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 이하 초특가 자동차 만들어 줄 이 누구 없소?
2018-06-20 임유신
“경차 기본형이 1000만 원에 육박하는 시대다. 1000만 원 이하 자동차시장은 틈새이지만 업체들이 외면한다. 경차보다 싼 차가 나와야 할 때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생기듯, 물가가 치솟아도 낮아질 구석은 있다. 요즘은 물가가 많이 올랐다. 한 끼 식사로 5000원도 비싸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싼 게 7000~8000원이고 1만 원 가까운 돈을 내야 한다. 예전에는 10만 원을 들고 장 보러 가면 카트가 가득 찼는데, 지금은 몇 개 집지도 않았는데 10만 원을 훌쩍 넘어 버린다. 공산품은 물론 서비스 비용 등도 계속해서 오른다.
물가가 오르면 가격을 싸게 책정하기가 쉽지 않은데, 간혹 이 가격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싸게 파는 것들이 보인다. 원가 절감을 극한으로 하든가, 박리다매로 수익을 내는 등 방법으로 가격을 확 낮췄다. 예전에 1000원 김밥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보통 김밥 가격보다 훨씬 쌌고, 유행처럼 번져 김밥의 기본 가격이 1000원으로 굳어졌다(지금은 1500원이나 2000원으로 올랐다). 주요 프랜차이즈 커피값이 밥 한 끼 가격으로 오른 요즘, 1000~2000원대 싸고 양 많은 커피를 파는 곳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100만 원대를 넘기는 TV를 수십만 원대 팔기도 하는 등, 전자제품도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춘 초특가 제품이 심심치 않게 선보인다. 아예 물가와 무관하게 싼 제품만 모아서 파는 곳도 꾸준하게 성업 중이다. 물가가 오르더라도 믿기지 않는 저렴한 가격으로 팔 방법은 찾으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자동차시장에서는 초특가 상품이 나오지 않는다. 할인해서 큰 폭으로 깎아주는 경우는 많지만 정가 자체가 아주 싼 차는 없다. 가격 인하가 이뤄져도 원래 정가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격은 계속해서 오른다. 그나마 싸다고 여기던 차들도 이전과 비교하면 꽤 비싸졌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차 중에 가장 싼 차는 경차다. 크기도 작고 대중차라서 큰 차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다. 기아자동차 모닝은 가솔린 수동변속기 모델이 950만 원부터 시작한다. 125만 원인 자동변속기 옵션을 더하면 1075만 원이다. 가장 비싼 트림은 1544만 원으로 가격이 훌쩍 뛴다. 자동변속기를 기본으로 달고 나오는 기아차 레이는 1315만 원부터 시작하고 풀옵션 모델은 1700만 원을 넘긴다. 쉐보레 스파크도 모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동변속기 시작 모델 가격은 979만 원이고 자동변속기는 1000만 원대부터 시작한다.
경차라고 해서 실속만 차릴 필요는 없으니 가격대 높은 트림을 판매하는 것은 문제없다. 경차라도 옵션 빵빵하게 넣어서 타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시작 가격이다. 이제는 경차도 1000만 원은 줘야 살 수 있는 차가 됐다. 1990년대 초 티코가 처음 나왔을 때 가격은 300만 원 남짓이었다. 지금 경차의 3분의 1 가격이다. 당시에는 중형차 기본형 가격도 1000만 원을 넘기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경차 가격은 500만 원대로 지금의 절반에 불과하다. 2010년대 들어서도 옵션을 더한 중상급 트림 가격이 1000만 원 언저리였다. 이제는 기본형이 1000만 원이다. 물가도 오르고 안전장비 등 기본 장비도 늘었고 상품성도 높아졌으니 가격이 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제 1000만 원 아래 신차 시장은 비어 있는 상태다. 생각해 볼 문제는 여럿이다. 현재 물가를 고려할 때 1000만 원 아래로 차를 만들기는 불가능한 일인지. 사람들 취향이 작아도 알찬 차를 원하기 때문에 내용물 빈약한 싼 차를 굳이 내놓을 필요는 없는지. 자동차업체한테 수익이 덜 남는 싼 차를 만들라고 강요하는 일은 불합리한지 등등.
현재 상황에서 아쉬운 점은 일방으로만 흐르는 시장의 모습이다. 차 가격이 오르기만 할 뿐 싼 차를 내놓기 위한 시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다른 분야에서 고물가 시대에 반하는 초특가 상품이 나오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 물론 자동차를 김밥이나 커피와 비교하기는 힘들다. 규모나 투자, 제품 생산 과정 등을 볼 때 쉽게 초특가 제품을 내놓을 성질의 산업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현실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꼭 경차에 한정 짓지 않아도 된다. 1000만 원 이하 차 시장에 맞는 아예 새로운 차를 개발하는 거다.
소형차나 준중형차를 기본 기능만 갖춰서 내놓아도 된다. 크기는 중시하지만 내용물은 크게 따지지 않는 층을 위한 차다. 지금 나오는 경차도 기본 기능과 안전사양만 갖춘, 기본형보다 더 기본형인 차를 내놓은 것도 한 방법이다. 스마트 같은 2인승 차도 미개척 분야다. 꼭 국내 생산업체가 만들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세계시장에서 싸게 파는 차를 들여와도 된다. 현재 수입차시장 프로세스로는 가격을 맞추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보다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이 나와야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새롭고 좋은 차를 사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두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또 정말 이동수단에만 의미를 두는 수요층도 있다. 굳이 비싼 돈을 들이고 싶은 생각도 없고, 옵션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현재 팔리는 차종은 기본형이라고 해도 과분하다. 1000만 원 이하 자동차는 이런 수요층에 알맞다.
자동차업체들은 신차 내놓는데 열심이다.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한다. 작은 틈새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달려드는데 1000만 원 이하 차 시장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틈새 중에서도 아주 큰 틈새인데도 그렇다. 자동차업체들이 이곳으로 눈을 돌리기 바란다. 10년 전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차, 그러면서도 요즘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그런 차가 나와 줄 때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
임유신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모터 트렌드>, <탑기어> 등을 거쳤다. 현재 영국 슈퍼카 전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