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강온 양면책에 정신 차리지 못하는 자동차업계

2018-08-09     이완
트럼프는 언제까지 미국 자동차 산업만 챙길까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요구 들어주지 않으면 보복한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누군가의 한 줄 평가다. 그의 요구,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이어지는 제재는 우방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있다. 중국과는 무역 갈등을 보이고, 유럽과는 경제 군사 외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대립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정부의 이런 노선을 극명하게 보인 결정이 바로 ‘대이란 경제제재’ 재가동이다. 2015년 핵협정 합의에 따라 해제된 이란 제재를 다시 하겠다는 행정명령서에 서명한 것이다. 유럽은 즉각 반발했다. 이란 핵협정 합의는 그들의 비핵화를 위한 진전된 결정이었다는 게 유럽의 생각이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오히려 더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제재를 풀고 본격적으로 이란과의 경제 협력을 펼치던 여러 나라가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이란 경제제재’를 다시 시작하며 이란과 거래한다면 누가 됐든 미국과 사업 못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지난 화요일, 벤츠를 만드는 다임러 그룹은 2016년 발표한 이란과의 트럭 합작 프로젝트를 잠정 중지하기로 했다.

이란과 경제 협력을 진행하던 여러 기업이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탈퇴 이후 자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미국이라는 강대국, 거대 시장을 외면하면서까지 사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뉴욕에서 벤츠가 못 다니는 게...’

다임러의 이란 트럭 사업 중단이 즉각 결정된 것을 보며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을 방문했을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독일 경제지 ‘비르츠샤프트보헤’는 트럼프 대통령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메르세데스 벤츠가 뉴욕 5번가에서 다니지 못할 때까지 현재의 무역 정책을 유지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수입 자동차에 대해 높은 관세(25%)를 부과하겠다는 계획 속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미국에 수출 비중이 높은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에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현재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트럼프는 이 카드를 쓸 준비가 되어 있다. 유럽은 물론, 이웃한 멕시코와 캐나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 등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이 높은 관세를 피해 미국 시장에서 계속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 공장을 설립해 부품을 만들고 자동차를 조립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자동차 회사들은 관세 계획이 유보되거나 아니면 상승 폭이라도 최소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이 수입 자동차 관세 전략은 미국의 빅 3라 불리는 GM, 포드, 그리고 피아트 크라이슬러에게도 큰 타격이 된다.

◆ 컴백 홈 외치는 트럼프

1994년 맺어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캐나다-미국-멕시코 3국 사이에 관세가 사라졌다. 트럼프는 이 협정을 미국의 역사상 최악의 거래라며 맹렬하게 비난했다. 많은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멕시코 등으로 빠져나갔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확한 진단이든 아니든, 트럼프는 NAFTA를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것을 미국 경제 살리기의 중요한 가치로 보고 있다.

실제로 멕시코에는 현재 많은 자동차 회사의 공장이 들어서 있고 또 건설 중에 있다.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자동차,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자동차가 미국으로 들어와 팔려나가고 있고 비중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미국 자동차 회사들도 포함된다.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부터 GM은 미국 일부 공장의 인원 2천 명을 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가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쉐보레 일부 모델에 대해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하자 GM 메리 바라 회장은 미국 공장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감축되는 노동자는 해고 대신 재배치 쪽에 좀 더 무게를 뒀다.

포드는 상황이 복잡해졌다. 트럼프의 경고에 굴복하듯 16억 달러 규모의 멕시코 공장 설립 계획을 지난해 초 포기하고 미시간 공장에 약 7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지만 같은 해 12월 생산비용 절감의 필요성을 내세워 전기차 공장을 멕시코에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하게 되면 포드에 대해 강한 대응을 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며 포드가 과연 트럼프와 정면 대결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채찍만 있는 건 아니다, 연비규제 완화라는 당근

이렇듯 미국 시장에서 장사하고 있는 자동차 회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트럼프 정부의 강경책에 힘들어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달콤한 당근을 활용하기도 한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지난 2일 현실적이지 못한 차량 연비 기준과 배출가스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바마 정부 당시 미국에서 판매하는 신차의 평균 연비가 2025년에는 리터당 21km를 넘기도록 정했는데 이 규정을 없애고 리터당 15.7km 수준을 달성하는 정도로 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계획인 것이다. 당장 트럼프와 앙숙 사이인 캘리포니아주가 반발했다. 미국에서도 강력한 배기가스 규제 정책을 펴는 캘리포니아는 반환경적이고 친기업적인 트럼프 정책을 따르지 않겠다며 소송에 들어갔고 18개 주가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트럼프 정부 출범 당시부터 이 계획은 예정된 것이었다. 후보 시절 트럼프는 자동차 제조사 협회와 같은 로비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연비규제 완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2017년 3월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시간 디트로이트를 방문해 연비 규제 완화를 일관되게 약속했다.

픽업과 SUV 소비가 많고, 가솔린 자동차 소비가 많은 미국에서 연비 완화는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완화를 의미하고, 이는 미국 제조사들에게 큰 혜택으로 돌아가게 된다. 독일 시사지 슈피겔은 이런 연비 규제 완화를 두고 ‘미국 자동차 산업을 위한 선물’이라고 했다.

◆ 어떤 가치보다 앞서는 트럼프의 미국 이익 우선주의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디트로이트에서 중요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무너져버린 디트로이트 경제에 대해 무척 긴 시간을 할애해 이야기했다. 반 토막이 난 소득과 높은 실업률, 범죄에 노출된 위험한 도시임을 말하며 다시 과거의 활기를 되찾자고 외쳤다.



결국 그는 오랜 민주당 지지 지역에서 표를 얻으며 당선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포드와 슬론이 이끌던 자동차 지배 시대의 영광을 되찾기를 꿈꾸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든든한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늘리는 정도에 만족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현재까지 분명해 보인다.

‘누구든 미국에서 자동차를 팔겠다면 미국에서 자동차를 만들고 일자리를 만들어라. 그러면 얼마든지 지원하겠다. 하지만 미국 밖으로 나간다면 커다란 고통이 따를 것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와 <핀카스토리>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