먹거릴 생각은 없다. 시판국가의 주행환경을 고려해 성능을 이원화하는 건 제조사가 마땅히 취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양국 출시 모델의 사양은 기술적으로 똑같기 때문에)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고 설명하고 있고, 나 역시 그러리라 믿는다. 관련 정보가 기재되지 않은 것 역시 배포한 보도자료의 지면에 한계가 있어 그 이상의 정보를 담지 못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지만 그들 설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도 없다. 다만 제품과 관련된 정보가 투명하고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은 점은 못내 아쉽다. 그것이 ‘세계 최대 항속거리’를 달성했다고 힘주어 말하는 새롭고 생소한 수소 전기차였기에 더욱 더 그렇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모터트렌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